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책은....
딱 한 달 전에 모든 작업을 끝내놓고 해결되지 못한 해외판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 원고의 모양으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원고라는 것은 미완성이면서 설레임이다. 가능성이다.
매일 원고의 상태로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으면서, 손이 가서 어느 쪽을 갈라도 정신이 바짝 들 정도의 야함이 항상 있었다.
나의 기분에 따라 포르노영화가 되기도 하고, 예술영화가 되기도 했던 ....
방금 최종검판을 끝낸 필름이 인쇄소로 넘어갔다
『중독』
4*6변형판| 276쪽| 11,000원| ISBN 978-89-5624-285-9
인쇄일| 2007.06.29 발행일| 2007.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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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중독』 | 저자 드니 로베르 | 역자 성귀수 | 도서출판 이지북
‘성’이라는 거울을 마주한 현대 여성 심리 보고서
······ 그 거울 속에 한 남자가 마주보고 있다
지은이 드니 로베르 Denis Robert
대학에서 심리언어학을 공부했으며, 리베라시옹(Libération)지에서 12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그의 소설 창작 기법은 주로 실제 인물의 인생을 소재로 하여 예기치 못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는 점에 있다.
저작으로는 소설『사랑하는 마틸드』1991 『불행을 만들 거야』1995 『우리의 일하는 영웅』1997 『행복』2000, 에세이『살아있으므로 모든 게 잘 되어간다』1997 『정의와 혼돈』1996 『반항』2000, 사회과학인문서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공저)등이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어떻게 썼는가?
(한 여자 친구의 메모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이 소설은 두 개의 목소리가 서로 자신의 내면적 상황을 번갈아 가며 제시한다는 데 무엇보다 참신한 매력이 있다. 성(性)을 중심에 둔 공동의 체험을 서로 다른 고독한 두 자아가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는지를 추적해가는 재미가 예사롭지 않다. 이 소설은 또한 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어렵고도 진지하게 정립해가는 현대의 여성 심리 보고서로도 가치 있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2년 전쯤 한동안 보지 못했던 여자 친구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녀는 남편과 애인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거짓 속에서 살기가 너무 피곤하며, 글로나마 모든 걸 털어놓고 싶다고 하더군요. 애인과 더불어 그녀는 온갖 난교 파티장과 교환클럽을 두루 섭렵하면서 극한을 달리는 무절제한 생활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글을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부추겼죠. 그 때부터 그녀는 내게 정기적으로 사랑과 성에 관련한 자신의 내밀한 고백과 체험이 담긴 메모지를 보내왔습니다.
한 50여 장쯤 메모지가 쌓였을 때 그녀는 돌연 중단했습니다. 삶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새로운 연인을 만났다고 하더군요. 그녀가 남긴 기록들은 그 이후 나의 컴퓨터 속에서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1999년 말 우연히 그것들을 다시 읽어보았지요.
다시 그녀를 수소문해서 글을 더 쓰도록 권해보았지만 응하지를 않더군요.
결국 그녀가 남긴 메모지들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내 컴퓨터 속에서 기회만을 엿보게 되었고, 나는 무작정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애인이 되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녀 자신의 내면을 체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나는 가능한 한 여자의 마음이 되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왜, 어떻게, 얼마나 느끼고 체험했는지를 그녀가 느끼고 체험한 방식 그대로를 통해 재생시키려는 작업은 나를 걷잡을 수 없는 미로 속으로 이끌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내 머리 속에선 계속해서 “육체적인 사랑엔 출구가 없어라”라는 갱스부르의 노랫말이 맴돌았습니다.
결국 소설 쓰기 그 자체가 ‘없는 출구’를 찾아 헤매는 모험이 되고 만 셈이죠. 나는 이 소설을 쓰면서, 그리고 그녀와 나 자신의 내면에 무책임한 질문을 던지면서, 과연 거짓과 위선이 어느 정도까지 ‘섹스’와 동행할 수 있는 것인가를 확인하며 자못 놀라곤 하였습니다.
섹스에 대한 기존의 근사한 철학적 정의를 뒤엎어버릴 만큼, 그것은 가장 속임수가 잘 통하는 주제임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 프랑스에는 여자를 빌려주거나 서로의 상대를 교환하며 섹스를 부추기는 클럽이나 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늘 문전성시지요. 이는 과연 현대인의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원고가 완성된 다음, 문제의 여자 친구에게 보여주자 만족해하더군요.
하지만 지금 그녀는 이러한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으며,
건강한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작중 인물의 신분을 노출할 만한 모든 요소를 감추기로 했고, 이름 역시 가명을 쓰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이 책을 쓰는 데 도움을 준 책은 니콜슨 베이커의 『목소리, Vox』와 크리슈나무르티의 탁월한 명상서입니다.
마지막으로 섹스는 극도의 조심성을 가지고 접근해야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크리슈나무르티의 예리한 통찰력이 보여주듯, 인간을 해방시킴과 동시에 구속할 수도 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아이러니컬하게 『행복, Le Bonheur』이라 정합니다.
옮긴이 성귀수
시인. 불어와 영어 전문 번역가.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집으로 『정신의 무거운 실험과 무한히 가벼운 실험정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이교도 회사』『일만일천 번의 채찍질』『오페라의 유령』『적의 화장법』『조선 기행』『신선한 똥』『빛의 돌(전4권)』『하트셉수트』『아르센 뤼팽 전집(전20권)』『창녀』』『U.V』 『댄서』『사드-불멸의 에로티스트』『짧은 뱀』『엘리펀트맨』『모차르트(전4권)』등이 있다.
옮긴이가 전하는 말...
다소 도발적이라면 도발적인 이 책을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읽어내느냐는 물론 자유다.
욕망을 중심에 둔 공통의 체험을 서로 다른 고독한 두 자아가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는지 추적해가면서 은밀한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성(性)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어렵고도 진지하게 정립해가는 현대의 여성 심리 보고서로도 가치 있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거창하게는, 정상적인 다수로부터 떨어져나간 두 연인의 한계를 초월한 일탈행각을 낱낱이 들춰보는 가운데 현대인의 병적인 연애관을 철학적, 심리학적 차원으로까지 파고들어 탐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이 책을 읽고 번역하면서 그냥, 나도 모르게, ‘그’가 되고, 또 ‘그녀’가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리르 Lire』지(誌) 보도자료
남자는 40대 초반, 여자는 이제 막 30대를 바라보고 있다. 둘 다 결혼한 몸이다.
둘은 서로 연인, 그것도 아주 행복한 연인이 되는데, 자기들만의 은밀한 곡예놀음으로 잔뜩 흥분해있다. 그들의 불륜에 흥취를 더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환클럽이라든지 채찍질, 면도날 등등을 포함한 온갖 성적 일탈요소들이 무차별적으로 동원된다. 그러면서 서로를 장난감처럼 다루는 걸 끝내 그만 두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유희를 통해 각자의 노예가 되고 만다.
이처럼 서로에게 중독되는 연인들의 초상을 통해, 이 시대의 재능 있는 소설가 중 한 명인 드니 로베르는 ‘간통’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현대적 감각에 걸맞게 부활시키고 있다.
그가 사용한 소설적 장치도 한몫을 하고 있다. 즉, 남자와 여자 주인공의 내면을 번갈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법이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에서는 경쾌한 페이지 조작에 힘입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두 주인공의 시점에 번갈아 동화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정상적인 성생활을 누리는 다수로부터 이탈된 두 연인의 닳고 닳은, 어떤 점에서는 한계를 초월한 듯한 연애행각은 각자의 내밀한 일기가 적힌 수첩을 통해 적나라하게 제시되며, 독자는 그 낱장들을 들춰보는 가운데 현대인의 병적인 애정관을 그 철학적, 심리학적 차원으로까지 파고들어 조사할 수가 있다.
남자 주인공이 “누구와 함께라면 감정의 이런 끈질긴 부재를 다시 체험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 두 연인의 관계가 결코 일반적인 의미의 ‘사랑’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지독한 연인’이라는 결코 낯설지 않은 테마는 이 소설 속에서 기존의 관습과 안일한 애정관에 일종의 비수를 들이대는 느낌마저 주며, 이는 분명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행복, Le Bonheur>은 따라서 어떤 의미로든 ‘현대병’을 앓는 모든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소설로 읽혀질 수 있다. 저자인 드니 로베르는 보들레르보다는 차라리 자기와 동시대에 속한 니콜슨 베이커의 영향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한 냉철한 관찰력과 감수성의 필력을 유감없이 선보였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본문 중에서...
남:
그녀에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라고 말했다. 누군가와 섹스를 하고 마음껏 즐겨도 얼마든지 좋다고. 내가 나오는데, 처음으로 그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여:
내가 나약해지는 걸 보고 그는 무척이나 안심이 되고, 맘에 드는 모양이다. 갑작스런 내 감정의 표출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어리둥절한가 보다. 도대체 내 안 어디에 이런 고통스런 감정이 숨겨져 있었단 말인가?
나의 의존성은 애당초 육체적인 것이다. 나는 우리의 유희에 미쳐 돌아간 거다. 그런데 이제 그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자, 난 일종의 공황 상태에 빠진다. 이 고통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건지, 아닌지조차 모르겠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예 내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그는 내 주사기이자, 암(癌)이며, 연료이다. 그는 내 삶을 열광적인 무엇으로 뒤바꿔놓은 거다.
남:
당신은 마치 독한 약처럼 되어버렸어. 당신은 나로 하여금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 당신은 안개를 만들어내는 거야. 당신은 내가 세상을 둘러보는 걸 방해하고 있어. 당신은 내 삶을 훼방놓고 당신은 안으로부터 나를 갉아먹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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