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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기행일기-10

by 발비(發飛) 2006. 9. 24.
2006/ 07/ 31

안나푸로나 트래킹 이틀째날에 등산과 트래킹의 차이를 생각한다.
등산이 사람들이 사는 곳을 뒤로 등지고 그들과 멀리 떨어진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라면,
트래킹은 산길을 가면서도 사람들의 옆을 지나간다.
트래킹을 할 만한 곳은 모두 사람이 살 만한 곳이다.

참 오랜 시간 산과 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사람들이 살려고 만들어놓은 길이 그대로 트래킹로드가 되는 것이다.
그 곳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면 등산로가 되는 것이겠지.
사람이 사는 길이기에 트래킹로드가 되는 것이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들의 삶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Kimche할머니는 산에서 캐낸 나물을 말리고 다듬어 달밧을 만들 재료를 준비하고 계셨다.
한아주머니는 쌀과 잡곡을 마당에다 말리면서 달밧을 만들거라고 했다.
아이들은 지나치면서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한다.
나이든 아버지는 아이를 구릉천가방 안에다 업고 우산으로 아이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바구니에 누운 아기는 아버지와 눈을 맞춘다.
길가 툇마루에 앉아 있는 엄마는 마룻바닥에 누워 뒤집기에 성공한 아이를 대견한 눈으로 바라본다.
길가 담에 걸터앉은 하얀 머리 할머니는 긴 머리를 빗고 있다.
젊고 이쁜 아마 또래일 것 같은 여자는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사진 같이 찍자고 밝게 웃었다.

세상사람들이 지구의 지붕이라고 부르는 히말라야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이다.
그들은 히말라야 산 속에 있는 바위를 쪼개어 벽을 만들고, 지붕을 만들고, 바닥을 깔고, 담을 만들어 집을 지었다.
히말라야 땅에다 벼를 심고 옥수수를 심고 감자를 심으며 소와 닭을 키운다.
그리고 그것을 부모와 자식이 나누어 먹고 산다.

오늘 트래킹 길을 걸으면서 자연은 혹은 신은 말이지,
사람을 위해 마치 준비해 둔 듯이 그 곳에 그것을 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위들이 그 곳에 놓여있고 시원한 물이 그 곳에 있고 참 아름다운 꽃들이 그 곳에 피어있었다.
마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잡기만 하면 사람들은 살아 갈 수 있다는 듯이 눈앞에 잘 놓아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오늘 원하는 것은 그저 순조로운 걸음이었다.

걷기 위해서는 나의 짐을 대신 져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였겠지. 그래서 포터를 구한 것인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포터 때문에 나의 걸음의 리듬을 자꾸 놓친다.
어제 술을 먹더니, 감당이 안되는 모양이다.
10분을 못 걷고 쉬자. 쉬자. 자꾸 멈춘다.

길을 모르니, 어찌 할 수 없이 그의 페이스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으니, 몸이 리듬을 잃고,
쓸데없는 피곤함이 몰려드는 것이다.
산과 내가 밀착할 시간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결국, 그가 오후 2시에 오늘 묵을 숙소라면서 
Kimrong-Khol 에서 멈추자고 했고,
그럴까 고민을 하긴 했지만, 거부를 행사한다.
다음 마을이 어디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안나푸로나의 지도를 표지판에서 찍어, 그 사진에서 거리를 가늠하여 다음 마을까지 가자고 화를 내었다.
앞으로 3.4시간을 더 올라가야 한다는 그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화가 났기때문에 그냥 우긴다.

그에 대해 냉담하기로 한다.
그의 헤맴이라던가, 그의 역할이라던가의 문제는 그의 문제로 두기로 했다.
넌 너의 문제를 가지고 가
난 나의 문제만 볼거야. 누군가의 리듬을 깨는 일, 없어야 한다. 알았지? 나에게 인상을 썼다.

-지금 너에게

책임을 질 사람이 나밖에 없어.
정말 싫지만.

너,
넌 나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
얼굴을 딱 한 번 보여 준 것 밖에 말이야.
딱 한 번 내게 말을 건넨 것 밖에 말이야.
내가 묻는 말에 자세히 대답해 준 것 밖에 말이야.

관계,
내가 만든거지.
난 너와 관계가 있다하고
넌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하고 아니, 그런 생각도 않고
 난, 관계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여긴 전기 들어와.
여긴 아줌마와 아저씨 단 둘이 살아.
둘이서 뿅뿅하는 음향효과 무지 들어간 네팔 연속극을 둘이서 같이 낄낄거리면서 봐,
내가 옆에 홀로 앉아있는데.

아마 곧 자러 간다고 불을 끄겠지.
 혼자 불 켜놔야지.
안나푸로나 베이스캠프 트래킹 로드에 불 켜진 방은 내 방 뿐이겠지.
하지만,
넌 책임 없어.





'힘들어.'
'힘들어.'
'왜 그랬을까?' 말도 할 수 없다. 생각만 한다. '힘들어.'

포터 라쥬는 죽을 지경인지 저 뒤에서 쫓아오고 마치 내가 가이드인 듯이  난 앞에서 걸어갔다.
"곧 해가 질텐데, 도대체 얼마나 남은거야?"
가도 가도
Chhomrong은 나오지 않고, 다리를 움직이기도 싫어진다.
혼자서 가야 하는 길이 되었다.
나의 리듬대로 살거야 하고 우긴 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책임 지울 사람 없다.
내가 진다.
그 짐까지 같이 지고 올라가느라 헉헉 숨이 무지하게 가빴다.

거의 어둠일때 도착한
Chhomrong에서 내가 한 일이 참 가잖다.
Chhomrong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라쥬 흉 무지하게 봤다.
"나의 포터 라쥬가 어젯밤 술 먹고 괜히 실실 웃더니, 오늘은 걷지도 못하고 헉헉거리더라.
그래서 지금도 못 오고 아직 저기 멀리서 따라 오고 있다.
힘도 무지하게 약한 모양이다. "
아마 내 얼굴이 시뻘겋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 괜히 얼굴이 빨개진다.







 
Syaul Bazar (2h) - Kimche(1760m, 2 1/2 h) - Kimrong-Khol (1829m, 2h) - Chhomrong (217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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