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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인도6]맥가이버칼이 주인을 찾다

by 발비(發飛) 2007. 9. 14.

 맥가이버칼이 주인을 찾다

 

새벽에 일어나 타즈마할을 관람하러 갔다.

언젠가 수족관이 집에 있었을 때 수족관안에 있던 모형이 타즈마할이었는데, 그때도 어른이었으나 타즈마할은 내게 아틀란티스처럼 물속 궁전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세번 헉 하면 들어선 타즈마할에 대한 언급은 피하려 한다.

인간이 어찌...

그들이 어찌...

하면서 옆에서 돌아다니는 껄떡꾼 인도사람들을 쳐다보게만 된다.

사자한이 갇혀서 자신이 사랑한 아내의 무덤이 있는 타즈마할을 바라만 보았다는 아그라포트까지 돌았다.

이건 회피다.

(사실 타즈마할에서 찍은 사진은 파일 정리 중 모두 날아가버렸다. 다시 보라는 신의 계시일 것이라고 모든 이들이 위로했음. 그 말을 믿기로 했음)

 

저녁에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좀 일찍 나갔다.

너무 많이 걸었던 것일까?

몇 년을 신기는 했지만, 아주 튼튼한 스포츠샌들의 밑창이 벌어진다.

너무 더운 날씨에 좀 걸었더니 덜렁덜렁 거렸고,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질질 끌고 가는데,

구두를 수선하는 열 몇 살쯤 되는 아이가 다가오더니 나의 샌들을 가리키며 고쳐줄 것라는 표현을 한다.

어차피 고쳐야 신지 싶어

그래 고치자그랬다.

본드는 사용하지 않고 굵은 실로 샌들을 꿰매기 시작한다. 아주 열심히 잘 꿰매고 있었다.

수선하는 아이는 한 쪽 샌들을 다 꿰매고, 실을 자르는데... 가위도 칼도 없이

구두약뚜껑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든 것을 들고 바닥에다 실을 대고 긁어서 자른다.

구두를 수선하는 일을 하면서 칼도 가위도 없이 ...

나머지 한 쪽 신발을 꿰매고 있을 때 난 고민했다.

배낭속에 든 빨간 맥가이버칼이 눈이 밟히지 시작한다.

칼도 있고, 가위도 있고, 줄도 있고, 병따개도 있고.... 뭐든 다 있는 맥가이버칼이 너무나 또렷이 생각이 나더란 말이지.

에라 하고 배낭에서 맥가이버칼을 꺼내서 손에 꼭 들고 있다가, 나머지 한 쪽 샌들을 고치고 실을 자를 때를 기다려 맥가이버칼을 보여주었다. 한 번 사용해보라고 시늉해보였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수많은 도구에 놀람의 극치를 보인다.

가위로 싹뚝 자르더니 얼굴이 환해진다.

또 갈등. 또 갈등....

그냥 선물이라고 가지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인도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그 수선하는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기도 한다.

난 마치 대단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대단한 사람으로 아는 모양이다.

 

사실, 난 여행을 위해 준비했지만 여행 5일째날 난 나머지 여행을 생각도 않고 보다 효용가치가 높은 일에 걸기로 했다.

난 언제나 미련이 없다.

내곁에 있는 것보다 다른 이의 곁에 있는 것이 더 빛날수 있는 것이라면, 난 다른이의 곁에 있기로 한다.

남은 여행동안 어찌될런지 난 모른다.

꼭 필요할 때가 올런지 모른다. 하지만 신발을 수선하는 그에게 훨씬 더 필요한 것이니 후회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주인이란 원래 있지 않았다.

잘못된 주인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쓰임이 가장 적절한 곳에 놓여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주인인 것이다.

맥가이버칼이 내게도 분명 쓰임이 있겠으나, 나보다는 더 적절한 주인을 만났다는 생각에 많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구두를 수선하는 일이 좀 더 쉬워져서 그가 점점 나아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내 분신이 되기도 한다.

 

지금 너에게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는 것.

서로에게 주인이 되는 것.

너와 나의 관계는 주인과 쓰임의 관계로 보면 최적일까... 아니었으니 옆에 없는 것이겠지.

 

 

 내 샌들을 고치고 있는 신발수선공... 내 맥가이버 칼은 잘 있겠지?

 

 

맥가이버 칼을 꺼내서 선물하자 모두들 모여들었고, 그 후 근처에 있는 인도인들과는 호의적이 되었다.

 

 

 

5. 2006/06/03[메모]

새벽 5시. 타즈마할 관람. 아그라포트.

오후 4시 바라나시행 기차.

기차역에서 신발 수선. 맥가이버 칼 수선아이에게 선물. 원숭이가 바나나를 가로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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