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히는대로 詩

[신현정] 바보 사막

by 발비(發飛) 2008. 5. 8.

바보사막

 

신현정

 

 

오늘 사막이라는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니

 

출발하기에 앞서

 

사막은 가도가도 사막이라는 것

 

해 별 낙타 이런 순서로 반드시 줄지어 가되

 

이 행렬이 조금의 흐트러짐이 있어도

 

또 자리가 바뀌어도 안 된다는 것

 

아 그리고 그리고는 난생 처름 낙타를 타본다는 것

 

허리엔 빛나는 수통을 찬다는 것

 

달무리같은 크고 둥근 터번을 쓰고 간다는 것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에 이르러서

 

단검을 높이 쳐들어

 

낙타를 죽이고는

 

굳기름을 먹는다는 것이다

 

오 모래 위의 이 뜨거운 향연이여.

 

 

몇 해 전에는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가 사막을 건넜다.

그리고 몇 달 전에는 짚을 타고 사막으로 스스로 끼어(?) 들어가 사막을 건넜다.

 

어느 사막이던 마찬가지였다.

뜨겁고 건조하고.... 바람이 불었다.

모래바람이 날카롭게 불어와

몸에 있는 구멍이라는 구멍에는 다 파고 들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사막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사막은 걷는 것이 아니라..

사막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막은 스치는 것이 아니라...

사막은 건너는 것이다.

큰 물을 건너듯 건너는 것이다.

불구덩이의 물을 건너는 것이다.

 

사막으로 들어가기 전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 이상의 힘을 낼 수 없는 곳이며

낙타던 짚이던  뭔가를 타고 가더라도 그것 또한 그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없는 곳이며

그 길로 쭉 가버리고 나면 영영 안녕이다. 현재가 등 뒤에 있다.

 

잘 나고 싶다는 커다란 욕망으로 가득 채워진 혹덩이를 등 뒤에 붙이고 사막을 건넌다.

사막이라는 곳이 원래 그렇다.

잘 나고 싶다고 잘 나고 싶다고...

밤을 새워봐도

온 몸에 힘을 발가락에 주고 달려봐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을뿐

원래 사막의 시계대로 딱 고만큼만 나가는 곳.

아무런 것이 없는 곳.

 

사막임을 알고도 간다.

사막임을 알고도 산다.

 

발아래 뜨거운 모래가 타고 오르고... 온 몸으로 모래바람이 휘감고... 머리위로 뜨거운 태양이 누르는.... 그 사막.

오늘도 수없는 사막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다.

사막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내 몸에 뚫어진 소통의 구멍들을 모두 막고...

그저 사막이 정해준 행렬의 순서를 지키기 위해 행렬의  속도에 나를 맞추는 것 뿐이다.

영원히 내 앞을 가고 있는 해와 별과 낙타의 뒤를 따라 ...

 

사막이다.

먹통... 바보...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사막이다.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타비오 빠스] 상호보조 Complementarios  (0) 2008.05.21
[박진성] 눈보라  (0) 2008.05.13
[이병률] 새 날  (0) 2008.04.25
[김종삼] 투병기  (0) 2008.04.22
[김종삼] 발자국  (0) 2008.04.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