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날
이병률
가끔은 생각이 나서
가끔 그 말이 듣고서 싶다
아프거나
담장 바깥의 일들로 데이기라도 한 날이면
들었던 말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어머니이거나 아버지이거나 누이들이기도 했다
누운 채로 생각이 스며 자꾸 허리가 휜다는 사실을 들킨 밤에도
얼른 자, 얼른 자
그 사실을 들키는 바람에 더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좁은 별들이 내 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얼른 자, 얼른 자
그 밤, 가끔은 호수가 사라지기도 하였다
터져 펄럭이던 살들이 꿰맨 것인지
금이 갈 것처럼 팽팽한 하늘이기도 하였다
섬광이나 아무 것이나 떨어지면 받을 접시를 옆에 두고
지금은 헛되어 눕기도 한다
헛되고 헛되이 이런 환청이 내려앉기도 한다
자고 일어나면 개벽을 할 거야
수많은 수많은 괜찮음들이 쌓일 접시를 들여다보며
잠들 수 없는 밤
조금 울기 위해 잠시만 전깃불을 끄기도 한다
꽤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렸었다.
5년 이상을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던 시간들.
그때 잠은 내게 아주 넘지 못할 벽과 같은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들을 가능해도 스스로 잠들 수 없는...
스스로 잠들 수 없는 시간에 느꼈던 존재감이라는 것은 세상과도 넘지 못할 시간을 살고 있는 듯한 똑같은 것이었다.
잠을 잘 수 있을 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수면제를 한 알 먹고 10분즈음 지나면 몽롱히 의식을 잃어가는 자신을 느끼는 것.
저 너머 세상으로 넘어가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 느껴지는 것.
간혹 수면제를 먹은 시간에 누구와 통화를 하게 된다면, 수면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잠 속에서 나누는 말들.
그 때 나를 술에 취한 줄 알았다고 했다.
수면제를 완전히 끊은(?) 것은 긴 여행을 떠났을 때부터였다.
현재가 아닌 먼 곳에 내가 놓여졌을 때 그제서야 스스로 잠이 들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오래 오래 되자.. 현재가 멀리 멀리 갔다. 그러다 아예 내 속에 들어앉았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난 잠을 자기 시작했고,
스스로 잠이 든다.
졸려서 어느새 잠이 든다.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난 안다.
요즈음, 깊은 밤 침대에 누워 스스로 잠들고 있는 나를 자각할 때면 생각한다.
이제 됐다.
이정도면 괜찮다.
잠을 자면 된거야. 더는 바랄 것이 없다.
한 때 나의 꿈이 이루어진거다. 스스륵 그냥 잠이 드는 것.
잠이 싫어 뒷걸음치는 나를 끌어다 그저 무의식의 상태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무의식에서 의식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침이었던 날들이 지나...
나의 하루가 다 하면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스스륵 잠이 드는 것.
자라.
얼른 자라.
자고 나면 괜찮다.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진다.
잠만 자면 된다.
새날이 온다.
난 지금 수면제없이도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을 살고 있으므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난 괜찮을 것이다.
자고 나면 매일 새날이것이니까...
얼른 자야 할 것 같다.
얼른 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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