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만난 친구가 네팔을 다녀오더니, 나에게 말한다.
"네팔은 천국이야. 빨리 네팔로 가지 뭐 하고 있어!"
지난 25일에 네팔로 왔다.
새벽 바라나시를 출발해 기차로 8시간, 버스로 3시간을 이동해 네팔 국경에 도착해서,
비자 받고.... 릭샤타고... 버스타고 8시간을 움직여 도착한 곳이 포카라다.
사실, 인도에 대해서도 사전 지식이 없이 왔지만, 네팔은 더욱 그랬다.
그저 여기 어디에 안나푸로나 베이스 캠프가 있다는 정도였으니 말을 다 한 것이다.
포카라는 안나푸로나 베이스 캠프가 가까워서 세계의 많은 나라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지금은 우기라서 안나푸로나를 트래킹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무지 한가하지. 그래서 더욱 좋다.
세계적인 관광지답게 너무나 깨끗하다.
페와호수는 끝도 없이 넓고, 아침에 해가 뜰 때 혹은 저녁에 해가 질 때면 아름답단 말 밖엔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의 눈빛도 인도사람과 달리 반짝인다.
그저 그 정상적인(?)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안정시킨다고나 할까.
얼마전 읽은 법정스님의 인도기행이라는 책에 인도를 관광한 뒤, 네팔에서 지내다가 다시 인도로 들어가시면서 하던 말이 생각난다.
"난 네팔을 나와 인도로 들어가면서 다시 전쟁터로 가는 기분이었다."
그 말씀이 이해가 된다.
정상적인 곳에서 다시 비정상적인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까?
아마 나도 몇 주 뒤 쯤에는 인도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똑같은 기분일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네팔하고도 포카라는 편안한 곳이다.
이 곳에서 무슨일을 했을까?
일단 며칠을 쉬고 난 뒤 자전거를 빌렸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포카라 근처에 있는 오래된 네팔의 거리들을 다녔다.
포카라의 호수근처는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면, 그 곳에 원래 자리하고 살던 사람들의 모습이 짙은 올드바자르는 그들의 때가 묻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 곳이든 이 곳이든 사람들의 눈빛은 반짝인다.
뭐랄까.. 자꾸 비교가 된다.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국경을 마주 하고 사는데 이렇게 다를 수도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건 며칠을 묵고 있는 동안 내내 그랬다.
중국이라는 대륙기질이 좀 더 섞여서 그런가?
일주일전,
내 생애 아마 몇 번째 안에 들만한 큰 일을 했다.
안나푸로나 베이스 캠프 4050미터를 트래킹 한 일이다.
3박4일을 올라가서 2박 3일을 내려왔다.
말이 트래킹이라 사실 그리 겁을 먹지 않았다.
그저 산이 커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리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던 걸...
지금부터는 안나푸로나 등정기!
포카라에서 택시를 700루피나 주고 나야풀이라는 곳으로 갔다.
라주라는 포터 한 명과 나의 일행, 그리고 나 모두 세명이다.
이 곳은 우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온다. 처음부터 비를 맞으며 시작했다.
처음 올라가며서 생각했다.
히말라야라는 곳은 사람과 자연과 신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처음 만나는 히말라야의 원주민들,
그들은 그 곳에서 쌀농사와 옥수수농사를 지으며, 소와 닭을 키우고 살고 있었다.
우리의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이 다른 사람이 얼쩡거리던 말든 길에 풀을 뽑고, 꽃을 가꾸고, 논에 물을 대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그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산에 끼인 들로 나가 일을 하고 있다.
늙은 노인들은 처마밑에 앉아 나물을 말리고 있다.
그들에게서 사먹은 음식은 달밧이라는 시골밥상같은 밥이다. 산나물과 감자가 주 반찬이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에게는 관심도 없는 그들을 보면서 이틀쯤을 올라갔다.
그리고 3000미터가 넘어서자, 사람들의 집들이 사라지고 나무와 꽃들이 주인인 세상이 되었다.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때라, 초록은 더욱 초록이고, 갖가지 풀들은 색색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찌 이 높은 곳에 그리 많은 꽃들이 피었는지.. 정말 혼자서 수도 없이 웃었다. 신기해서 웃었다.
구름은 순식간에 길을 보이게도 하고, 길을 감춰버리기도 하고...
구름 때문에 한 번은 길도 잃었다.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은 사방에 폭포를 만들었다.
골골이 이어지는 폭포들.
그 폭포들 위 아래로 드리워진 하얀 구름들. 어느 사이 내게 구름은 새나 사슴처럼 하나의 생명처럼 느껴진다.
흠뻑 젖어 올라가는 산길이다.
마른 발인 기억이 없다.
밤이면 숙소로 들어가 젖은 공기에 젖은 신발을 말려보지만 아침이면 기대와는 다르게 다시 젖은 신발을 신고 오른다.
산을 오르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셀 정도이다.
독일팀, 미국팀, 그리고 프랑스 한 남자
나의 팀, 그리고 한국어르신 한 분
포터와 가이드 숫자가 더 많을 정도이다.
히말라야숙소를 지나자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머리가 부풀어오르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일행과 좀 떨어져서 천천히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오른다.
지난 번 인도의 '레'에서 겪은 고산증세는 그저 쉬면 되었지만,
이 곳은 끊임없이 산을 올라야 한다.
좀 더 높이 좀 더 높이 또 더 높이 말이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곳으로 그저 발을 옮겨야 한다.
손과 발이 붓기 시작하고, 눈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붓는다.
그런데도 발아래 꽃들은 색색이 참 이쁘게도 피었다.
난 붓고 아픈데, 꽃들은 이 높은 곳에서 그저 아름답게도 피었다.
난 붓고 아픈데, 그 꽃들이 너무 이뻐서 그저 지나칠 수가 없어 사진을 찍어댄다.
사진을 찍으려 몸을 숙일 때마다 흔들리는 머리를 내 버려두고 꽃들을 지나칠 수 없다. 그렇게 이뻤다.
구름은 내 앞에서 다시 오고 가고 한다.
한 줄기 비가 쏟아진다.
비가 내리니 차라리 정신이 좀 들기도 한다.
일행과 떨어진지 오래, 한참을 올라가니, 포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쉬지 않는다.
쉬면 다시 걸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얀 구름 사이로 발을 옮기는데, 사실 하얀 구름 사이인지는 몇 걸음을 더 디딘 다음에야 안 것이다.
내가 지나 온 곳이 하얀 구름 사이인 것을 ....
얼마 남지 않았단다.
그저 더 빠르게도 아니고 더 늦게도 아니고, 머리를 흔들지 않고 올라간다.
올라간다
올라간다
아니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 발을 내 디딘다.
저 멀리 뿌연 곳에서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진다.
옆을 돌아다보니 4050미터 안나푸로나 베이스 캠프(ABC)구역이란다.
여기가 거기구나.
가장 높은 곳이길 기대했지만, 이 곳은 그저 가장 높은 곳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것도 하늘이 허락한다면 말이다,
아침에 만났던 하산하는 팀이 말했었다. 자신들은 하얀 구름 밖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하늘이 허락해줘야 한단말이다.
베이스캠프에 올라 마주 한 곳들을 본다,
역시 하얀 구름밖에는 없다.
같은 일행이 말한다.
"한 달 만 더 있으면, 우기가 끝나는데 그때 왔었어야 하는건데,....."
그 순간 솔직히 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이 부풀어오르는 나의 머리만 좀 괜찮아졌으면 했을 뿐이다.
레몬티를 한 잔 시켜서 마시는데, 모두들 그래도 괜찮은 모양이다.
앞에 놓인 생수 페트병이 부풀어 올라 터질 듯 하다.
내 얼굴도 똑같이 완전 부풀어 올랐다. 맙소사!
누구는 괜찮고 난 왜 이렇게 부풀어 오르는 거야.
일단 방을 잡아 누웠다.
그리고 정신 몽롱하게 견디었다. 그러고보니, 같이 오른던 독일여자는 포기하고 돌아갔단다.
이 베이스캠프에 여자라고는 나 밖에 없네. 나 그런 여자였던거야?
밖에서 나를 부른다.
마차푸차 봉우리가 보인단다.
정말 뽀족한 6700미터의 봉우리다.
봐야지. 봐야지. 아마 그걸 보려고 내가 온 것일껄하며 몸을 일으켰다.
봤다.
하얀 설산이 코앞에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구름은 지나가고 산은 점점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헉 숨이 막힌다.
고개를 돌려 반대편에 있는 안나푸로나를 본다.
아직은 아니다.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아직 환한데 잠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잤다고 한다.
그리고 밤새 꿈을 꾸었다. 마치 다시 살아닌 사람같은 얼굴을 하고 새벽에 일어났다.
느린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아직 구름이다.
밤새 억수같은 비를 내린 뒤지만, 구름은 차고도 넘친다.
이를 어쩌지., 그냥 갈건가봐!
사실 내가 그리 안타까울 일은 없다. 간절히 원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안나푸로나를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간절히 원하지 않았으므로 난 이들처럼 슬플 자격은 없는 것이다.
좀 더 간절히 원하고 공을 드린 다음 볼 일이고 기대할 일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찬 한 잔을 마셨다.
밖에서 함성이 들렸다.
안나푸로나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단 것이다.
모두들 들뜬 얼굴이 되어 뒷쪽으로 나간다.
맞다. 구름 뒤로 가득 산이 있었다.
하얀 산이 있었다.
구름은 산만 가린 것이 아니라, 소리도 가리고 있었던지, 여기 저기서 빙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
사방을 울리며 들리는 천지가 떨어지는 소리이다.
사진을 찍는다.
동영상을 찍는다.
사진이 맘에 들지 않는다.
내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
손바닥 보다 작은 사진기를 보면서 왜 안되지? 그러다 만다.
나의 눈으로 보자. 나의 머리로 기억하자. 나의 귀에 담아두자. 그리고 나의 가슴에 묻자.
이 곳이 신의 영역인가
이 곳엔 신만이 존재하는 곳인가
힌디의 휘장( 그 이름?)이 펄럭인다.
한참을 설산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내려가기로 한다.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그건 구름이 알려주었다. 서서히 밀려들며 산을 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구름이 산을 가리자, 더욱 흥분한다. 우리는 봤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봤다.
산을 내려온다.
구름 속의 어제와는 달리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버린 구름 탓인지 세상이 선명하다.
꽃과 계곡과 그 사이에 나무들,
그리고 줄을 지어 내려오는 사람들이 아주 선명하다.
이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두통은 가라앉겠지.
기쁜 마음이 된다.
뭔가 달라진 마음이 된다.
왔던 길을 내려가기도 하고, 오지 않았던 길을 내려가기도 했다.
내려오는 2박3일동안,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
사람이다.
히말라야에서 주는 돌로 집을 만들고 계단을 만들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이들이다.
책가방 속의 책들이 신기하다. 영어공부를 한다. 수학공부를 한다. 그 아이들이 세상 공부를 하고 있다
그 곳에서.... 아이가 내가 잡고 보는 책을 부끄러워한다.
나의 포터 라쥬처럼 일생 단 한 번 카투만두를 가 본것이 전부인 삶을 살지.
아님, 아이의 아버지처럼 한번도 히말라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지.
그 아이의 노트 속에 적힌,
SIT DOWN
STAND UP
이 선명하다. 모를 일이다. 내가 아이에게 어떤 삶이 더 낫다고 말해줘보라고 한다면 난 대답할 수 없다.
내려오고 내려오고.....
또 내려오고 내려오고...
다 내려왔다.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다.
사실이라고 믿을 건, 알이 탱탱하게 밴 다리, 뻑뻑해서 걸을 수 없는 나의 다리가 내가 다녀온 것임을 알려준다.
어제는 종일, 그 곳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보았다.
정말 내가 그 곳에 있었던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은 우기라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어요.
지금보다 몇 배나 더 아름다운 곳이예요.
다시 성수기에 그 곳에 가보세요.
그런데 말이다.
난 더는 원하지 않는다. 다시 그 곳에 걸음을 옮겨 갈 자신도 없지만, 내가 보고 듣고 만지고 온 것들에 대해서 감읍한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난 내가 이미 본 것들에 대해 무지하게 감사하다.
어쩌면 내 삶에서 볼 수 없었을 것 같은, 누구도 나에게 준비해주지 않은 것들을 덤으로 얻은 기분이다.
그 덤은 내가 보고 듣고 한 전부와 비슷한 함량이니, 더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너 어떻게 그걸 하고 살어?
나도 몰라, 발 길이 닿는 대로 갔더니, 그 곳이었어.
나에게 자문자답한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갈 길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저 또 발길이 닿는데로 움직이면 나의 머리로는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한 곳에 내가 놓여질 것같다.
이제 나를 풀어놓는다.
이틀째 쉬고 있는데도 피곤이 풀리지 않아, 며칠 더 포카라에 있어야 할 듯 합니다.
카투만두로 가겠지요.
너무 아쉽게도 사진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이 글을 올리는 데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열고 닫는데 시간이 무지하게 걸리거든요.
그런데 한 시간이, 하루 숙박비입니다.
그래서 아마 아주 가끔 소식을 전하게 될 듯 합니다.
모두들,
덕분에 제가 잘 지낸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드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이 참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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