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온 순서대로 놓자면 충만한 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일 포스티노의 순이다.
네루다.
공산주의, 정치적, 여자들, 소네트... 정현종... 그냥 시인이라기 보다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그래서 우리같지 않은 시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충만한 힘
파블로 네루다
나는 쓴다 밝은 햇빛 속에서, 사람들 넘치는 거리에서,
만조 때,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곳에서;
제멋대로인 밤만이 나를 억누르지만
허나 그것의 방해로 나는 공간을 되찾고,
오래가는 그늘들을 모은다
밤의 검은 작물은 자란다
내 눈이 평야를 측량하는 동안,
그리하여, 태양으로만, 나는 열쇠들을 벼린다.
불충분한 빛 속에서는 자물쇠를 찾으며
바다로 가는 부서진 문들을 열어놓는다
찬장을 거품으로 채울 때까지
나는 가고 돌아오는데 지치는 법이 없고,
돌모양의 죽음은 나를 막지 못하며
존재에도 비존재에도 싫증나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내 모든 광물성의 의무를 어디에서 물려받았을까......
아버지나 어머니일까 아니면 산들일까,
생명줄들이 불타는 바다로부터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계속 가니까 나는 가고 또 간다는 것
또 내가 노래를 하고 또 하니까 나는 노래한다는 걸.
두 개의 수로 사이에서 그러듯
내가 눈을 감고 비틀거릴 때
일어난 일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쪽은 죽음으로 향하는 그 지맥 속에서 나를 들어올리고
다른 쪽은 내가 노래하게 하기 위해 노래한다
그리하여 나는 비존재로부터 만들어지고,
바다가 짜고 흰 물마루의 파도로
암초를 연타하고
썰물 때 돌들을 다시 끌고 가듯이
나를 둘러싼 죽음으로 된 것이
내 속에서 삶을 향한 창을 열며,
그리고, 존재의 경련 속에서, 나는 잠든다.
낮의 환한 빛 속에서, 나는 그늘 속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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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뭔지 잘 모르는데.... 뭔가 차근차근 보면 알 것도 같을 때,
그것이 답이 아니더라도, 마리오의 말처럼 시는 쓰고나면 시인의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이니까...
난 충만한 힘과 댓구를 시작한다.
무슨 말이니?
나는 쓴다 밝은 햇빛 속에서, 사람들 넘치는 거리에서,
만조 때,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곳에서;
제멋대로인 밤만이 나를 억누르지만
허나 그것의 방해로 나는 공간을 되찾고,
오래가는 그늘들을 모은다
햇빛 속에서, 사람이 넘치는 거리에서 서 있단다.
세상 한 가운데에 서 있으라고 누군가에게 명령을 받았다.
세상 한 가운데에서 세상을 노래하라고 한다.
세상에게 가장 적절한 노래를 하라고 세상 한가운데에다 나를 서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의 노래는 어둠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어. 난 어둠이 주는 넓디 넓은 공간에서만이 자유로울 수 있거든...
어둠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지워버려 난 지워놓은 세상을 아무렇게나 날아도 부딪히는 것이 없어, 거침없을 수 있어.
난 내 몸이 자유로운 어둠을 좋아해. 햇빛 아래,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난 어둠을 모아, 언제나 자유를 포기할 수 없어, 난 그늘이라도 모으는 것이지.
밤의 검은 작물은 자란다
내 눈이 평야를 측량하는 동안,
그리하여, 태양으로만, 나는 열쇠들을 벼린다.
불충분한 빛 속에서는 자물쇠를 찾으며
바다로 가는 부서진 문들을 열어놓는다
찬장을 거품으로 채울 때까지
성장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광합성? 엽록소?
그런 의미에서 난 식물성이 아니야. 난 햇빛 아래서 자라지 않아.
어둠 속에서 자란, 그래서 웃자란 동물일 뿐이지... 웃자란 동물, 그래 웃자란 동물은 사냥도 하지 못하는 동물, 덩치만 커다란 동물은
밝은 빛을 두려워해. 그렇지만 필요해
태양이 떠오르는 어느 날이면 잠시 잠깐 빛 속으로 가는 문을 열어놓기도 하지.
잠시 빛속에서 보인 먹이들...
어둠 안에서 자란 웃자란 동물은 빈 입에 거품만 푹적푹적 거린다.
나는 가고 돌아오는데 지치는 법이 없고,
돌모양의 죽음은 나를 막지 못하며
존재에도 비존재에도 싫증나지 않는다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하다.
그것도 캄캄한 어둠 속에서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하다.
혼자는 노는 데, 흙바닥에 나무 작대기 하나 들고 그림을 그리다가 발로 쓱 지워버리고, 몇 글자를 쓰다가도 쓱 지워버리고, 땅따먹기 지도를 그리다가도 쓱 지워버리고 어떤 것을 그리더라도 지우더라도 지치는 법이 없어... 어둠 속의 흙바닥은 너가 없거든... 내가 싫증나고 지치는 것은 너때문이거든... 너라는 존재는 나를 눈금자위에 두거든. 눈금자 위에 선 나는 언제나 적합지 못해. 적합하지 않는 나는 언제나 다시 다시 이것도 아니 저것도 아니 난 아닌 것에 싫증 나. 너가 없으면 난 내가 아니고, 내가 없기도 하고, 내가 전부이기도 내가 귀퉁이기도 어느 것으로 난 자유롭지... 있고 없고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 너가 없는 나는 존재도 비존재도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닌 것은 그저 세상이 되지. 세상이 내가 되지... 너가 없다면 이 모든 것은 가능해.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내 모든 광물성의 의무를 어디에서 물려받았을까......
아버지나 어머니일까 아니면 산들일까,
헉!
대체 나의 광물성은 어디에서 물려받았을까?
아무것도 아닌, 내겐 찾을 수 없는 광물성은 왜 내게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지?
미네랄을 먹어주라고? 발라주라고? 그럼 건강해지고 이뻐진다고? 내게 광물성을 준 적이 없었어.
그런데 나에게 왜 요구하는 것이지.
광물성의 의무를 왜 내게 져야하는 것이지.
누가 갚지 않는 부채였던 것인지... 아버지야? 어머니야? 아님 세상이야? 왜 나더러 갚으래!
난 먹는 것도 바르는 것도 안 하고 싶어. 난 의무없다고 떨치고 싶어.
내게 없었던 것은 원래 내가 아니야.
생명줄들이 불타는 바다로부터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계속 가니까 나는 가고 또 간다는 것
또 내가 노래를 하고 또 하니까 나는 노래한다는 걸.
굴러가는 것은 굴러가려고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후 부터 생각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나의 모든 것들이 생각으로으로 출발했다.
밥을 먹기 전에도 무엇을 먹을까 생각을 하고,
옷을 입을 때도 무엇을 입을까 생각을 하고,
잠을 자기 전에서 언제 잘까 생각을 하고,
내가 생각하기 시작하고 부터 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동물이 되었다.
나도 안다.
내가 생각을 하니까 자꾸 생각 속에 빠져 살 게 된 것을 ...
삶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두 개의 수로 사이에서 그러듯
내가 눈을 감고 비틀거릴 때
일어난 일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쪽은 죽음으로 향하는 그 지맥 속에서 나를 들어올리고
다른 쪽은 내가 노래하게 하기 위해 노래한다
두 개의 수로라는 말에 지지한다.
그리고 한 쪽은 죽음으로 향하는 지맥속에 있는 나를 들어올리고 있다는 것, 또 한 쪽은 여전히 노래하기 위해 노래한다는 것에도 지지한다.
사람의 다리는 두 개. 모두 두 개인가?
두 개의 다리를 가진 것은 두 개의 세상에 한 발씩 발을 올려두고...
한 발은 삶에 , 한 발은 죽음에
어느 날은 죽음에 가까운 삶을 살기도 하고, 어느 날은 삶에 가까운 죽음을 경험하기도 해.
그래 삶을 말하자. 하면 삶을 따르는 것들이 줄줄이 줄을 서고
어느 날은 죽음을 말하지, 하면 죽음을 따르는 것들이 줄줄이 줄을 서고
언제나 두 줄은 길어.
삶과 죽음을 같이가고 있는 .... 긴 줄.
그리하여 나는 비존재로부터 만들어지고,
바다가 짜고 흰 물마루의 파도로
암초를 연타하고
썰물 때 돌들을 다시 끌고 가듯이
나를 둘러싼 죽음으로 된 것이
내 속에서 삶을 향한 창을 열며,
그리고, 존재의 경련 속에서, 나는 잠든다.
낮의 환한 빛 속에서, 나는 그늘 속을 걷는다.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존재와 비존재, 빛과 어둠, 삶과 죽음...
마치 수많은 선택의 기회들을 인간에게 준 듯 하지만 이 확연한 이분법의 틀 속에서 오고가는 것이 삶일 것이라는.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듯 싶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안 하고 딱 두 가지 뿐일 것이라는...
그러므로 나의 선택에 대해서 많은 경우의 수를 대비시키지 말자는 ....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가지 않은 딱 한 가지를 덮는 것 뿐이라는...
단 한 가지의 길을 가고
단 한 가지의 길만 포기하고 가면 되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햇빛과 그늘의 차이는 딱 한 걸음이듯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단 한걸음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간단히 하자.
간단히 마음 먹자.
충만한 힘!!!!
정말 간만에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다.
가벼운... 맘으로 쭈욱 읽었고,, 주인공인 마리오를 따라가다 낄낄거리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하고
대체로 이 소설은 개운한 맘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런 편안함은 소설의 극적인 상황이나 갈등 구조에 익숙해져버린 우리들에게 마치 청소년물 영화를 본 듯이 가벼웠다.
소설에서 말하는 인물이 '네루다'이더라도 말이다.
마치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의 교재로 줄을 그으면서 읽고 싶기도 했다. 정말 그렇게 다시 읽어볼까 하고 생각했다.
마리오 옆에 나란히 앉아서 말이지.
일 포스티노...
이 영화는 책보다 더 유명하고, 그 만큼 아름답다.
내가 이태리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첫번째 아름다운 색깔이다.
이탈리아의 파란 바다와 바다를 끼고 놓인 무채색에 가까운 길,
무채색 길 옆으로 나란한 각양각색의 대문들, 그리고 집으로 통하는 구멍들, 대부분 하얀 집들, 가끔 보이는 분홍색 집들.
까만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억양이 강한 그들의 말...
아마 이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을 찾으라면 그들의 말일 것이다.
내내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보다는 스토리는 별로 였지만,
그들의 말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잠시 딴 세상에 갔다 온 듯 했다.
난 그를 알지 못했는데,
나도 그의 우편배달부를 통해 그를 만나게 되었다.
네루다의 동네 사람들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때문에 네루다와 친할 수 있게 된 것 처럼 나도 그랬다.
충만한 힘이라는 시집의 시들은 네루다가 이슬라 네그라에 머물면서 쓴 시들이라 했다.
그러니까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만나고 있을 당시에 쓴 시들이다.
그는 격리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바다를 마주했다.
바다에 치는 파도와 파도를 견뎌내는 모래와 절벽들을 보면서 세상을 읽었다. 노래했다.
그의 말처럼 시인으로 타고난 의무를 생각해서...
그는 바다를 보면서 시를 쓰면서
사랑을 했다 했고, 파티를 했다했고, 아주 기분좋은 아이같은 사람이라했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에서의 캐릭터는 그렇지만은 않았다.
영화는 소설에서의 이슬라 네그라라는 장소을 이태리의 한 어촌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사춘기를 막 지난 파릇한 마리오는 폭삭 늙은 노총각으로 바꿔놓았다.
원작이 같은 두 가지의 이야기는 어쨌든 우편배달부의 이야기를 한다.
무식한 마리오,
겨우 문맹을 벗어난 무시한 마리오는 어촌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배를 탈 수 없다.
멀미때문에... 그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이 어촌에 네루다가 이사를 오면서 동네 전체의 우편물보다 더 많은 우편물을 배달해 줄 우편배달부가 필요했고,
마리오는 우편배달부를 시작한다.
도무지 볼 일이 없던, 그것도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는 네루다를 매일 본다는 것,
마리오는 네루다를 만나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씩 네루다를...
처음에는 네루다의 전방 30미터 밖에서 그리고 점점 가까이..
시인은 다른 종류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들을 만난 마리오는 단어 하나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세상.
시적 언어라는 것은 한번 듣고도 내게서 떠나지 않는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면,
나로서도 경험한 일이 있다.
마리오가 네루다를 만나고 온 날이면 창가에 멍하니 서서 단어 하나를 곱씹는다.
난 그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단어를, 그 단어가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것, 그래서 단어 하나로 새로운 세상을 발을 디디게 되는 것.
마리오도 그것을 경험한다.
시적으로 사용된 단어를 만나면서 만나게 된 세상,
그 세상은 결국은 처음 가는 낯선 세상이지만,
또한 그 세상은 이미 내 가슴 안에서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아무도 모르는 미개척의 세상이다.
마리오는 자신 속에 들어있던 세상을 만나게 된다.
내 안에 숨어있는 무한한 세상,
내 안에 세상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것은 새로운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힘이 된다.
마리오의 경우에는 그 힘을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데 사용하고 역시나 굉장한 에너지로 성공한다.
멋지다.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멀리서 바라보다 말았을 너무나 작은 마리오였을텐데..
영화와 소설은 달리 갔다.
소설은 네루다가 마리오를 잊지 않고 그리워했다. 바다와 갈매기의 소리를 듣고 싶어했고 마리오는 네루다를 위해서 소리를 들을 모아서 네루다에게 보낸다. 그리고 네루다가 죽는다.
영화는 네루다는 공사다망하여 마리오와 연락이 끊어진다. 마리오는 네루다를 그리워한다. 언젠가 하지 못한 바다의 소리를 모으고, 네루다때문에 쓰게 된 시를 네루다때문에 공산주의 집회에서 밟혀 죽는 것으로 나온다.
그때 생각했다.
역시 허구구나.... 영화도 소설도 허구구나. 허구라서 섭섭하다는 것이 아니라 허구라는 것은 원하는 대로 만들수 있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와 책을 본 잠시 뒤,
문득 깨달은 것!
우편배달부가 주인공이었는데, 아니더라는 것이다.
네루다였다.
네루다라는 시인의 손길을 미친 한 인간이 어찌 변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네루다는 무지한 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 대단한 시인이라는 이야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가 훌륭하다.
누군가를 만나서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보다 더 멋진 만남은 없다.
그런데 네루다가 조종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소설을 쓴 사람이나 영화를 만든 사람이나 큰 것에 대해 위대한 것에 대해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왠지 억울하다는 느낌.
내 눈에는 바닷가 절벽에 자전거와 자신의 몸을 약간식 비껴세우고 바다를 바라보던 마리오가 선한데....
은유에 대한 주절거림을 끊임없이 하던 마리오가 활자로 말똥한데...
마리오는 잊혀지고 네루다의 시들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강자!
아무튼 꼬리를 물고 읽고 본 '충만한 힘'이라는 시집,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소설,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 아름다웠다.
잠시 어느 세상을 다녀왔다.
난 지금 휴가 중.
---시 한 편 더!
일 포스티노
황지우
자전거를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클 대고
별을 녹음했지
태동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 번호에
그대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테이크되고;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신촌역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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