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부터
김수영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어쩌면 모든 것들은 돌아가기 위해 시작하는 것이다.
출발하였던 그 곳으로 가는 길이 참으로 멀고 험하다.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먼 곳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먼 곳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아픈 법이지.
인정해야 하는 것이지.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꽃 만발한 봄바람타고 떠난날은 콧노래를 불렀다.
꽃 만발한 봄바람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꽃을 보는 것은 아픈 것이 되지.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남자의 여자, 가 아니라 여자에게 여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남자가 여자에게 돌아가는 것과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여자가 다시 여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여기서 여자란 무엇이지.
그 또한 아픈 일이다... 결국은...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언제나 거듭되는 꽃 피우기,
꽃지고 열매맺기.. 그리고 꽃 피우기
그 사이 나도 몸이 아프고, 나무도 아프고...
아프다고 생각하는 순간, 몸은 이미 몸이 아닌 거죽이 되고...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다시 으싸를 해야 살아가니까, 이렇게 다시 머리를 흔들며 생각들을 털어내어야 사람으로 살아가지)
난, 여기에서 '몸'에 주목한다.
무엇에게서부터 무엇으로 가는 사이.가 있다.
결국 같은 곳으로 돌아가지만 이미 같은 곳이 아니다.
떠나온 나와 돌아가는 나는 같지 않다.
아픈 것, 아파야지.
꼭 그렇게 아파야지.
마음이 아니라 몸이 아픈거지.
바로 몸이다.
몸이 나에게 있는 이유는 나를 대신해서 아파주는 거죽인 것이다.
나를 위해 대신 견뎌주는 거죽인 것이다.
몸이 측은키도 하다.
하지만, 몸을 걱정하지는 말자.
다시 말하는 데 몸은 거죽일 뿐이다.
떠나고 돌아가는 길, 그 사이를 내가 걷고, 뛰고, 뒹군다. 맘껏 한다.
몸은 내가 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감당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간혹 이런 일이 있다.
갑자기 배가 몹시 아프다. 혹은 두통이 온다.
아프면 아픈데로 두다가... 계속 아프면 왜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 옆에 있던 누군가가 또 스트레스 받으셨나봐요 한다.
아.. 그렇구나.
내가 무엇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구나 하고 감지한다.
몸은 나를 측정하는 측정기이다.
먼 곳으로 부터/ 먼 곳으로...
나는 가고 오고, 몸은 아프고... 아프다.
몸을 모른 척하며 나는 또 무엇으로부터를 시작한다.
그저 간혹 내가 어찌 되었나 확인해 보는,
몸은 거죽이다.
몸...은 그릇이다.
어느 날 몸이 다하면 자유로운 내가 남는다.
무게 없는 내가...되어... 한없이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
혹, 무게없는 별이 되어 빛으로만 반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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