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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업무일지-1

by 발비(發飛) 2007. 5. 22.

새로운 출판사에 입사한지 이제 곧 한달이 되어갑니다.

정신이 차려지려나 봅니다.

아니면 정신을 잃어가려나 봅니다.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정리를 해야할 듯 싶어 다시 제 손을 자판위에 올려놓습니다.

회사에서 아침마다 업무일지를 써서 회의를 합니다.

그것은 순전히 보고용입니다.

오직 보고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지요.

그 시간은 남들은 대체 무슨일을 하고 살아가나, 혹은 남들이 일하는 모습 중에 내가 컨닝해야 할 어떤 테크닉이라도 있나하고 훔쳐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업무보고시간에 발표할 업무일지는 나의 일에 대한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일지입니다.

그런 보고를 하다보니

내 맘이 건들거립니다.

나라는 인간이 업무일지에 적을 만한 일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동안 나의 마음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두들 방관하고 있더란 말이지요.

그저 열심히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 그것의 주체가 마음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내 마음도 한 일이 많지 않았을까요?

내 마음의 업무일지를 써보고자합니다.

 

정신이 차려지려는 것인지

아님 정신을 잃어가려는 것인지 추적해보려고 합니다.

 

5월 21일

 

6시 30분 어김없이 출근을 하면서 마음이 말합니다.

'대견해... 대견해... 정상인이야.'

 

회사에 도착하면 항상 일찍 출근하시는 빛부장님과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혹 뚱부장님이 계시다면 그분과도.. 오늘은 빛부장님만 미리 오셨네요.

나의 모닝커피 서비스는 나보다 먼저 오신 분에 한해서입니다.

오늘은 두 잔을 타서 한 잔은 나, 또 한 잔은 빛부장님입니다.

빛부장님은 아침마다 제가 타드리는 커피가 소위 여직원의 강제성 운운하는 그 무엇이 걸리는 것인지

괜히 미안해 하시면서 담에는 담에는 그러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이른 아침 함께 마시는 모닝커피타임입니다.

나누는 시간이지요.

 

금요일 늦게까지 한 야근의 잔해를 다시 정리합니다.

올리지 못한 결제서류를 잘 챙기고 사장님께 결제를 받기위한 몇 단계의 결제라인을 거쳐야 합니다.

오전 업무보고시간이 가기 전에 말이죠.

사고뭉치서류들이라 몇 번째 문제를 일으켰던 서류라 경영지원팀 핫차장에게 좀 눈치가 보입니다.

그때마다 쓰는 수법, 친절의 극치 아부의 극치 ...

알아서 깁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그래서 며칠 더 괴롭혀드리겠다며 봐달라며.... 샐샐 웃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산천수전 겪은 끝에 몇 개의 서류를 통과받았습니다. 정말 죽을 뻔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남았다는 ..)

 

이번 달에 낼 책이 두권 잘하면 세권

 

지난주에 넘긴 본문디자인 두 건, 표지 디자인 두 건,

확인해야할  것 중 본문디자인 한 건의 시안이 왔는데.. 영 아닙니다.

프랑스 소설인데... 그것이 좀 야하긴 하지만 공허한 야함!  그 야함조차 극에 달하면 공허를 넘어 충만함이 될 수 있는 듯 느껴지는 ... 그런 것인데,

디자이너가 이해를 하지 못한 듯 잡지 같이 해 온 것 있죠.. 짜증 제대로..

세번이나 물리치고 밤 8시가 넘어서 아래 한글에서 엉성하게 잡은 시안을 디자이너에게 보내서 참고하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대체 디자이너인지.. 투덜투덜....

그 디자이너도 전달을 잘 해줘야죠 하면서 투덜투덜...

 

그러다,

또 한 건의 디자인을 의뢰할 사람을 소개받고, 의뢰서를 넘기고....

 

책상위에 밀쳐놓은 작은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이 맛이 갔다! 오 맛이 갔다!

누구를 닮았나 생각해보니... 하루 지난 시금치 나물 같더라... 일어나자 했습니다.

그런데 디자이너가 시안을 넘겼다는 문자가 띠리릭 하고 옵니다. 확인! 싫어 싫어

앞에 앉은 부장님과 짜증 짜증 내다가 이제 그만 하고 일어납니다.

내일은 사진촬영차 대전으로 출장을 가야하거든요.

아는 동생에게 혹 촬영에 필요할까하여 소품은 퀵서비스로 부치라고 했는데.. 집에 도착하니 경비실 아저씨는 이미 주무시네요.... 낼 아침에 찾자 말자 대전으로 가야 겠습니다.

 

역시 맘은 없습니다.

맘이 할 말이 없답니다.

맘 언저리만 기웃거리다 오늘 업무일지는 마쳐야 하겠습니다.

맘이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살살 달래어서 한동안 드러내지 않아 낯을 가리는 맘을 끌어내 봐야겠습니다.

난 내 맘이 무슨 맘으로 있는지 궁금하니깐요.

 

내일은 대전에 사시는 어느 시인의 밥상을 촬영하러 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미식 사진작가와 함께요.

정말 감사하게도 참 오랜만에 연락을 해서 사진작업을 해주십사하는 저의 제안을 받아들여주셨습니다.

단아한 요리에세이와 따뜻한 시선의 사진이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내일이 궁금합니다.

제 마음이 좋아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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