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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대관령 제왕산

by 발비(發飛) 2006. 12. 25.

 

 

 

대관령의 한 봉우리 제왕산을 오르다.

 

올해 2월에 계방산을 마지막으로 등산하는 것을 멈췄었다.

 

여행때문이기도

게으름때문이기도

정신이 산만해서도

.

.

조용함, 피하고 싶었다.

 

산을 오르면, 말을 할 수 없다.

오르막길을 갈때는 힘을 쓰면서 올라야 하고, 내리막을 내려갈때는 정신을 집중해야 다치지 않는다.

그러니 말을 할 수 없다.

앞 사람의 발끝을 쫓아 오르면서 앞 사람의 발꿈치를 보면서 내 발을 염두에 둔다.

눈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걷는다.

뒤를 돌아보다보면 산행을 할 수 없다.

말없이 앞으로 앞으로 오르고 내린다.

그 조용함 속에 낱낱이 되새김되는 내가 거기 있으니, 이것을 피하고 싶었다.

 

제왕산은 그리 큰 산이 아니고, 또 가파른 산도 아니고 그저 산책을 하듯이 걸으면 되는 산이었다.

좀 힘든 산행을 원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 대신 힘든 산행에서 볼 수 없는 주위의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산행이 편하며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간만에 보는 능선들, 이리 저리 휘어지며 이어지는 땅의 뼈대들은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다.

파란 하늘은 산과 되도록이면 멀리 떨어져 공간을 확보해 주고 있다.

구비 이어진 길은 넓지 않아 사람만의,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진정한 인도이다.

눈이 쌓이고 눈이 얼고 눈이 녹고 얼음이 녹고 모두가 물이 되어 계곡으로 흐를 것이다.

흐르는 물에 비친 나무들, 뿌리만 물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그림자까지도 물을 빨아들인다.

겨울 계곡 물길은 흐르지 않은 듯 잔잔하다.  

물이 물을 가두어 끊어지지 않을 만큼만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산길, 노래를 흥얼거린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산울림의 회상... 뭐 그런 노래들이 흥얼거렸다.

산은 그 자체로 마른 꽃을 걸어둔 카페였으며

누군가의 기억들을 잡은 채 놓지 못하고 나를 얼어붙게 하는 겨울길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행을 했다.

그렇지만

때로는 크리스마스와 떨어지는 것이 행복이 되기도 한다고 우긴다.

그 분이 태어나신 날을 하찮케 여기며, 니들끼리 잘 놀아라 하고 비웃어주며,

 

조용히 엔틱하게 노닐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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