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살마도르 달리의 인간형상을 한 캐비넷
그는 역시 천재다,
1936년에 앞으로 70년 후 현대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미리 예견이라도 했듯.
인터넷 세상 혹은 블로그의 세상을 예견이라도 했듯.
그는 나를 이렇게 미리 그려두었다.
인간으로서의 생명은 점점 말라가고
기계 안에 저장된 정보와 너덜거리는 감정들로만 가득한 캐비넷
그 캐비넷을 두고 거리로 나가는 인간인 듯 한 여자의 모습
혹은 캐비넷으로 돌아오는 인간인 여자의 모습이 멀리에 있다.
우리는 점점 살마도르 달리가 그려놓은 세상으로 몰입하고 있다
그가 미리 그려둔 세상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오랜만에 그의 그림 파일들을 보면서 당신은 역시 천재였군요 했다.
그 스스로가 말했듯 그는 천재다.
미래를 예견하는 천재이다.
내가 활용할? 아니 사용할 어쩌면 들먹일 정보는 점점 많아지지만,
내 안에 기억할 정보의 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계적인 인간에서 기계전달장치의 인간으로 다시 옮겨가고 있다.
기계적인 인간일 때는 그나마 나았을런지 모른다.
기계의 저장 장치로서의 인간, 기계와 정보의 전달자로서의 인간.
2007년은 그런 인간이 가장 평범한 인간이다.
캐비넷으로서의 인간.
인간으로서 말라가는 인간.
며칠을 노트북에게 수리라는 것을 하러.
이건 수리가 아니라 내장된 하드를 몽땅 바꾸는 이식수술을 하러 보내놓은 내내
내가 한 일을 생각한다.
노트북이 없으면cd조차 들을 데가 없어 '소리'라고는 전혀 들을 데 없는 방안에서 부적응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나의 삶이라고 느끼던, 듣기 말하기 움직이기가 모두 노트북을 통해서였음을 절감한다.
하루 이틀이었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절박함 같은 것!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왜 메일을 읽지 않느냐?
왜 이렇게 조용하냐? 무슨 일이 있냐?
나의 안부는 노트북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노트북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마치 이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나보다.
나도 답답하다
나의 주위도 답답해했다.
달리의 그림 '인간형상을 한 캐비넷.'
출발의 문제는 있겠지만,
우리는 몸은 지체장애자의 사용하지 않은 다리처럼 말라가고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퇴행하고 있는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라진 노트북의 자료를 말하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내 노트북은 나를 대신해 몸을 부풀려 갈 것이다.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 그 안에다 구겨넣을 것이다.
난 아무것도 감당하고 싶다.
내 몸을 뒤로 재껴둘 것이다.
미어터져 나갈 때까지 난 내 몸의 어느 부분을 노트북에 연결시켜두고 살아갈 것이다.
무선 usb라인이 연결되어 있듯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전달장치로서의 나만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외출하겠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그렇지만 저 여자처럼 부풀어 오른 볼레로 드레스에 깃털장식의 모자를 쓰고 거리로 나가겠지.
모든 것은 옷자락밑에 숨겨진 채로.
좀 더 부풀어 오른 드레스를 구할 수 있다면 내 엉덩이에 노트북하나를 달고서
더욱 볼록해진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걸어다니겠지.
그런데,
노트북이 다시 오니, 내 몸과 연결되니 난 내 안에 피돌이가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
진통제의 기운이 서서히 몸으로 스며들 때 느껴지는 그 야릇한
눈치챌만큼의 인공적인 편안함! 중독!이다.
인간형상을 한 캐비넷.1936
캐비넷의 형상을 한 인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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