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히는대로 詩

[김경주] 연두의 시제

by 발비(發飛) 2009. 8. 12.

연두의 시제

 

김경주

마지막으로 그 집의 형광등 수명을 기록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는 건 손톱이 자라고 있다는 느낌과 동일한 거 저녁에 잠들 곳을 찾는 다는 건 머리칼과 구름은 같은 성분이라는 거 처음 눈물이라는 것을 가졌을 때는 시제를 이해한다는 느낌, 내가 지금껏 이해한 시제는 하루 종일 딸들의 머리를 땋아주던 여자가 중얼거리던 화음의 중간만 기억하는 거

사람을 만나면 입술만을 기억하고 구름 색깔의 벌레를 모으던 소녀가 몰래 보여준 납작한 가슴과 가장 마지막에 보여주던 일기장 속의 화원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그곳에는 처음도 끝도 없는 위로를 위해 처음 본 사람이 필요했고 자신의 수명을 모르는 꽃들만 살아남았다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어디에 있는지 언제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했는지 도무지 실체가 분명치 않다.

하지만 존재했다.

 

한 순간일 수 없다.

차라리 한 순간이라면 실체라고 포착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삶이 한 순간이 아니기에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다.

 

어떤 이는 분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흐물거리기만 할 뿐, 형체라고 보기는 힘들다.

무엇이건 근처에 놓이기만 하면 그것을 감싸며 그것이 되고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실체는 없는 것이다.

옆에 있는 것의 실체가 된다.

 

시인은 그저 시제라고만 한다.

그것조차 명확하지 않다.

같은 것을 말하면서도 시제를 달리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변화무쌍..

하지만 결과는 같은 것, 그것을 시제라한다.

생각 속에서 있다.

그리고 순간이 아닌, 나와는 상관이 없었던, 아주 먼 이야기인,

머리 땋던 여자의 흥얼거림, 이름 모를 꽃이 그나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나를 대표하는 말은 무엇일까?

나 자신에게서는 찾을 수 없다.

곁에 누군가를 두어야 한다.

곁에 누군가에게 기댄다.

그러면 겨우 내가 보인다.

오래되어 내게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그랬다. 옆에 누군가 있었다.

 

말을 시켜줘,... 그렇지 않으면 사라져버리는,

시제를 붙여줘.. 순간을 기억하여 찰라라도 나를 만날 수 있도록,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그저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도 움직일 수 있을만한...

사이만 남아있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덩어리.

타인에게는 부재한, 나라는 존재..............흩어진... 것들, 순간들, 머리카락들.

 

 

사이보다는 차라리 부재.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언] 흔들  (0) 2009.09.03
[송재학] 모래장  (0) 2009.08.17
[정일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0) 2009.08.03
[김혜순] 하늘강아지  (0) 2009.07.22
[옥타비오 파스] 흩어진 돌멩이들  (0) 2009.07.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