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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는 曰(왈)

[박범신] 촐라체 작가의 말 중에서

by 발비(發飛) 2008. 7. 23.

 "감히 고백하거니와 나는 '존재의 나팔소리'에 대해 썼고, '시간'에 대해 썼고, 무엇보다도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대해, '불멸'에 대해 썼습니다. 천지간에 홀로 있다고 느낄 때, 세상이 사막처럼 생각될 때, 그리하여 살아 견디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실존의 빙벽 아래로 투신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면, 소설<촐라체>의 주인공 '상민'과 '영교'를 기억해주기 바란다...

이 유한한 인생에서, 참으로 위로가 되는 것이 있다면, 욕망에 따른 성취가 아니라 -이룰 수 없을지라도 가슴 속에 '촐라체' 하나 품고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꿈?

욕망?

 

꿈과 욕망의 차이는 무엇인가?

 

처음으로 내가 가진 꿈은 비닐하우스에서 농사짓는 농부의 아내가 되는 것이었다.

비닐하우스의 안은 추울리 없고,

먹을 것이 있을 것이고,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라서? 그런 생각은 안했다.

그렇지만 그런 의미였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나의 꿈은 변하지 않았다.

비닐하우스 정도의 집이라면 어떤 곳에서도 살 수가 있다.

불편하지만 그것이 심적으로 견디기 힘들다거나, 그것때문에 사는 것이 어렵다고는 말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미안한데 난 니가 사는 이 곳이 싫어..."

"난 괜찮은데... 너는 안되겠니? 그럼 어디?"

 

사람은 저마다 할 수 있는 것,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견딜 수 있는 것이 제각각 다르다.

인간의 욕망이 거기서 거기까지라고들 하지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이야말로 그 갈래를 펼쳐놓고 보면 수십, 수백개, 그 이상의 모습이다.

그 중에서 견딜 수 있는 것과 견딜 수 없는 것들을 정리해 보라.

그럼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잘 견디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것도 삶의 중요한 과제이다.

매일 나오는 숙제.

지금도 견딜 수 있는 것과 견딜 수 없는 것을 판단하기 위한 과제 하나를 받아 들고 있다.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행동하려 한다.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난 견딜 수 있는 상황인데

넌 견딜 수 없다면 이 자리는 너의 자리가 아닌데...

그런데 달리 갈 곳이 없다면

너는 하루 빨리 이 곳을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준비하지 않으면,

누구도 너를 위해 니가 견딜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 너의 옆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넌 패스다!

기회는 없는 것이지.

 

지금 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너를 탓하지는 않겠어.

 너가 이 곳에서 벗어나길 바래.

 널 가까이 두고 싶다...

난 견딜 수 있지만 넌 견디지 못하니까...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길 바래.

영원히... 너가 살아가는 내내...

견디지 못할 것에 견디려고 '욕망'을 죽여야 한다고 애쓰며 

 너가 견딜 수 없다는 이 곳에서 단 한번도 살게 되질 않길 바래.

 

 

 

 

 

 

난 기대한다.

박범신 작가의 촐라체를 주문해 두고.. 기다린다.

네이버에서 연재를 할 때는 내버려두었던 이야기가 지금 너무도 읽고 싶다.

그것은 견디어 낸다는 것을 화두로 읽어나가고 싶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촐라체라는 것을 품고 사는 것과 촐라체에서 사는 것이 무엇이 다른지..

욕망의 무게가 얼마정도이면 품고 살아도 견딜 수 있는 것이며

욕망의 무게가 얼마 정도이면 촐라체에서 사는 것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작가의 글을 대하려 한다.

 

견딜 수 있는 것은 모두 다르다

견딜 수 없는 것도 모두 다르다

넌 왜 견딜 수 없다는 거니? 하고 물으면 다르니까...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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