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는데 다시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정한 다시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다시라는 것을 굳이 딱딱하게 따지자면, 진정한 다시라는 말은 없을런지도 모른다.
그래.
다시 라는 말은 기계가 아닌 생명을 가진 것들에게 완벽한 셋팅이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불가능하다.
시간이 다를 것이고
공간이 다를 것이고
움직이는 주체가 어떤 식으로든 변했을 것이고
다시 라는 것이 단지 1분이건 5분이건 아니면 몇 년이건 말이다.
다시 바라나시로 왔다.
어쩌면 진정한 나의 인도여행의 시작은 바라나시였을런지 모른다.
지난번 바라나시에서 일주일동안 중 3일간 있었던 한국인숙소가 아니라,
뿌자게스트하우스의 감옥독방 같은 곳에서 보냈던 3일.
뿌자레스토랑의 옥탑에서 내려다보았던
강가나 악마의 숲이나 밤마다 열리는 뿌자...
버닝가트에서 불어오는 무거운 바람을 맞으며 ....
내 발아래 놓여진 낯선 땅에 정말 혼자라는 것이 철저히 무서웠던 시간.
'정말 내가 혼자였구나.'
그러면서 바라본 강가와 버닝가트.
뭘 굳이 생각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저 혼자서 3일간을 온종일 내려다보기만 했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무서워서 그 곳에 혼자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트를 혼자 걷고,
길을 잃어버리고,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만났던 수많은 보트맨과 맛사지맨...
그리고 의미없이 말을 던지며 지나가는 검은 사람들.
그리곤 난 레스토랑에서 나오지 않았었다.
다만 그 곳에 앉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인도의 시작이었던 델리로 가고 싶었다.
델리에 다시 도착했을 때,
뉴델리역 앞의 공중화장실 앞이 지금도 선명하다.
처음 인도에 도착하자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델리역에 섰을 때 멈추지 않았던 구역질,
그 냄새의 기억은 일주일내내 인도의 무엇도 먹지 못하였었다.
딱 그 곳에 섰는데, 그 냄새가 더는 구역질을 나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인도의 냄새였을 뿐이다.
신기했다.
옆 사람에게 민망할 정도로 구역질을 해대었던 딱 그 곳인데, 그 곳에 냄새가 사라졌을리가 없다.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었다.
나머지 4.50일쯤되는 인도여행은 보람차다고 할 순 없지만, 대충 순탄했다.
다시에 대해서 다시 말한다.
다시 바라나시이다.
어제 저녁 6시30분에 델리를 출발해서 오늘 아침 8시에 도착했다.
싸이클릭샤를 타고 가격은 묻지도 않는다. 당연 20루피이다.
고돌리아 촘무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릭샤에서 내려야 할 곳을 안다.
고돌리아 촘무아니보다 좀 더 전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지금은 쉬바페스티발기간이다.
그건 내가 이해해준다.
길을 알기에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아는 길을 따라 매끈하게 걸음을 옮긴다.
두리번거림없이 매끈하게 옮기는 걸음엔 삐끼들이 말을 걸지 않는다.
혹 말을 건다해도 난 당연한 듯이 말한다.
"내가 갈 곳은 이미 정해졌다. 가라!"
숙소가 있는 곳으로, 당연히 익숙한 골목들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는 뜻!
바라나시의 낯설고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몇 번씩 오갈때,
초자의 티를 팍팍 내며 지나다닐때 낯익어진 얼굴들이 생각이 난다.
아직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괜시리 그들이 보고 싶기도 하다.
진정 다시라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바라나시에 다시 머물면서 생각합니다.
다시 라는 것이 어쩌면 한 번의 실수를 담보로 하는 것이지만,
혹 성공을 하였더라도, 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재도전하는 것이라고 친다면,
다시.
그것은 기회라는 생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 하나를 더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닐까.
다시 바라나시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네팔로 가려고 합니다.
처음이라서 다시라는 기회는 남은 것입니다.
다시 라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맘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진정한 다시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다시라는 것을 굳이 딱딱하게 따지자면, 진정한 다시라는 말은 없을런지도 모른다.
그래.
다시 라는 말은 기계가 아닌 생명을 가진 것들에게 완벽한 셋팅이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불가능하다.
시간이 다를 것이고
공간이 다를 것이고
움직이는 주체가 어떤 식으로든 변했을 것이고
다시 라는 것이 단지 1분이건 5분이건 아니면 몇 년이건 말이다.
다시 바라나시로 왔다.
어쩌면 진정한 나의 인도여행의 시작은 바라나시였을런지 모른다.
지난번 바라나시에서 일주일동안 중 3일간 있었던 한국인숙소가 아니라,
뿌자게스트하우스의 감옥독방 같은 곳에서 보냈던 3일.
뿌자레스토랑의 옥탑에서 내려다보았던
강가나 악마의 숲이나 밤마다 열리는 뿌자...
버닝가트에서 불어오는 무거운 바람을 맞으며 ....
내 발아래 놓여진 낯선 땅에 정말 혼자라는 것이 철저히 무서웠던 시간.
'정말 내가 혼자였구나.'
그러면서 바라본 강가와 버닝가트.
뭘 굳이 생각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저 혼자서 3일간을 온종일 내려다보기만 했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무서워서 그 곳에 혼자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트를 혼자 걷고,
길을 잃어버리고,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만났던 수많은 보트맨과 맛사지맨...
그리고 의미없이 말을 던지며 지나가는 검은 사람들.
그리곤 난 레스토랑에서 나오지 않았었다.
다만 그 곳에 앉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인도의 시작이었던 델리로 가고 싶었다.
델리에 다시 도착했을 때,
뉴델리역 앞의 공중화장실 앞이 지금도 선명하다.
처음 인도에 도착하자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델리역에 섰을 때 멈추지 않았던 구역질,
그 냄새의 기억은 일주일내내 인도의 무엇도 먹지 못하였었다.
딱 그 곳에 섰는데, 그 냄새가 더는 구역질을 나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인도의 냄새였을 뿐이다.
신기했다.
옆 사람에게 민망할 정도로 구역질을 해대었던 딱 그 곳인데, 그 곳에 냄새가 사라졌을리가 없다.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었다.
나머지 4.50일쯤되는 인도여행은 보람차다고 할 순 없지만, 대충 순탄했다.
다시에 대해서 다시 말한다.
다시 바라나시이다.
어제 저녁 6시30분에 델리를 출발해서 오늘 아침 8시에 도착했다.
싸이클릭샤를 타고 가격은 묻지도 않는다. 당연 20루피이다.
고돌리아 촘무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릭샤에서 내려야 할 곳을 안다.
고돌리아 촘무아니보다 좀 더 전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지금은 쉬바페스티발기간이다.
그건 내가 이해해준다.
길을 알기에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아는 길을 따라 매끈하게 걸음을 옮긴다.
두리번거림없이 매끈하게 옮기는 걸음엔 삐끼들이 말을 걸지 않는다.
혹 말을 건다해도 난 당연한 듯이 말한다.
"내가 갈 곳은 이미 정해졌다. 가라!"
숙소가 있는 곳으로, 당연히 익숙한 골목들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는 뜻!
바라나시의 낯설고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몇 번씩 오갈때,
초자의 티를 팍팍 내며 지나다닐때 낯익어진 얼굴들이 생각이 난다.
아직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괜시리 그들이 보고 싶기도 하다.
진정 다시라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바라나시에 다시 머물면서 생각합니다.
다시 라는 것이 어쩌면 한 번의 실수를 담보로 하는 것이지만,
혹 성공을 하였더라도, 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재도전하는 것이라고 친다면,
다시.
그것은 기회라는 생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 하나를 더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닐까.
다시 바라나시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네팔로 가려고 합니다.
처음이라서 다시라는 기회는 남은 것입니다.
다시 라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맘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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