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 Der himmel ueber Beerlin)
빔 밴더스 감독/ 130분/ 1987
베를린으로 내려온 천사 다미엘과 가서엘은 각자의 구역에서 본 인간세상 이야기를 나눈다.
도입부에 다미엘의 이야기이다. 다미엘천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인 나를 본다.
정신적으로만 산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야.
나는 영원히 정신적인 존재이지.
그러나 가끔 그 사실이 버겁도록 질리기도 해.
나는 더이상 이 위에서 영원히 떠다니고 싶지 않아.
나는 나의 무게를 감지하고 싶어.
그 무게가 나의 무한성을 걷어내어 주고,
나를 땅에 단단히 고정시켜 주겠지.
나는 걸을 때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싶어.
그러면 '지금 이 순간'과 '지금 이 순간'을 매번 말할 수 있겠지.
늘 그랬듯 '오래전부터' 나 '영원히'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야.
걸을 때면 관절들이 함께 걷는 것을 감지하고 싶어.
항상 모든 것을 아는 대신, 그저 예감하고 싶어.
그의 말을 들으며 순간 순간의 생명의식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구나 싶었다. 그렇구나!
인간을 향한 그리움을 가진 다미엘은 망하기 직전인 서커스단에서 곡예를 하는 마리온의 외로움을 본다.그녀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낀 다미엘은 만지고 느끼고 아픈 감각이 살아있는 인간이 되어 한다. 가서엘의 반대에도 인간이 된 다미엘, 머리를 다쳐 흐르는 피를 먹어보고 맛있다며 살아있는 인간임을 기뻐한다. 그가 천사였을때 그와 가장 닮은 아이가 아이였을 때라는 시에 나오는 그 아이의 모습이다. 아이의 모습에 가까운 어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인간이라서 행복한 다미엘은 마리온을 찾아간다. 그 둘은 함께 한다. 그리고 천사였던 다미엘은 인간이 되어 처음 나눈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누가 누구였던가? 나는 그녀 안에 있었고 그녀는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놀라운 것을 배웠다.그녀는 나를 고향에 온 느낌으로 이끌었고,나는 고향의 편안함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우리 둘에 관한 놀라움이,그리고 남성과 여성에 관한 놀라움이,나를 인간으로 만들어내었다.
그가 천천히 적어내려가고 있는 이 말들.
인간의 모습으로 살면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임에도, 가장 가치있는 것임에도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어른이라는 인간이 되어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이 되어버렸다.
천사였던 다미엘이 아이같은 사람이 되어서 가질 수 있는 행복이다.
혹 나도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인간이라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우린 아마도 우리 비교대상을 너무 좁게 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나의 옆에 사는 누구, 나의 앞에 사는 누구...
그런 쪼잔한 삶이 아니라, 저 높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나무, 바다, 바람, 해... 그리고 천사.
그 대단한 것들이 할 수 없는 일들,
우리는 모든 것이 유한해서, 유한하다는 것을 담보로 얻어낸 행복, 기쁨들을 써보지도 못하고 반납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몇 개의 티켓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써보지도 못하고 유효기간이 지나 그냥 반납하고 만다. 체크해야 할 일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 멋진 영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시인 듯 아름다웠던 영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해서 읽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다미엘이 남긴 한마디.
나는-이제-안다,어떤-천사도-알지 못하는-것을.
그리고 얼마전 올렸지만, 이 영화에 전편에서 다미엘이 읊은 시 '아이의 노래'를 다시 올린다.
아이의 노래 - Peter Handke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다
시냇물은 하천이 되고
하천은 강이 되고
강도 바다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였을 때 자신이 아이라는 걸 모르고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었다
책상다리를 하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사진 찍을 때도 억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난 여기에 있고 저기에는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조각은 아닐까?
악마는 존재하는지, 악마인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인지,
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만 나일 뿐인데 그것이 나일 수 있을까..
아이가 아이였을 때
시금치와 콩, 양배추를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것을 잘먹는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낯선 침대에서 잠을 깼다
그리고 지금은 항상 그렇다
옛날에는 인간이 아름답게 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옛날에는 천국이 확실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상상만 한다
허무 따위는 생각 안 했지만 지금은 허무에 눌려 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아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열중하는 것은 일에 쫓길 뿐이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사과와 빵만 먹고도 충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딸기만 손에 꼭 쥐었다
지금도 그렇다
덜 익은 호두를 먹으면 떨떠름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산에 오를 땐 더 높은 산을 동경했고
도시에 갈 때는 더 큰 도시를 동경했는데
지금도 역시 그렇다
버찌를 따러 높은 나무에 오르면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도 그렇다 어릴 땐 낯을 가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항상 첫눈을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막대기를 창 삼아서 나무에 던지곤 했는데
창은 아직도 꽂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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