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22. 여름처럼 더움
다른 날보다 30분 늦게 7시에 숙대입구역으로 신미식작가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계룡시로 간다.
이섬시인의 '보통사람들의 진수성찬'이라는 요리에세이집을 내기 위한 음식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떠난 길이다.
이섬시인은 40가지가 넘는 요리를 준비해두고 우리를 기다리시고 계셨다.
위의 음식들이 직접 만드신 음식들이다.
밥을 굶었다.
배가 고픈데 음식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어야 하다니.....
신작가와 그 분의 후배작가는 거의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사진 촬영을 계속했다.
요리책이 아니라 요리법도 있는 에세이집이다.
참 단아한 시인의 음식에 대한 단상들과 어울리는 정갈한 음식 앞에서 나도 사진작가도 정성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광이 좋은 곳, 바닥의 빛을 일정하게 받는 곳을 찾아 집을 뱅뱅 돌기를 몇 번,
조명 기구를 설치하고 조도와 광도를 맞추기를 몇 번,
자리를 잡고 두사람의 사진 각을 잡기를 몇 분,
그렇게 촬영이 시작되었다.
인위적인 장식을 배제한 정갈한 음식만을 포인트로.....
드디어 이섬시인의 빠른 손놀림과 동네 아주머니들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빨리 촬영이 끝나고 이 음식들을 마주했다.
그대로 먹기 시작했다는....
정갈한 음식이 아주 간결한 맛을 내고 있었다.
음식의 맛이나 글의 맛이나 사람의 맛이나 참 단아하는 생각을 하면서,
맛나게 맛나게 먹었다.
옆에 계신 신미식 작가는 밥을 세그릇이나 드셨다. 정말 심하게 드시더군.
그 기분 그대로 이어서 신작가님께서 이섬시인과 그 분의 부군되시는 분의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텃밭에 나가 햇살을 그대로 받으면서 참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셨다.
피사체가 된 시인과 그의 부군의 자연스런 모습도 아름다웠고
그 분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몰입하는 작가의 모습도 아름다웠고
사람이 어딘가에 열중한다는 것은 자기를 잃어버리는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임을 다시금 느낀다.
사진의 매력에 빠지는 것은 보는 맛도 있지만,
셧터를 누르는 순간에 자신을 잃어버리는 그 순간의 경험을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자기를 버리고 오직 타인에게 집중하는 순간, 그 아름다운 경험이 사진의 매력이라는 생각......
돌아오는 길, 내 옆 자리에 나란히 자리한 두 사람의 카메라.. 그 크기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마치 집을 지키는 진도개처럼 턱하니 그자리를 버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깨갱거릴 것 같아 자릴 비켜 내준다. 틈을 주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이섬시인에게 음식을 몇 점 얻어왔다.
사무실 직원들과 나눠먹으라고... 손수 만드신 깨강정, 닭강정, 고구마맛탕, 감자부침, 쑥개떡 등을
담은 쇼핑백을 건네셨다.
사실 내일 아침에 사무실에 가서 풀려고 했었는데,
따로 진행하는 책의 표지시안을 가지고 디자이너가 회사에 온다기에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정말 영화라도 한편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해야할지. 일을 좀 당겨서 해서 좋았다고 해야할지.
회사에서 업무를 대충보고 캄캄해서야 퇴근하는 길.
어느 집 담장에 장미덩쿨이 대문을 타고 오르며 빨간 장미를 피우고 있었다.
대문위로 올라간 장미덩쿨......
빨간 장미들이 어느 집으로.....
참 이쁘다.
장미덩쿨 올라가는 대문을 들어가 마당을 지나 현관에 들어가면 참 편안한 가족이 있겠지.
알지도 못하는 어느 집이지만 사람의 기운이 풀풀 풍긴다.
잠시 담아래
잠깐 담아래
머물렀다.
저녁 회식 후 회사 부장님과 어느 신문사에서 일하시는 분과 또 구면인 어느 분과 한 잔하는 자리가 이어진다.
블루스 음악이 멋진,
위스키 잔이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차가운 얼음이 쉴새없이 들어오는 카페에서 .....................또 머무르다.
기네스맥주를 마시고 싶다했다.
기네스 네잔을 마시면 기네스 티셔츠를 준다는 안내문을 본 누구가 네잔을 한꺼번에 시켰다.
티셔츠 입을 사람하기에 난 손을 번쩍 들었다.
검은 기네스 맥주를 닮은 검은 티셔츠를 남방 위에 걸치고 기네스맥주를 한 잔 마시고는
그 곳에 있는 이들을 남겨두고 장장 두시간, 세번 버스를 갈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 중 반 정도는 버스에서 졸았다.
지하철로 왔으면 한 30분정도는 빨랐겠지만,
많이 많이 피곤해서 지하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지하는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므로....
하루가 무지 길다.
내일은 작업한 사진을 받아 본문디자인을 맡겨야 하고,
프랑스 소설의 띠지에 들어갈 카피를 만들어야 하고,
본문과 표지의 시안을 보고해야하고,
또 한편의 프랑스 인문서의 본문과 표지디자인 시안을 받아야하고,
하고.............
하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일이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잘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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