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참 오랜만에 휘파람 소리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 만이었다.
어릴 적 길을 가다보면,
여름날 창문을 열어놓고 있다보면,
욕실 앞에서,
간간히 누군가가 불었을 휘파람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지난 주 일요일 새벽에 만난 검은띠불가사리다.
채석강의 첩첩히 쌓인 돌판을 지나 격포해수욕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중 만난 불가사리 한 마리.
등에다 언제 올려졌을지 모르는 모래 한 짐을 지고 천천히 바다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불가사리는 지난 밤 바닷물에 쓸려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 빠지는 바닷물과 함께 하지 못해 홀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불가사리를 생각했다.
아마 저 불가시리는 휘파람을 불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들은 것 같다.
그때 난 불가사리가 부는 휘파람 소리를 파도소리라고 착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닷물은 점점 더 빠져나가고
그나마 촉촉하던 모래는 빠른 속도로 말라가고 있다.
불가사리가 등에 지고 가던 모래도 눈에 띄게 그 색이 옅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가사리는 같은 걸음의 속도로 진행한다.
하찮은 것
난 이미 격포해수욕장으로 방향을 틀기 전에 물살에 밀려와 돌아가지 못하고 죽은 불가사리 무지를 지나왔다.
어찌 될 지 알 일이다.
그렇다고
곧 죽을 것들이라고 하찮은 것은 아니다.
무지하게 먹어댄다.
조개, 굴, 전복과 같이 저보다 더 쓸모있는 것들을 마구 먹어대는 대식가에다
그것들을 먹고도 항문이 없는 것이 있어 제대로 배설을 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들이다.
그뿐인가
번식력 또한 대단하다.
그 하찮은 것이 휘파람을 불면서 바닷가 모래뻘을 유유히 가고 있다.
바다로 가기에는 턱도 없는...
희망이라고는 절대 없는 그 길을...
도무지 쓸데라고는 없는 삶을 살면서 휘파람을 분다.
바람의 흉내를 내면서...
파도의 흉내를 내면서...
내가 부는 휘파람소리는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불가사리처럼
나의 움직임은 어디론가 갈 길이 정해진 것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불가사리처럼
검은 띠 두른 불가사리와 내가 나란히 물 빠진 바닷가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레퀴엠...
스스로 휘파람을 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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