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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옥타비오 파스] 흩어진 돌멩이들

by 발비(發飛) 2009. 7. 7.

흩어진 돌멩이들

 

옥타비오 파스

 

 

1. 꽃
외침, 부리, 이빨, 으르렁거리는 소리들,
살기등등한 허무와 그 혼잡도
이 소박한 꽃 앞에선 자취를 감춘다.

 

2. 여인
밤마다 우물로 내려가곤
아침이면 다시 얼굴을 내민다.
품에는 새로운 뱀을 안고,

 

3. 자서전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랬던 것들이다.
그리고 그랫던 것들은 이미 죽은 것들이다.

 

4. 밤중에 듣는 종소리
그림자의 물결, 눈먼 파도가
불 타는 이마 위에 밀려온다
내 사념을 적셔다오. 그리고 아주 불을 꺼버려!

 

5. 문 앞에서
사람들, 말들, 사람들,
잠시 멈칫했지:
문은 위에 있다. 홀로 떠 있는 달 하나

 

6. 보이는 것
눈을 감자 내가 보였다
공감, 공간
내가 있고 내가 없는 이 곳

 

7. 풍경저토록 바쁜 벌레들
태양빛 말들,
구름빛 당나귀들,
구름은 무게를 잃은 커다란 바위
산은 내려앉은 하늘,
나무들이 무리져 내려와 골짜기 물을 마신다
모두들 있다. 행복하게, 저기, 스스로의 분수만큼
행복하게, 우리 앞에, 그런데 우리는 없다
분노와 증오와 사랑에, 마침내 죽음에
송두리째 먹혀버린 우리는 없다.

 

8. 무식장이
하늘을 쳐다보았지.
하늘은 비문이 닳아진 커다란 바위돌
별들도 한 마디 내게 읽어주질 못했어.

 

위로가 된다면 이해가 되니?

 

흩어진 돌멩이들,,,이라지...정말 쓰잘데기 없는 없는 것들이지.

 

흔하디 흔한 꽃 한송이가 뭐가 대단해

-아비규환같은 것들이 작은 꽃앞에서 어쩌니.

 

알 수 없는 것, 여자

-언제나 새로운 뱀을 가지고, 유혹거리를 가지고 긴장시키는 이를 어쩌니.

 

난 몰라,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어

-지난 것들은 모두 죽은 거, 맞잖아. 그래서 어쩌니.

 

깨어나라.. 의식이여 깨어나라. 땡땡땡

-이 밤에 어쩌니.

 

언제나 내 몸과 마주했던 문, 가슴팍을 마주했던 문

-고개를 들어, 동그랗게 하얀 그 문... 저기야? 어쩌니

 

내가 있고 내가 없는 이 곳, 눈이 어디있는데 나를 ...

-눈을 뜨면 난 안 보이고 눈을 뜨면 내가 보이는 눈은 뭐니? 어쩌니.

 

모두 모였잖아

-풍경속에 우리만 없어. 어쩌니

 

모른다잖아. 하늘은 적어둔 것이 없고 별들은 읽어주질 못한다잖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도 아닌, 부재도 아닌, 어쩌니

 

인공위성으로 찍은 지구의 밤사진을 본 적이 있다.

불빛들이 보였다.

우리나라는 서울과 경기권은 낮처럼 하얗게 표시되었고, 북한은 평양에 하얀 점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캄캄했다.

난 하얀 불빛 아래 있다.

태양광도 아니고 월광도 아닌 작은 전등에 묻혔다.

 

흩어진 돌멩이의 모습으로

인식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살아가지 않는 모습으로

 

다행이다!

다행이다!

 

 

 

잠깐 본 세상

 

바다의 밤 속에
물고기, 아니면 번개,
숲의 밤 속에
새, 아니면 번개.
육체의 밤 속에
뼈는 번개,
오 세상이여, 모든 것은 밤이다
삶은 번개

 

돌멩이가 의식한 단 한 순간, 번개치는 어느 순간 그리고 사라진 삶.누구의 삶....내 삶, 우리는 없다

 

다행이다,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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