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여행을 올 때는 월드컵을 보는 것을 포기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도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인지라 전 월드컵 두 경기를 아주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첫번째 토고와의 경기.
제가 아쉬람의 고장 리쉬케쉬에 머물때입니다.
리쉬케쉬에는 '저먼베이커리'라는 빵집이 있습니다.
제가 점심을 먹으러 그 곳에 갔을 때 그 곳의 사장님께서 어디서 왔냐고 .. 그래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오늘 월드컵 경기 있는 날인데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셨습니다.
사실 전 한국시간으로 알고 있었기에 다음날인줄로 착각하고 있었더랬는데..
그러냐고.
"그래요? 월드컵 경기를 어디서 봐야 하나요?"
"우리 가게에서 보세요."
"사장님이 아니셨으면 경기를 놓칠 뻔 했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추어 '저먼 베이커리'로 갔습니다.
그 곳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리쉬케쉬는 세계각국에서 요가를 배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특히 서양사람들이 많은 지라 월드컵 경기를 보기위해 빵집이 빽빽했었습니다.
그런데, 둘러보니 한국사람은 저와 저와 함께 방을 쓰는 룸메이트 둘 뿐입니다.
사장님은 저희 둘을 가르키며 가장 텔레비젼과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사람들에게 한국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민망스러웠지만, 괜시리 뿌듯한 맘이 듬뿍 들었지요.
그렇지만, 이 경기가 지면 정말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 사실 그것도 고민이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토고가 한 골을 넣고...
소심해진 우리 둘,
리쉬케쉬는 금주구역이라 맥주도 마실 수 없습니다.
오직 물통 하나를 앞에 두고 마른 잎을 달래며. 소심한 대한민국을 몇 번 해 보았을 뿐입니다.
한국사람이 앞에 앉아 있어서 인지,
아니면 같은 아시안이어서 그런지,
그 빵집에서 일하는 인도 사람들이 한국을 응원하기 시작합니다.
찬스를 잡으면 열광을
찬스를 놓치면 아쉬움에 한숨을
그 호흡이 우리 둘과 함께였습니다. 어찌나 힘이 되던지.
"안녕하세요?"
하는 한국말이 옆에서... 돌아다보니 노란머리 여자분!
자신은 광주에서 몇 년 살았다시면서 저희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화이팅!을 외쳐주셨습니다.
이렇게 대표가 될 수도 있구나.
전반이 끝나고 휴식시간 뒤를 돌아다보니.. 수많은 사람들!
우리 둘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눈이 따라다님을 느낍니다.
후반이 시작되고 이젠 경기만 보입니다.
완전 집중을 하면서 옆에 누가 있건 그들이 우릴 보건 상관도 없이 소리를 지르다 한숨을 쉬다.
그러다 마침 골을 넣었을 때,
우리 둘은 얼싸안고 펄쩍 펄쩍 뛰었습니다.
그 순간 소리를 지르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그 곳에서 같이 경기를 보았던 많은 외국들도 같이 열광하였습니다.
부러움의 눈으로 안도의 눈으로 우리를 보면서 그들은 같이 기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역전골!
완전 뒤집어졌습니다.
우리가 뒤집어진 것은 물론이고, 인도애들은 더욱 더 난리입니다.
사람들은 좀 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정말 얘들이 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린 아주 큰 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박수를 치며 그들이 보는 가운데 둘이서 소박한 응원을 했습니다.
경기는 끝이 나고, 사람들이 우리곁으로 와서 축하한다는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정말 좋은 경기였다고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펴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음식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사장님은 한국이 이겨서 참 좋겠다고 ... 계속 행운이 있기를 하고 축하의 말과 부러움의 눈을 함께 보여주셨습니다.
둘이서만 보는 낯선이들과의 월드컵 관람!
처음에는 참 어색할 것 같았고, 델리 대사관에서 한국교민들과 다같이 보고 올껄 그랬나 하는 맘도 있었지만, 그 시간이 참 아름다웠다는 ... 축하를 받는 순간이 참 뿌듯했다는..
이 곳에서 둘이서만 보기를 참 잘했다는 말을 나누며 숙소로 돌아왔었습니다.
두근거림이 아마 두배나 되었을 리쉬케쉬에서의 첫 월드컵 관람이었습니다.
두번째 경기, 프랑스전
바로 어제입니다.
전 아시다시피 맥그로드간지로 이동을 하였고, 이 곳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인 식당이 있습니다. 출입구에 한국전에 대한 공고도 붙었습니다.
이웃 이웃 숙소에 묵고 있는 한국인들이 밤이 되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인도시간으로 밤 12시 30분입니다.
그런데 10시가 좀 넘은 시간부터 텔레비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곳의 텔레비젼은 우리의 유선방송처럼 몇 개의 유선방송사에 돈을 내고 텔레비젼을 케이블로 연결하여 봅니다.
그런데 다른 집들은 나오는데 이 한국인 식당과 옆의 숙소만 나오지 않습니다.
식당의 사장님은 몸이 달아 유선방송사에 전화를 하고... 어쩌고 저쩌고.
"여긴 인도야!"
인도 사람들이 밤 늦은 시간이 유선방송 케이블을 고치러 이 곳까지 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두들 포기하고 어찌해야 하나.. 하는 사이 경기 시작10분전!
갑자기 텔레비젼이 연결되었습니다. 모두들 함성을 지르고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아마 5.60명이 모였을까요?
누군가가 갖고 온 태극기가 식당에 걸리고. 애국가를 함께 부르고 경기시작.
모두들 입을 맞춰 응원을 하는데, 프랑스 한 골!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다시 티비가 꺼져버렸습니다.
다른 집은 나온다는데.....
누군가 한 사람이 메인스트리트에 디비디방이 있답니다.
그래서 그 곳으로 옮깁니다.
한 사람당 40루피입니다.
단체니까 좀 깎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보기 싫으면 가라는 식입니다.
모두들 울며 겨자먹기로 40루피씩이나 주고 입장.
그 사이 아무 일이 없기를 빌었고, 사실 그 사이 골기퍼의 선방이 있었을 뿐 무사했더라구요.
그 디비디방,
프랑스인 3명이 있었고, 인도사람들이 아마 20명 정도 있었을 겁니다.
같이 간 한국인은 8명!
열심히 응원을 했습니다.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악마의 응원가에 맞춰서 응원가를 부르고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말이지요.
모두들 신기한 듯이 화면을 보랴 우리를 구경하랴 바쁜 듯 싶어 보였습니다.
동점골이 들어갔습니다.
우리 모두는 완전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아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저 끌어안고 물을 뿌리며...
인도인들은 우리를 위해 실내에 불을켰다 껐다하며 분위를 맞춰주었습니다.
그리고 경기 끝!
우리 앞에 프랑스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 그때 알았습니다,.
우린 동점이지만 선방이었다고.. 잘했다고 기뻐했고,
프랑스 사람들은 아주 우울한 표정이 되어 나갔습니다.
문 앞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프랑스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은 마치 경기가 끝난 뒤
두 나라의 선수들이 악수를 하듯 악수를 나누면서 서로의 경기에 대해 칭찬을 했습니다.
오늘밤 마날리로 가면,
이제 마날리에서 다시 한국의 경기를 다같이 볼 것입니다.
한국인들끼리 보며 즐기는 월드컵
그리고 이방에서 이방인들 사이에서 즐기는 월드컵
월드컵을 보고 나서 어디론가 여행을 해도 해야 하지 않을까 갈등을 했던 시간들이 정말 기우였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운동경기가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의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했던 시간입니다.
나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누군가와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이 곳에서 보는 월드컵뿐만 아니라
지나가버린 어떤 시간들도 그랬을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은 내가 했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나라는 좁은 공간안에 있을 때 꽉 들어차
그 실체가 필요이상으로 확대되어 오직 나라는 인간만 아주 크게 보였었겠구나.
지난 어떤 시간이 나라는 인간뿐 아니라,
지금 월드컵이라는 경기처럼 세상 어느 한 자리를 차지했던 시간이었고,
인간으로 보았다면...
좀 많이 작기는 하겠지만 어찌 생겼는지 알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더불어 들었습니다.
작더라도 세상이라는 곳에 나라는 인간이 어디쯤 있는지는 볼 수 있겠다.
세상이라는 캔퍼스와 나라는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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