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유성용] 여행생활자

by 발비(發飛) 2008. 2. 18.

 

여행생활자 :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

유성용 저 | 갤리온 | 2007년 06월

 

꽤 오래전에 'tv, 책을 말하다'에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과 함께 여행서로 소개되었던 책이다.

뭔가를 하고 있던 중에 힐끔 힐끔 보면서... 책 전문가(?)들의 말을 잘 듣지는 못했으나, 낭독부분에서 참 잔잔하고 지루한 사색여행기겠거니... 그리고 좀 나이먹은 사람이겠거니 생각했었다.

 

며칠 전의 이야기지만 왜 이 책을 떠올리며 읽어야지 생각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사자

나의 독서법대로 일단은 책의 장정과 종이들을 살폈고...

책디자이너가 누구인지를 확인했고...

혹 딴지걸 것이 없나 다시 한번 후후둑 책장을 넘겨보았다.

그 사이 몇 문장들이 내 눈에 읽혔을 것이다.

내 눈에 걸린 문장들은 내가 어느날 힐끔거리며 들었던 그 문장과 예의 같은 늙수구레한 냄새가 났다.

흠....

다음 수순을 따라 책 날개에 적혀진 저자소개란을 읽으면서 흠� 놀랐다.

생각보다 너무 젊은데... 바로 그 아래 다방이며, 맹물커피를 운운하는 폼은 영 언발란스하다.

저자 서문에 이어진 차례... 역시 골방 할아버지 냄새가 풍긴다.

---사실 이건 뒤에 생각한 것이지만 저자의 지리산냄새가 아직 몸에서 가시지 않은 때라서 그런가보다 접수했다.

 

책을 읽기 시작한다.

여행서를 읽을 때면 언제나 그렇듯 한 숨을 들이쉬고 그보다 더 긴 한 숨을 내어쉰다.

나를 좀 더 비워내고 저자를 따라 그의 세상으로 좀 더 들어가기 위한 나만의 습관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호흡이 느려지고 길어짐을 느낀다.

활자가 뜀박질을 하거나 띄엄띄엄 있거나 그렇지도 않은데 같은 활자를 읽으면서도 쓴 사람의 호흡법을 그대로 따라야지만

끝까지 읽을 수도 함께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그가 간 길은 내가 갔던 길도 꽤 있었다.

간간히 내가 간 길이라 따라잡기가 쉬웠다.

어느 사진은 내가 아는 사람의 얼굴도 있었고, 어느 사진에는 내가 밟았던 땅도 있었고, 어느 사진에서는 내가 췄던 춤이 흔들리며 있었다. 그것은 참 좋았다.

 

저자는 나와 같은 길로 다녔고

저자는 나와 같은 곳에서 잠을 잔 적이 있고

저자는 나와 같은 사람이 해 준 밥을 먹은 적이 있고

저자는 나와 같은 버스에서 웅크리고 이동을 한 적이 있고

....

 

저자도 혼자서 여행을 했다하고, 가끔 누군가를 만나 함께이기도 하고

나도 혼자서 여행를 했고, 가끔 누군가와 함께이기도 했고

...

 

세상사람과 좀 달라지고 내가 같은 것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동질감을 느끼며 안심이 되었다.

내내 아주 오랜만에 이야기가 통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비슷한 사람을 만난 느낌.

 

밑줄을 치는 조건을 정하기로 한다.

여행지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그의 말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할 때 밑줄을 치기로 한다.

 

이 곳에 태어났더라면 나도 저런 눈빛이겠는가

 

-누군가에게 그런 눈빛를 가진 나.

 

봄은 너무나 쉽구나 네 시간을 달려 이렇게 문득 봄이라니!

 

-오지 않는다 말할 것 없다. 꾸역꾸역 가면 될 것이다. 봄이 그곳에 있다.

 

꾸역꾸역 가면 될 길이다

 

-꾸역꾸역... 간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꾸역꾸역 가면 되니까...

 

저 어디쯤 묻힌 뼈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릴만도 하다

 

-나의 죽음을 본 적이 있다. 내 죽음 안에서 나의 뼈는 없었다. 알겠다. 죽음 뒤에 남을 뼈... 남을... 남을...

 

그가 향하는 곳을 나도 간다 생각하니 가뜩이나 강냉이로 퍽퍽하던 목이 더욱 메고, 가슴이 먹먹했다

 

-오체투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위해 길바닥에 몸을 맡기는 것, 몸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 그 이상의 것까지도 맡기는 것, 누군가에게 뭘 맡긴다는 것은 그리 가슴이 퍽퍽해지는 것이다.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어지는 카일라시는 세상의 끝에 가서야 만날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세상의 중심과 끝의 구별은 잠시 아득해져 버린 채, 그만 이름 모를 어느 낯선 혹성이 되어버린 듯 했다.

 

-세상 아니 지구에 사는 내가 지구처럼 생기지 않은 곳에 놓여졌을 때의 황당함, 그것을 경이롭다고도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그런 곳에 서면 자유를 느낀다. 세상이 아닌 곳이기만 하면 측정불가능한 나, 그건 불가항력이므로 당당할 수 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새들은 가끔씩 허공에 머리를 쳐박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사람들도 가끔씩 허공에 머리를 처박고 죽었을 것이다. 이 생에서 저버릴 수 없는 짐이 나와 그대의 어깨 위에 있다. 그 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말은 틀림이 없다. 죽지 않는다면야 일생동안 그 짐을 벗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가장 깊은 좌절과 막막함이 오히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위안이 될 것이다. 내가 일생을 다하여도 벗을 수 없다는 막막함, 그게 나의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이다

 

-나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단호하고 자신있는 목소리로 이런 위험한 발언을 거침없이 하고 싶었다.

 

"신은 고통과 고난 속에 있으면 어찌하십니까?

나는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는답니다."

 

-어둠, 홀로... 그것은 극한 상황이다. 극한 상황이 되면 인간은 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선을 넘나든다.

 

나는 등불을 밝히는 사람들 마음의 곁에 서서 그들의 기원 하나하나를 다 들어보보 싶었다. / 나도 기원의 기술을 하나 안다. 자주 되뇌고, 암송하고, 잊지 않을 것, 내가 아는 유일한 기원의 기술은 이토록 아주 간단하다. / 무언가를 기원하다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기원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기원을 이해하면 그 순간 기원이 이루어지고 동시에 사라진다./ 내가 무언가를 내 몸의 저 먼 실핏줄까지 혹은 땀구멍 하나하나까지 그리고 바라고 있다는 것은 내 이해력으로 쉽게 해독될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고의 영역을 넘어서 몸으로 기원하는 기술, 그것이 바로 내게는 자주 되뇌고, 암송해서, 잊지 않는 일이다.

 

-기도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의 기도법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기원할 일이 없다. 나를 위해 기원을 한다는 것은 너무 간지러운 일이고, 나의 가족을 위해 기원을 한다는 것은 나를 배반하는 길이고, 나의 주변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떠나온 서울 생활을 생각한다. 사랑 아니면 별 수가 없던 곳. 드래서 그곳 사람들의 사랑은 멀리서보면 그 어떤 생존전략 같다. 도시에서 사랑도 없이 도대체 무엇에 기대어 꿈구고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 책 중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이다. 서울로 돌아오기만하면 사람이 생각나고, 그리워지고, 목말라진다. 사랑이 서울에서 감당해야할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이란다. 그건 서울과 사랑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난 그 사이에 있을 뿐이었다. 서울에서는 사랑을 하지 않으면 뿌리가 없는 듯 온 몸이 흔들린다.

 

들숨과 날숨의 마찰로 생기는 열기. 그 가슴 속의 불씨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라고 말해준다.

 

-여행이 그런 것이다.

 

떠나는 나도 알고 떠나보내는 그대도 안다. 하지만 간혹 사랑하는 이를 만나 여행을 멈춰버리는 이들도 있다.

 

-멈춰버리고 싶은 강력한 욕구에 시달린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온다.

 

꽃 속에 있으면 꽃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꽃 속에 두지 마라. 나를 꽃들 사이에 놓지 마라. 나에게 불가피한 상황이 되어버리니..., 그것 또한 죄라 하니...

 

간만에 다시 배낭을 꾸리면서 여행중에 쓰던 옷가지며 물품들을 여행자에게 나눠줬다.

 

-간만에 꾸리는 배낭은, 돌아가는 길이다. 돌아가는 길에서는 기억을 버리듯 짐을 버린다. 돌아가는 길에는 짐이 되는 것들이 많아진다.

 

중간쯤 이르렀을때 다리는 심하게 휘청대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바람에 펄럭이는 거다.

 

-내가 바람에 펄럭인다는 표현을 쓰다니... 갑자기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라는 사진집이 생각난다. 아무도 없는 곳에 서 있는 나무.... 그 나무도 펄럭이던데...

 

만나고 헤어지는 이들이 그립지 않다.

 

-길 위에 있다보면 어느 순간 그리워서 가슴 속에 있던 사람이 저 멀리서 작별의 손을 흔들 때가 있다. 아쉽지만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나는 어디까지 홀로 되려고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있는가.

 

-가슴이 내려앉았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이 바로 이거야! 나는 어디까지 홀로 되려고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홀로 보고 있는가.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난 순간, 어떤 것도 나눌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음을 감지했다.

 

세상에는 맥주라는 것이 있었지?

그리고 이 세상의 반은 남자고, 나머지 반은 여자로군!

 -파키스탄에서 태국에 도착했을 때 여자가 가장 낯설었다. 음식을 서빙하고 있는 여자의 손길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한동안 길에서 만난 여자들이 어색하기만 했었지. 이미 오래전에 여자가 아닌 여행자로 분류되었던 나.

 

 

그는 일년하고도 반을 떠돌았다고 했다.

여행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알고 보면 세상의 끝을 향해 내딛는 것이다.

세상 앞으로 가는 것이지만, 세상을 등지고 서는 것이다.

 

난 내가 여행을 갔던 이유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가 갔던 곳이 어디이든 내가 갔던 곳이 어디이든

그가 갔던 곳에는 세상의 끝에서 선 그가 있었고, 내가 갔던 곳에는 세상의 끝에 선 내가 있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