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때인가부터...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무엇을 했느냐를 묻지 않고 무엇을 하겠느냐 비전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비전을 생각해 봤습니다.
제 맘에 가장 드는 비전, 그것은 전두환 대통령이 5공때 내 놓았던 '정의로운 사회'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내 놓았던 '보통 사람의 시대'도 상당히 매력 있는, 비전이었습니다.
신한국, 세계화, 정보화, 개혁! 문민정부의 비전도 참 좋았습니다.
그는....국민의 정부의 비전은 달달 욉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생산층 복지, 남북화해 노사협력! 지식기반 사회!
저도 그렇게 말하면 됩니다!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때 제 가슴은 공허합니다. 그 말을 누가 못하냐...
누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2장면>
오늘 아침에 저는, 유종근, 전북지사가 지으신 유종근의 신 국가론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신뢰, 협동이라는 이 사회적 자본을 한국이 제대로 구축하느냐 못하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앞으로 이 사회에 있어서의 생산성은
생산 요소의 투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 혁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토대가 되는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구축해 가느냐 여기에 달려 있다...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가 쓰여 있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문제는, 그 사회적 신뢰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 보지 못했고,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 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 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고,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해, 패가망신 했던 겁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이말이에요).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새겨 남겨 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 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해 보는 우리의 역사는 이루어 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아래 원고 없음)
------------------------------------------------------------------------------
1. 2009년 5월 23일.10:30
모처럼 맞는 진정한 휴일이라 친구에게 대학로에서 만나자고 전화를 했다.
"너 노대통령 죽은 거 알아?"
"노태우가 죽었어?"
"아니, 노무현!"
난 노무현이 누구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왜?"
"자살이래."
난 자살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또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티비를 틀었더니, 속보가 연이어지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나갔다.
2. 12:00
전철로 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탔다.
조그만 마을버스 안에서 노무현대통령의 속보가 라디오로 계속 나오고 있었다.
좁아서 꽉 찬 마을버스 안에서는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내 등 뒤에 여자의 훌쩍거림이 들렸다. 여자는 계속해서 훌쩍이고 있었고, 옆에 서 있는 여자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도 아무말 없이, 여자도 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여자의 옆에 서 있었다. 그 여자를 빼고는 모두 화석이 된 느낌이었다.
난 고개를 돌려 좁아서 꽉 찬 마을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역시 화석이다.
모두 창백한 얼굴로, 아니 흙빛 얼굴로 그대로 굳었다.
죽음의 애통함 때문이었을까? 그러기엔 사람들의 표정이 슬픔에 잠긴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화석이었다.
3. 15:00
친구와 나는 대학로에 학림다방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죽을 수 있냐?"
"감당할 그릇이 그 크기였나보지."
"너무하지 않냐.. 그렇다고 죽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감당하지 못하는 거 아니겠냐...."
우리는 그 죽음에 대해서 더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왜? 라는 것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왜? 모르겠다. 신문을 보지 않아서인가... 아님 귀를 열어두지 않아서인가... 하는 생각만 했었다.
4. 18:00
선생님을 만났다.
"마을버스를 탔는데 어떤 여자가 뒤에서 울었어요. 그래서 제가 돌아봤는데, 마을버스에 있던 사람들이 조선시대 백성같았어요.. 하얗고 꼬질한 옷을 입은..."
"그런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뱃심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 인간이 대통령이었으니..."
선생님은 한나라당사람이었지.
"나라는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대학이.........문예진흥원이..........어디가...."
무슨 말씀을 한참을 하셨다.
난 그말을 잘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의 얼굴도 보지 않고 포도주잔을 뺑글뺑글 돌렸다.
5. 21:00
지하철을 탔다. 집으로 돌아왔다.
6. 23:30
시인이자 소설가인 중년, 한참을 소식을 전하지 않고 살았던 분인데...
"이게 뭐니?"
"......"
"나 분향소에 와 있다. 이게 뭐니?"
"......"
"끊을께 살아가자."
그랬다.
7. 그리고 오늘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종일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감히 뭐라고 언급할 수도 없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 첫날은 속보만 이어지더니...
이튿날은 포털사이트의 색이 반쯤 회색이더니
셋째날은 전체가 회색이었다.
중앙일간지의 인터넷신문을 열면, 처음에는 큰 그림 하나가 그 분이더니
지금은 잘디잔 그림이 그 분에서 그 분의 주위의 것들로 채워졌다.
전인권의 콘서트 소식을 보려고 관련 카페에 갔다가 노무현 경선 후보 출마 연설문 텍스트를 보았다.
그래서 그 동영상도 찾아봤다.
우리의 역사이다.
난 죽은이의 영상을 보았다기 보다는 잃어버린 역사의 한 장면을 본 듯하다.
대통령 퇴임 뒤, 봉화마을에서 밀짚모자를 쓴 그 분을 우리는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었던가.
그것은 역사에서 한 번도 있지 않았던,
역사적으로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뿌듯함을 주었다.
우리도 퇴임한 평화로운 대통령을 가졌다.
언제나 시골할아버지댁에 가면 할아버지가 언제나 평화로운 모습으로... 크지는 않지만 든든하게 지켜주는 그 작은 집이 우리를 살면서 얼마나 든든하게 만들었었나.. 그 마음이었다.
그 분이 유기농으로 오리쌀을 만들어 작은 마을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는 소식은 ,
커다란 자전거를 타고 논둑길을 달리는 모습은,
...
이것은 죽은 자에 대한 연민, 그로 인한 확대!
단지 그것일까?
크기의 문제이다.
우리의 상실을 어디에서 찾을까?
적어도 나의 상실은 그 분이 이런 저런 일로 어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그 분의 말처럼 조선 600년 그리고 그 후... 한번도 뒤가 아름다운 군주, 대통령을 두지 못했다는
열등감이다.
극복하지 못할 열등감, 좌절이다.
우리는 왜 한 번도 그런 리더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인가... 이것이 곧 천년이 된다면,,, 그렇다면 누구도 상상할 수 조차 없을 것이다.
행복한 나라를...
그 분의 연설문을 읽고 들으면,
적어도 세상을 몇 십년쯤 살면 어떤 이가 진실로 그 말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진정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성의 보유 혹은 지속은 진정성을 가진 자의 몫이 아니라 주위가 지켜주는 것이다.
각기 다르게 태어난 각자의 진정성을 지켜주는 것이다.
그럼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 분의 연설이 더욱 의미심장하다.
역사이다.
'새겨듣는 曰(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무현 & 유시민] 소신所信 (0) | 2009.05.31 |
---|---|
노무현대통령추모-곡비가 필요해 (0) | 2009.05.29 |
[라즐로 모홀리 나기] 이미지에 관하여 (0) | 2009.02.02 |
[세르반테스] 잠에 대한 잠언 (0) | 2009.01.22 |
[발터 벤야민]'베를린의 유년시절' 중에서 (0) | 2008.11.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