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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박진성] 눈보라

by 발비(發飛) 2008. 5. 13.

눈보라

 

박진성

 

분지에 쌀밥처럼 쏟아지는 눈보라,

계룡산과 식장산을 끊는다 눈발 속엔 경계가 없다 밥

이 없다 사랑도 없다

밟히기 전에 발등을 덮는, 털어내기 전에 스스로 털리

는 눈보라여

숯불갈비집과 감자탕집과 LG25시 편의점의 유리를 두

드리는 눈보라여,

너는 바깥에 있다 바깥에 있어서 병이 없다 속도가 없

다 경계가 없다 바깥이라는 말도 없이 스스로 바깥인 눈

보라

수직의 힘이 버겁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질량으로

아무렇게나 아무데나 몸을 처박는 눈보라여,

처박혀서, 복사꽃 무늬처럼 자작나무 물관처럼 자유롭

게 네 몸을 만들고 있는 눈보라여

 

발크기가 이상하다.

 

조금 차이가 있는 경우는 있다지만, 나의 경우 오른발과 왼발의 크기는 거의 1/2센티 이상 차이가 난다.

신발을 살 때 고민을 한다.

왼발에 맞출까?

오른발에 맞출까?

어렸을 때는 여자가 발이 크면 도둑발이라며...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당연 작은 왼발에 맞춰 신발을 사서

지금도 나의 오른발가락 가운데쯤은 굳은 살이 박혀있다.

그러다 지금은

거의 오른발에 맞추어서 산다.

편하고 싶다는 것이지..

웅크린 것보다는 펴고 살고 싶다는 것이지.

 

그런데

한 가지의 문제가 있다.

몸이 이상해지면서 저녁이 되면 몸이 많이 붓는다. 온 몸이...그리고 발도 많이 붓는다.

그래서 오른 발에 맞춰서 산 신발이더라도

밤에 발에 맞춰 산 신발은 ...

아침이 되면 대책없이 크다는 것이다.

왼발 오른발 할 것 없이.

운동화나 단화를 신으면 발등까지 신발이 덮혀있으니 상관없지만,

대개의 경우 힐을 신기때문에

발은 무기력하게 구두를 놓친다.

 

최근 그 증상이 심하다.

얼마전 오후 세 네시쯤에 산 구두가 아침에는 정말 대책없이 벗겨진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발을 뒤로 밀어 뒷꿈치에 힘을 줘야만 벗겨지지 않는다.

퇴근할 시간이 되는 깊은 밤이면,

이 구두가 너무 낀다.

발가락을 아무리 쪼그리고 있어도 꽉 끼는 구두가 괴롭다.

 

아침과 같은 길을 밤에 걷는다

아침과 같은 내가 밤에 걷는다

그런데 아침에는 덜컹거리면 벗겨지는 구두를 잡느라 온 몸의 힘을 발뒷꿈치에 모으고

밤이면 꽉 끼는 구두에 끼인 발 때문에 걷다가 몇 번이고 발을 꼼지락 거린다.

 

걷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때로 변하는 내 몸의 질량이 문제이다. 부피가 문제이다.

이것은 세상을 살고 있는 나의 문제가 아니다.

무지하게 나를 괴롭히지만 마치 나의 바깥에서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처럼 대책없다.

 

눈보라의 무게처럼

때론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기도 하고 

때론 단 일분도 견딜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 작은 차이가...

그 별 것도 아닌 것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지배한다.

내 몸이 만든 일인데도.. 이건 마치 나의 몸 밖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내게 무게가 된다.

 

내 몸이 만든 내 몸의 무게.

내 몸이 견디는 내 몸의 무게.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무거운, 멋대로인 혹은 자유로운 내 몸의 무게.

 

가벼우면 가벼운데로 어디론가 멀리 멀리 가버리는,

무거우면 무거운데로 그 자리 밑으로 깊이 깊이 파고드는.

 

그래서

 

아무렇게나 아무데나 몸이라는 이름으로 불어대는 질량...

아무렇게나 아무데나 몸을 처박는 내 몸.

아무렇게나 아무데나 몸을 구겨넣는 내 몸.

눈보라같은 내 몸.

 

수직의 힘이 버겁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질량으로

아무렇게나 아무데나 몸을 처박는 눈보라여,

(......)

자유롭게 네 몸을 만들고 있는 눈보라여

 

 

이렇게 아무렇게나...

아무 시에나 구겨넣는 나를 구겨넣는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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