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히는대로 詩

[조현석] 빠진다

by 발비(發飛) 2009. 6. 22.

빠진다

 

조현석

 

지금 너의 관심 속으로

풍덩 빠지련다

 

사랑을 시작해야 할지

혹은 말아야 할지

너무 두렵다, 마지막

사랑이라면, 지킬 수 있을까

 

장담은 안 하리라

다만 이 순간부터라도

선택한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리라

 

할 수 있는 한 많이

싸우고 터지고 싶다

속내 드러내 보이듯... 모든 걸

아깝지 않게

 

때론 오래 묵은 된장처럼,

그 깊은 장독 안에서

곰삭은 깊이를 지니고 싶다

 

너의 곁에 있을 때

마음대로 투정부리듯

너의 관심도 어제의 풍경처럼

낯익은 듯하길 바라며

 

-시집 <울다, 염소> 중에서  2009 현대시

 

 

-시에 답하다

 

나는 너의 관심이 아니라 나의 관심 속으로 푹 빠질래.

관심은 마음을 들여다 보는 거.

너의 관심은 너가 나를 들여다 보는 것이지.

난 너의 관심을 믿지 않아.

너와의 사랑을 시작할 때조차도...

너가 되어 나를 보지 않을래.

너의 관심 따위는 접어두고 나의 관심 속으로 빠지려 해.

내가 너를 향해 들여다 보던 것들을 더 열심히 들여다볼래

너의 깊은 장독 안에 곰삭은 깊이를 나의 관심 안에 넣어둘래.

나를 어떻게 사랑해 주는 것 따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래.

너의 관심이 아니라 나의 관심으로 푹 빠질래.

마지막 사랑은 그래야 하는거야.

내가 너에게 빠질래.

  

출근길에 영화를 보았다.

'비포 썬 라이즈'

꽤 오래된 영화이지만...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보았지만 난 보지 않았다.

아니 보려다가 그냥 보지 않았다. 보기 싫어서

관심이 없었다. 다른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사람은 변한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다른 사람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얼 생각하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내 안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무엇이 들어있는지만 궁금했다.

오류에 빠졌다.

내가 다른 사람과 구별을 원했고, 타인들에게서 소외되기를 원했더라도... 타인이 누구일까? 라고 묻는다면 난 .. 할 말이 없다.

나의 부유는 여기에 근거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리고 대답한다.

관심이다.

내 관심대로 상대에게 질문한다.

내 관심이 분명할수록 상대가 분명히 대답한다. 

 

수많은 사람이 출근을 하기 위해 전철에서 내렸다.

옆을 걷던 여자의 발이 보인다.

나처럼 발가락에 패티큐어를 바르고 앞트인 힐을 신었다.

발가락이 신발바닥 밖으로 나왔다.

발가락이 신발바닥을 감싸고 있다.

나처럼 신발이 큰 모양이다. 나처럼 몸이 앞으로 쏠리나보다.

여자의 발을 쫒아간다.

난 여자를 알지 못하지만, 여자를 알게 된 것 같다.

여자의 발을 보듯....

 

너의 관심은 나를 흐리게 하지만,

나의 관심은 너를 분명하게 만든다.

 

분명한 사랑은, 그리고 마지막 사랑은 너에게 대한 나의 관심이고자 한다.

나누는 사랑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지만 말이다.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타비오 파스] 흩어진 돌멩이들  (0) 2009.07.07
[김수영] 먼 곳에서부터  (0) 2009.07.03
[조연호] 천문 外   (0) 2009.06.16
[조연호] 천문  (0) 2009.05.29
[조연호 시집] 죽음에 이르는 계절  (0) 2009.05.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