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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김종삼] 투병기

by 발비(發飛) 2008. 4. 22.

투병기

 

김종삼

 

한밤중 나체의 산발한 마녀들에게 쫓겨다니다가

들어간 곳이 휘황한 광채를 뿜는 시체실이다 다가선 여러 마리의

마녀가 천정 쪽으로 솟아올라 붙은 다음 캄캄하다

다시 새벽이 되었다 뭘 좀 먹어야겠다

 

밤이 좋아.

마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교묘한 웃음을 흘리며... 잠시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숨기고.

배시시...

 

그런 밤

 

온 몸 땀을 뻘뻘 흘리며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마녀가 한 방 가득이다.

몰아세운다.

끌려간다.

닭들이 빨간 눈으로 빨간 벼슬을 흔들면서 훼를 쳐댄다.

퍼더덕 깃털을 뿌리며 천정에 머리를 박고.. 내게로 떨어진다.

마녀의 촉감으로...

부드러움 혹은 섬뜩함.

 

훼를 치며 울어라.

머리를 싸메고 더 크게 더 크게 울어라.. 날아라...

 

밤이 좋아.

고개 돌리며 배시시 웃을 수 있는 밤이 좋아

새벽이 오면 날지 못하는 빨간 눈의 닭처럼 천정에 머리를 쳐들고 울어대는 마녀....

가 생각나는 새벽같이 해 뜨는 저녁.

바닥에 눈을 붙이고 누운 저녁.

 

새벽같은 저녁에 뭘 먹는다면...

마녀는 지치지도 않고 밤새 '밤이 좋아' '밤이 좋아' 하며 배시시 고개 돌려 웃으면 천정에다 머리를 찧을 것이다.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밤이다.

낮은 너무 환해서 내 몸과 마음을 내놓고 드러내기에 민망했다.

하여 밤이 되면 빛과 어둠을 조절하면서 나를 드러내고 감추고 선택적 나를 만들어 내민다.

밤을 즐긴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마녀가 된...

머리를 찧는다.

 

.

.

.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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