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
막강세력이다.
상상초월이다.
바지를 사기위해 옷가게로 갔다.
250루피라면서 실크라면서······.
여행초자티를 팍팍 풍기는 내게 주인이 들이댄다.
그때 마침 인도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들어가신다는 아주머니 한 분이 가게로 들어오셨다.
250루피라고 말하는 주인을 보더니, 한국말로 “사깃꾼!”저더러 100루피 아니면 절대 사지 말라고 하신다.
옆에서 계속 100루피를 부르기만 하라고 코치를 하시네.
나? 시키면 잘 한다!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펄펄 뛰는 주인을 보시고는
“나가는 시늉해.”
나? 시키면 너무 잘한다.
그런데 이 주인 놀랍게도 나를 두 손으로 꽉 잡더니 100루피에 가져가란다.
손을 놓으며, 그 아주머니를 순간 째려보는 거 나 봤다.
도대체 이 옷의 정말 가격은 얼마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노점도 마찬가지다.
손수건 한 장에 얼마냐니까 20루피란다.
그런데 그 사이 시간은 흘러 인도에 온 지 일주일이 되었네.
시장조사 끝냈지.
이미 네 곳을 미리 가보았다.
(어떤 물건이든 돈을 치러야 할 경우 3곳 이상을 돌아다녀보면 적정가격을 알 수 있다. 모두가 바가지는 분명 아니니까.)
처음 가게에선 10루피, 두 번째 가게에선 20루피.
그렇다면 5루피인 것이다.
이땐 “5루피 아니면 안 사!” 하고 돌아서면 “5루피!”하면서 손수건을 내민다.
원래 가격이 5루피인거지.
그래도 역시 가장 압권은 릭샤왈라들과의 흥정
“어디 가니?”
“*** 간다. 얼마야?”
“50루피.” (사전조사에 의하면 15루피 정도의 거리입니다.)
“너무 비싸!”
“그럼 얼마?”
“20루피."(선배의 조언에 의하면 1/3가격에서 흥정을 시작하라는데, 떨려서)
“안 돼. 그럼 40루피”
“나도 안 돼. 비싸게 부른 거 다 알아. 20루피.”
“특별히 잘 해줄게. 30루피.”
“비싸. 20루피 아니면 안 타!”(돌아서서 갑니다. 90퍼센트는 다시 잡습니다.)
“알았어. (투덜대며) 20루피!”
때로는 보통 역 주위에 몰려있는 수많은 릭샤 들끼리 담합을 한다.
수십 명 되는 모든 릭샤왈라들이 30루피라고 말하며 웃긴다는 듯이 수근댄다.
이때 과감히 돌아서서 10미터쯤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으면,
그런 사람 꼭 있다. 배신자! 혹은 맘 약한 릭샤왈라!
“그래, 20루피에 가자.”
뒤에선 핑핑대며 나에게가 아니라 맘 약한 우리들의 배신자에게 욕설들이 날아온다.
“짤루······. (어쩌고 저쩌고.)”
그것이 끝이 아니다.
자전거릭샤왈라는 똑같은 실랑이를 한 뒤에 어찌 알았는지 내 안에 숨겨 둔 측은지심을 자극한다.
옆에 현지인은 어마어마하게 태워도 잘도 달린다.
나 하나 태우고 가는데, 땀을 닦느라 서다가다를 반복한다. (물론 내가 다이어트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이 있기는 하지만.)
목적지까지 다 와서 땀을 닦느라 돈을 받는 것도 주춤거리기까지,
요 경우에도 여러 가지다.
주춤거리면서 떫은 표정으로 그냥 받는 경우.
거스름돈이 없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경우.
(작은 돈을 꼭 갖고 다녀야한다. 식당 가게, 매표소 모두... 그들은 거스름돈이 없다.)
가지 않고 힘들다면서 더 달라고 계속 서 있는 경우.
이렇게 악다구니를 쓰면서 제 값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물건 하나 사는 것이 너무 피곤한 일이 되었다.
치약을 하나 사도 두배 세배부터 시작하는 인도사람들 정말 징그럽게 짜증난다.
그렇게 사기치며 물건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도 않는다.
가게 앞으로 나와 길을 막고 호객한다. 소위 삐기다.
그래서 숙소를 나올 일이 있으면 큰 숨을 들이키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길에는 소똥 개똥이 널려있고, 어른 삐기들은 “헬로우!” 하면서 여기 저기서 불러대고, 아이삐기는 끝도 없이 졸졸 따라 다닌다.
거기다 갓난아이를 안은 여자들은 까만 손을 연신 입과 코를 왕복하며 박쉬쉿을 요구한다.
처음에는 여행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하면서 너무 독하게 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 번은 속고 사기 당했지.(크게 당한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항상 바가지.)
그들에게 몇 번 그렇게 당하고 나면 속으로 욕을 한다.
'그러니까 너희들 평생 그러고 살지!'
혹은 그들이 내게 다가올 때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있는 나를 볼 때의 기분, 이게 뭐야?
그들에게 따라 오지 말라고 소리치거나, 안 산다고 소리치거나, 저리 가라고 소리치거나······.
난 그들의 카스트로 보면 제 5단계인 불가촉천민인데도 말이지.
소리를 치면 그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놀리듯이 웃는다.
참 답답한 일이다.
요즘 자주 가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12살의 아이는 말을 할 때마다 영어의 문법에 맞춰 이야기 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읽고 있는 책을 보니, 영어사전이다.
영어와 힌디어로 된 사전이 신기해 구경하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
“넌 힌디어를 모른다. 난 영어를 잘 모른다.”
“난 한국어를 안다. 힌디어는 하나도 모른다. 영어는 잘 모른다.”
“난 한국어를 하나 안다. 안녕하세요.”
“나도 힌디어를 하나 안다. 나마스떼.”
레스토랑 건물아래 수많은 상가 앞에서는 수많은 삐기 아이들이 지나가는 외국인들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시간이었다.
어제는 바늘과 실을 사러 시장을 갔다.
두 군데 가게에서 바늘과 실이 40루피란다.
그리고 몇 군데 더!
(정말 실, 바늘을 사는데도 이래야 하는 건지, 그냥 40루피를 주고 살수는 없다. 실, 바늘을 한 끼 밥값에 살수는 없다.)
인도 현지인들이 주로 다니는 시장 깊숙한 곳에 있는 가게에서 4루피를 주고 샀다.
그 옆의 노트를 파는 곳에서도 20루피에 예쁜 노트 한 권도 샀다.
기분 좋게 샀다.
그들끼리 주로 사는 곳에는 사기 안치고 사나보다. 나도 그들이고 싶다.
누구는 인도여행의 승패는 인도에서의 흥정에 있다고 목청을 높여 이야기했다.
그냥 대충 그들에게 보태준다고 생각하고 그냥 산다는 말에, 그가 한 말이다.
“지금 내가 당한 사기금액이 다음 여행자에겐 적정가격이 되어버린다. 뒤에 오는 여행자를 위해서 우린 적정가격을 수호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
그 다음부터 열심히, 열심히, 아니 웬만하면 최선을 다해 흥정을 하고 물건값을 후려지면서 다녔다.
근데, 너무 힘들어.
정찰가격표 붙은 내 나라가 그리워!
'삐기'만 없으면, ‘사기’만 없으면
소도 용서한다. 개도 용서한다. 원숭이도 용서한다. 도마뱀도 용서한다. 소똥도 용서한다. 바퀴벌레도 용서한다.
지금 당신에게
도무지 길을 걸을 수 없어.
한 걸음을 디딜 때마다 밟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오늘, 말이지.
길을 가다 소똥을 밟았거든,
옆에 붙어 나를 괴롭히던 옷가게 삐기가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뭐라는 줄 알아?
“Good luck!”
분명,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거야.
그런데, 나 말이지.
그 사람한테 눈을 째리면서 저리가라고 마구 소리 질렀어.
내가 소리를 마구 질렀다고. 악다구니를 쓰더라니까. 내가 말이야.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거지?
자전거릭샤할아버지... 그 다음부터 할아버지릭샤의 자전거는 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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