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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중국] 진황도 배로 가기

by 발비(發飛) 2007. 1. 16.

 

 

 

'희망의 뱃길, 새 삶의 길이 아닌가. 왜 이렇게 허전한가. 게다가 무라지와 늙은 뱃사람은 캘커타에서 술까지 살 것이다. 왜 이런가. 일어서서 난간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배꼬리에서 바닷물이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서는 뒤로 기다란 물이랑을 파 간다. 거대한 새끼가 꼬이듯 틀어대는 물살은 잘 자란 힘살의 용솟음을 떠올렸다. 그 때, 그 물거품 속에서 흰 덩어리가 쏜살같이 튀어나오면서, 그의 얼굴을 향해 뻗어 왔다. 기겁하면서 비키려 했으나, 그보다 빨리, 물체는 그의 머리 위를 지나서, 뒤로 빠져 버렸다. 돌아다봤다. 갈매기였다. 뱃고리 쪽에서 내리 꽂히기와 치솟기를 부려 본 것이리라. 그들이었다. 배를 탄 이후 그를 괴롭히는 그림자는. 그들의 빠른 움직임 때문에, 어떤 인물이 자기를 엿보고 있다가, 뒤돌아보면 싹 숨고 마는 환각을 주어 왔던 것이다. 그는 붙잡고 있는 난간에 이마를 기댔다. 머릿속이 환히 트이는 듯, 심한 현기증으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자 울컥 메스꺼웠다. 난간 밖으로 목을 내밀기가 바쁘게 희멀건 것이 저 아래 물이랑 속으로 떨어져 갔다. 바다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그 배설물의 낙하는 큰 바다에 침을 뱉은 것처럼 몹시 작은 느낌을 주는 광경이었다. 씁쓸한 군침이 입안에 가득 괴었을 때, 한꺼번에 뱉어 버리고 돌아섰다. 여태까지 배멀미는 없었다. 배가 크고 날씨가 맑아서 여태까지 편한 바닷길이었다. 아직도 가시지 않는 아찔한 어질머리를 참으면서 갑판을 걸어갔다. 뱃사람이 보초를 섰던 자리쯤에서 다시 한 번 침을 뱉고 복도로 들어섰다. 뱃간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나, 밖으로 향한 창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어서, 문간은 한결같이 컴컴했다. 자기 방에 들어섰을 때였다. 자기를 따라오던 그림자가 문간에 멈춰 섰다는 환각이 또 스쳤다.'

 

-최인훈 광장 중에서 (글을 짧게 끊어서 올리려 했지만, 다시 읽어도 한 줄 한 줄이 다 좋아 그냥......)

 

 

오래 전 '최인훈'이라는 작가가 오래 전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그의 소설들을 '전설' 이라 생각하며 읽은 적이 있었다.

그의 소설에는 바다이야기가 많았다. '태풍'... 도 그랬던 것 같았다.

많은 것이라기보다 인상적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내가 아련히 꿈꾸어 온 것, 하나.

배를 타고 오래도록 대양을 건너보는 것이다.

 

명준처럼 인도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커다란 배의 갑판이

마치 땅인 듯,

섬인 듯,

감옥인 듯,

파라다이스인 듯,

서 있어보는 것이다. 갈매기가 정말 그 곳까지 따라오는지.. 

 

(그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를 만날 수 있을런지... 그렇구나, 보들레르가 배로 긴 여행을 한 뒤 인간이 바뀌었다 했는데... 그럼 잠깐!)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때때로 장난하느라 선원들은
커다란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게으른 여행 친구처럼 쓰디 쓴 심연으로
미끄러지는 배를 뒤따르는 알바트로스를

갑판 위에 놓아 두자마자
창천의 왕자는 어색하고 부끄러워
커다란 흰 날개를 노 비슷하게
불쌍하게 질질 끌고 다닌다.

날개 달린 여행자여, 그대는 얼마나 어색하고 무기력한가!
전에는 그렇게 아름답던 게 이제는 우스꽝스럽고 추하구나.
어떤자는 파이프로 부리를 지지고
어떤 자는 절름거리며 예전에 날아다니던 그 새를 흉내낸다.

시인도 구름의 왕자같다.
태풍을 쫓아다니며 사냥꾼을 비웃는다.
그러나 야유투성이의 땅에 떨어지면
그 거대한날개 때문에 걷지도 못한다.

 

..............핑계김에 다시 읽어보고.


 

초호화판 크루즈가 아닌 커다란 배.

 

각설하고.

며칠 후 그 꿈을 이루려 한다.

북경과 진황도를 잇는 페리여행상품으로 딱 일주일만의 여행일 될 것이다.

배로 가는데 하루, 배로 돌아오는데 하루이니 중국을 여행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지만, 만리장성과 천안문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여행은 목적이 중국이기보다는 배를 타고 하루를 지내본다는 것이므로...

 

여행을 해보면, 실제 그 곳에서 받는 감동보다는 가기 전에 그 곳을 꿈꾸는 시간이 더 행복하고

벅차다. 지금 이렇게 최인훈의 '광장'의 한 귀퉁이를 다시 읽어보며 꿈꾸고...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꿈꾸고....

나도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을까 꿈꾸고.....

 

가방도 싸지 않고,

북경에서는 뭘 봐야 하는지 생각지도 않고.

(이번에는 배낭여행이 아니라 가이드동행이므로 이리 편할 수가 없다. 입에 넣어주는 밥을 씹기만 하면 된다는 ... 좀 허전해)

 

턱을 괴고 갑판 위에 선 나를 상상한다......

바다를 얼마를 보면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꿈 하나를 이루고 나면 그 꿈은 다시 꾸지 않을까.

 

나의 뒤가 궁금하군.

 

언제? 금요일에 간다.

 

그 사이에 필이 꽂히는 시는 어떤 걸까?

 

ps: 한 사람에게 미안하다. 여행을 무척 가고 싶어하는데......

마치 내가 베짱이가 된 기분이다. 그 사람은 당연히 개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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