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네팔의 수도 카두만두로 이동을 했다.
버스로 6시간 30분 거리.
이 곳 카투만두는
중국이나 티벳을 여행하고 들어오시는 분과 인도를 여행하고 들어오신 분들로 섞인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는 다른 곳보다 더 활발한 편이다.
이번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이건 순전히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여행자가 뭔가 건져볼 것이 있나 하는 불손한 생각에서이다.)
한국 어른, 한국 학생, 한국 아이들 할 것 없이 한국인들이 가득!
제육볶음, 소고기볶음, 김치볶음, 된장 찌게... 한국음식들이 가득! 한국에서는 잊혀진 결명자차까지....
어제 오늘 과식을 하곤 속이 더부룩 답답하지만,
호강을 했으니 좀 참아줘야 한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다보니, 이 곳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인테넷방비는 포카라보다 3분의 1이나 더 싸다.
속도가 비슷하게 느린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맘이 좀 가라앉는다.
역시 사진은 올라가지 않는군!
포카라도 그랬지만, 여행자의 구역은 정해져 있다.
마치 거대한 유리관을 덮어 놓은 듯이 그들이 자연스레 살아가는 공간과
여행자들이 돈지갑을 열어라고 만들어 놓은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각자의 운동방향대로 움직인다.
포카라에서 올드바자르를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내가 보았던 그들의 자연스런 삶을
그리고 안나푸로나를 오르면서 보았던 그들의 자연스런 삶을
카두만두로 오는 버스 안에서 밖을 보면서 스쳐 만날 수 있었다.
여행자!
그 말을 풀어본다.
나그네가 가는 것, 움직이는 것이 여행이다.
간다 ... 혹은 .... 움직인다.
항상 앞으로 전진 진행한다는 말이다.
어느날 갑자기 여행자가 되었다. 난 전방으로 진행하고 있나 생각해 본다.
새벽 버스를 탔었다.
이른 아침 네팔은 참 부지런하다.
인도의 아침 풍경은 물통을 들고 볼 일을 보는 것이다. 들판 여기저기에 앉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볼일을 본다.
이 곳 네팔의 아침 풍경도 인도와 같이 분주하다.
네팔리들은 주로 공동수도를 사용하고 있다.
여자들은 그 곳에서 빨래가 한창이고, 남자들은 하얀 양은 물통에 물을 길어나르느라 바쁘다.
그 틈새 사이로 아이들은 목욕을 한다.
어른들을 머리를 감는다.
그보다 더 잦은 풍경은 남녀노소를 상관하지 않고 동네 앞에서 칫솔을 물고 있는 모습이다.
칫솔을 물고 다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 나라다.
새색시인듯이 보이는 말갛게 사리를 입은 젊은 여자도 칫솔을 물고 다닌다.
그땐 그랬다.
이들은 이렇게 씻고 살아가고 있구나.
인도와는 달리 소고기를 먹는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누렁이소를 먹는 것이 아니라 버팔로처럼 생긴 물소를 먹는 것이라 한다.
그 소와 그 소는 다르단다. 같은 소인데... 간발의 차이로 흐흑!
아무튼 이른 아침 소를 잡고 있는 풍경을 세 번이나 만났다.
소를 도살한 지 얼마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굳어버린 소를 정육하고 있다.
동네앞에서 그것도 버스들이 다니는 아스팔트 도로 앞에 소가 검게 그을린 채, 붉은 살을 드러낸 채,
동네 남정네들의 칼질을 받고 있다.
첫 번째 그 모습을 보고 으윽 하고 나도 모르게 옆 사람을 쿡쿡 찔러 보라고 했다.
옆에 앉은 친구도 으윽 거린다.
몇 분 뒤 다시 정육장면,
또 몇 분 뒤 다시 정육장면,
그땐 그랬다.
아 이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이렇게 먹고 사는 일을 해나가고 있구나.
또 인도!
인도인들이 사는 집을 겉에서 보면, 거의 대부분 짓다가 만 집들이다.
지붕이 없는 집들처럼 보인다.
네팔에 와서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이 잘 지어진 집이다.
벽돌을 쌓아서만 아니라 네 기둥을 골조까지 한 집들이다. 튼튼해보인다. 거기다가 2.3층짜리 집들이 대부분이다.
버스를 타고 가만히 살펴보니, 그들의 집들은 주로 돌을 마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시골로 들어가면 돌로 벽돌을 대신하고 지붕을 대신해서 집을 지었다. 집이 튼튼할 밖에다.
히말라야가 생각이 났다.
거대한 히말라야에 수도 없는 계단은 바로 옆의 돌들을 그냥 이용해서 만들었었고,.
히말라야의 집들은 돌로 지어져있었다.
이들도 가까운 히말라야에서 돌을 옮겨와 집을 짓고 담을 만들어 살고 있다.
그것도 반짝거리는 돌로 말이다.
잘 지어진( 알겠지만, 호화로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기에도 안정감이 있어보이는 그런 자알~)
집에서 네팔리들이 살고 있다.
아, 이들은 이렇게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구나. 이렇게 히말라야의 그늘아래서 살아가고 있구나.
카두만두로 오는 동안에 본 것이다.
다시 여행이야기.
전방으로 진행한다?
그건 아 그렇게 살고 있구나' 그것이 아닐까 한다.
상상하지도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삶에 대해서 인정하고 긍정한다는 것은 곧 나를 중심으로 본다면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범주를 넓혀 가는 것.
의식주의 문제부터 나의 범주를 넓혀 가는 것.
그리고 그들의 의식주에서 나오는 관념이나 생각을 나의 것으로 좀은 넓혀 가는 것.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내 안에 들어와 엉덩이를 비집고 자리를 잡아 가는 것.
꽁꽁 옭아메어져 풀리지도 않고 점점 단단하게 몸을 뭉치며 작아지던 나에게 틈새를 만들어 주는 것.
전방 진행이다.
어제는 4개월여의 인도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한 여자 여행자를 만났다.
그 여행자가 말한다.
"큰일났어. 나 이대로 가다간 절로 가야 할까봐. 왜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
그 여행자는 아침에 msn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는 얘기들을 했단다.
돈, 미래, 이성.... 뭐 그런 이야기였겠지.
그런데 자신은 이제 그런 것과는 동떨어진 것 같더란다.
자신은 소위 류시화필의 인도여행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더랬는데,
결과적으로는 딱 '하늘호수'필이더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한국가면 어떤 맘일까?"
옆에 있던 1년가까이된 더 장기여행자가 말한다.
"그러니 여행은 딱 1달만 하는거야. 그리고 뭐 괜찮아. 한 달이면 원래대로 돌아가. 근데,.... 다시 나오지!"
또 딴 이야기
한 여자 여행자가 인도를 여행한 뒤 한국으로 돌아가서 좀 시간이 지난 뒤 하는 말.
"나 인도로 가고 싶어. 인도의 그 껄떡거리는 남자들의 느끼함이 그리워!"
진심이었단다.
아주 평범한 여자가 여행자라는 이름으로 인도라는 좀은 개성이 강한 지역에서 지냈다.
객관적인 인물평가와는 상관도 없이 여행자라는 매력이 붙어 인도남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평생 겪어보지 못한 공주필(?)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징그럽게 웃어대는 붉은 이를 가진 그들이 지겹다고 치를 떨었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보니,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징그럽게 웃어주지조차 않은 그런 여자더란다.
어쩌면 둘 다 실체이다.
누구나 좀 더 나은 실체에 자신의 표를 던진다.
여자 여행자는 한 발 걷기가 힘든 인도를 그리워하더란다.
왜 이런 수다를 떠는지.....
정리를 해보자.
(이건 인터넷 비용의 압박에서 좀은 벗어나서 긴장감이 떨어진 것이 분명하다. 말이 하고 싶은거지.ㅋㅋ)
여행은 일단 전방진행이다. 내 안의 영토확장이다.
네팔에서 본 것은 낯선 삶의 모습들이었다. 낯선 모습을 여러 번 만난 후에 익숙하게 내게 다가왔다.
한국이라는 내가 살아가야 하는 현실과 떨어진 나는 현실에 대해 잊고 지낸다.
현실로 돌아간 여행자는 여행을 또 다른 현실안에서의 한 판 꿈이라고 생각한다.
네팔 카투만두에서 여행자의 구역과 그들 사람의 구역이 나누어지듯
여행자도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자신과 여행지에서 한 판 꿈을 꾸고 있는 자신과 나누어진다.
여행자의 구역에서 돈 봉투를 열어대듯 자신의 한 판 꿈에서도 꿈이라는 지폐를 풀풀 날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날 빈지갑을 볼 때까지 말이다.
빈지갑을 인정할 수만 있기를 ,
그래서 비어진 곳에 다시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는 그 무엇만 찾기를 난 바란다.
딸랑 동전 한 닢이더라도
나랑 꼭 닮은 것이 내 빈 지갑안에 있기를. 그럼 그건 나니까......
허왕된 꿈도 날리고, 팍팍한 현실의 짐도 날리고....
동전 한 닢이지만, 나!
모두가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이다.
궤도 수정 중이다.
앞 뒤로 여행자들이 줄을 서있는 가운데에 서서 난 내 여행에 대해 중간정리를 하고 있다.
떠나기도 돌아가기도 쉽지 않는 여행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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