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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라틴 미리보기

by 발비(發飛) 2006. 5. 17.

 

사진클릭! 무지 큰 지도를 만나실 수 있으십니다.^^

 

 

남미여행 중 갈 곳으로 예상하는 곳으로 준비해보았다.

발 대신 마우스로 찾아다닌 라틴 미리 가보기이다.

이 자료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덧붙여 나갈것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아루  

 

파란색이라고도 녹색이라고도 할 수 없는 유백색을 띤 바다와 이채로움을 내뿜는 원추형의 산들을 이어주는 해변은 마치 거대한 상아를 연상시킨다.

1565년에 포르투갈 식민지시 대에 포르투갈인에 의해 세워진 이 도시는 지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로 바뀌기 전 1763년부터 1960년까지 수도이다.

세계 3대 미항중의 하나인 리우데자네이루는 사치스런 비치리조트 그리고 삼바와 화려한 카니발의 도시로 콜로니얼 풍의 건물, 직립 바위, 흰모래밭 등이 인상적인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전된 곳이다.

브라질의 독립과 유럽 예술의 상륙, 보사노바 음악의 발상지로서 항상 역사의 국제적 무대가 되었던 곳으로 완전무결한 즐거움과 역동적인 놀이의 천재인 카리카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도시로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끓어 넘치게 만드는 곳이다.

라우데자네이루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에는 은행과 상점들 고층빌딩이 줄지어 있으며, 과나바라만의 경치는 그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이 가슴 벅찬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200년동안이나 수도였던 도시의 역사와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인위적인 환경보다는 코르코바도 언덕, 코파카바다 해안, 팡데아수카르 같은 빼어난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다.

쇼핑객들을 위한 떠들썩한 야외 시장과 세계 최고의 보석상점들도 즐비해 있으며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쿠바, 스카이다이빙, 마운튼트렉 등의 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리오데자네이루 (by 남미여행가 박재혁)

 

정열의 나라 브라질. 브라질의 또 다른 이름은 삼바다.

삼바축제가 열릴 때면 브라질 전역이 들썩인다. 가장 큰 삼바축제가 열리는 곳은 ‘리오 데 자네이로’(이하 리오). 세계 3대 미항으로 꼽는 리오는 축제와 함께 아름다운 휴양도시로도 이름났다.

 리오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거대한 그리스도 상이다.

코르코바도 언덕(710m)에 리오를 굽어볼 수 있게 거대한 그리스도상을 세워 놓았다.

이 그리스도상은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1931년 세워졌다. 그리스도 상의 높이는 30m, 두 팔의 길이는 28m다.

코르코바도 언덕에 서면 대서양에 접한 미항 리오의 전경이 한눈에 든다.

슈가로프, 삼바 경기장, 마냐카나 축구 장, 플라밍고 해변, 코파카바나 해변, 이파네마 해변, 그리고 센트로 지역까지 도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리오의 야경을 보려면 슈가로프산으로 가야 한다. 슈가로프는 바닷가에 솟은 산이다.

산정에 서면 바다 건너에 자리잡은 리오의 야경이 보인다.

잔잔한 바다에 물든 도심의 불빛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슈가로프산은 원뿔형으로 치솟은 바위가 있다. 바위 모양이 바게트 빵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빵산’이라고 부른다. 또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고 해서 ‘강한 남자’를 꿈꾸는 이들이 이곳에서 정기를 받아간다는 속설도 있다.

리오의 자유분방한 아름다움은 코파카바나 해변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

5㎞의 해변을 따라 파도 모양의 도로가 나 있다. 이 도로가 리오를 상징하는 거리다.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과 비치 발리볼, 축구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코파카바나는 2월에 리오 카니발이 열릴 때면 축제의 열기로 휩싸인다.

이 축제를 보기 위해 매년 3000만명의 인파가 모여든다고 한다.

리오 카니발의 기원은 유럽에서 비롯됐다. 포르투갈의 ‘엥투루도’와 이탈리아의 ‘마스카라다스’가 기원이다.

여기에 흑인 노예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풍속이 융화되어 삼바축제를 만들어 냈다

브라질 사람들은 삼바축제를 위해 1년을 생활한다고 할 정도로 축제에 열광한다.

리오 카니발에 나서는 단체는 2000여개에 달한다. 각 팀마다 독특한 주제를 설정해 의상을 준비하고, 차량을 개조해 만든 무대에 올라 행사에 참가한다.

리오 카니발에서 1등을 한 단체는 마지막 날 리오의 삼바 경기장(삼바드로모)에서 퍼레이드를 개최하는 영예를 안는다. 이때가 삼바 축제의 절정이다. 삼바드로모의 퍼레이드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인파를 열광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리오 카니발의 숨은 공로자는 마피아로 알려졌다. 브라질의 마피아들은 치안 당국의 적극적인 방조 아래 행사장의 티켓 판매을 독점하는 대신 축제 기간 동안 리오의 치안을 책임진다고 한다. 술과 마약, 그리고 광란의 퍼레이드가 뒤엉켜 있으면서도 큰 사고없이 축제를 치를 수 있는 데는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리오 카니발을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리오의 이파네마 해변 지역에는 삼바쇼를 공연하는 두 곳의 극장이 있다. 스칼라(Scala·Av. Afranio de Mello Franco 296)와 플라타포르마1(Plataforma1·Rua Adalberto Ferreira 32)이 그곳이다. 두 곳의 극장에서는 삼바쇼 외에도 브라질의 무술춤 ‘카포에라’를 볼 수 있다. 360도 회전하는 발차기와 좌우로 달리면서 선보이는 빠른 몸 동작은 마치 한 마리의 새가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삼바쇼는 오후 10시에 시작해 12시쯤 끝난다.

 

[리오의 교통]

산토스 듀몬트 국제공항에서 리오 시내로 진입하는 것은 버스와 택시 2가지.

4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버스는 가격이 저렴(5헤알)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 불편하다.

반면 택시(40헤알)는 비싼 반면 빠르게 도심으로 진입할 수 있다.

여름철의 경우 기온이 높기 때문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헤매는 것보다 숙소로 빨리 이동,

휴식을 취하는 게 현명하다.

택시 요금은 지역별로 정해진 요금 쿠폰을 구입해 사용한다.

리오 시내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특히 버스는 지역별로 이동하기 쉽게 되어 있다. 1.80∼1.90헤알. 코파카바나에서 슈가로프로 간다면 511번, 코르도바도로 간다면 583번을 이용한다. 두 곳 모두 정문 앞에 정차한다.

센트로와 이파네마로 가는 버스는 5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지하철은 센트로에서 플라밍고 지역까지만 운행한다. 두 지역을 오갈 때는 지하철이 빠르고 편리하다.

 

[리오의 숙소]

리오의 저렴한 숙소는 대부분 센트럴 광장 주변에 모여 있다.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것이 아쉽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자들은 이곳에 머무른다.

요금은 하룻밤 10달러 내외다.

리오의 멋진 해변 풍경을 감상하는 곳에 머무르고 싶다면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로 간다.

2인 1실 기준 35달러 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코파카바나의 호텔에서 해변의 전망이 일품인 방을 구할 수 있다.  

 

상파울루  

 

남미 최대의 근대도시 상파울루는 빽빽히 솟은 고층빌딩과 파울리스타(상파울루 시민들)들이 자랑하는 지하철로 상징되고 있다.

상파울루는 브라질 전체 인구에 약 7%가 밀집된 도시이며, 여러 인종이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가며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다른 문화와 성격에서 이것을'혼돈의 조화'라고 하는데 이렇듯 이곳은 정말 독특한 이미지를 풍긴다.

특히 문화,금융, 상공업의 중심지라고도 불리울 만큼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상파울루에는 유물, 유적과 명소가 적기 때문에 이 도시를 몇 배로 즐기기 위해서는

그들의 현대적인 문화 공간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며, 여행을 보다 알차게 만들어 가는 방법일 것이다.

상파울루에서 브라질 전체에서 생산되는 설탕의 62%,커피의 33%,수출 과일의 50%를 생산하고 있으며 산업과 금융,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파울리스타(Paulistanos:상파울로 사람을 일컫는 말)들은 자신들은 브라질 전체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파울리스타(Paulistanos)'로 불리는 상파울루 사람들의 생활을 접하고 상파울루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도시의 풍요로움을 즐기는 것이 상파울루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이다.

우리로 치자면 대관령 고개 언저리쯤에 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예수회 신부들이 식민지 개척자들과 함께 내륙개발과 선교를 위해 해안지방에서부터 험준한 해안 산맥(Serra do Mar)을 넘어와 이 고원지대에 첫 선교 마을(Colegio Sao Paulo)을 건설한 것이 1532년의 일로 상파울로시의 출발점이 되었다.

지금은 이 예수회 선교마을의 예배당(capela)만이 역사적인 유물로 남아 과거의 흔적을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상파울로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쎄광장 (Praca da Se)에서 좁은 찻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회백색 칠로 말끔하게 단장된 조그만 까펠라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도시의 건물 속에 파묻혀 그 지형적 특색을 잘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검은색 대리석 돌을 촘촘하게 깔아놓은 예배당의 정원에 서서 고층 건물들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상파울로 시 전경을 눈짐작으로 이어보면

이곳이 높은 해안 산맥을 올라서자마자 내륙 고원지대가 한 눈에 내리다 보이는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고도에서 지평선 너머로 펼쳐지는 광활한 브라질 내륙을 바라보며 진취적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품었을 야망과 예수회 신부들이 가졌던 종교적인 신념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금과 인디언 노예를 찾기 위한 내륙 개발의 시발점이 된 상파울로는 그 뒤 북동부 지방에서부터 이전되어 온 커피 경작의 중심지가 되면서 브라질의 새로운 부의 원천이 되었다.

커피 경작의 호황에서 얻은 부를 바탕으로 이룩한 산업화는 오늘날 남미의 가장 번영 된 도시로 탈바꿈하게 해주는 근간이 되었다.  

 

이과수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답고 웅장하기로 유명한 이과수 폭포는 힘찬 물소리와 빛에 따라 색채가 변하는 물이 품어내는듯한 무지개가 그 무엇보다 가슴 설레게 한다.

폭포의 폭이 5km이고 최고 낙차가 100m를 넘는 등 세계 최대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2개국에 걸쳐서 장대한 색과 음이 일대에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는 듯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과수 폭포를 관광할 수 있는 포스두 이과수시는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접해있는 도시이다.

이과수라는 이름은 원주민인 인디오의 '이구'는 물이라는 뜻이며,'이수'는 장대한 것에 대한 경탄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

항공편으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시간, 상파울루에서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지에 가면 지프를 타고 이과수 폭포 근처의 정글을 트래킹 한 후 배를 타고 이과수 폭포를 여행하는 코스가 있는데 이곳에서 폭포 웅덩이까지 다가가 세계적인 폭포의 진면목을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배가 폭포 쪽으로 다가갈수록 고막을 찢을 듯이 울부짖는 이과수의 괴성에 제압을 당하게 되며, 머리위로 쏟아지는 이과수를 몸으로 느끼며, 자연의 장대함에서 평소에 느끼지 못한 스릴을 경험할 수 있어서인지, 스릴있는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서인지 점점 관광자가 늘고 있다.

 

농목업 (커피, 사탕, 면화),광업(철광석), 공업(철강, 기계),주요 천연자원은 철광석, 보크사이트, 망간 등이 있다.  

 

이과수폭포(by 남미여행가 박재혁)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국경에 자리한 이과수는 북미 나이아가라, 아프리카 빅토리아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불린다.

남미로 가는 모든 여행자들이 꼭 한 번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엄청나게 큰 물줄기’. 과라니족이 이과수폭포를 부르는 말이다. ‘이구(Igu)’는 ‘물’이라는 뜻이고, ‘아수(Acu)’는 ‘크고 위대하다’는 뜻이다.

원주민들은 또 이 폭포의 중심부를 ‘악마의 목구멍’이라 불렀다.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과수폭포는 폭 4㎞에 60∼80m 높이의 폭포 257개가 걸려 있다.

매초당 떨어지는 물의 양은 6만t. 이과수의 크고 작은 폭포들은 햇빛의 각도가 바뀔 때마다 여기저기서 무지개를 피어 올린다.

이과수폭포 관광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두 방향에서 할 수 있다.

브라질 쪽은 산책을 하며 이과수폭포의 전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폭포로 가는 산책로에는 ‘과치’라 불리는, 꼬리가 긴 너구리과의 동물이 관광객을 반긴다. 과치는 가족단위로 몰려다니며 관광객들에게 먹이를 구걸한다. 이과수폭포 주변은 야생동물의 보고로도 손꼽는다.

수달 등의 포유동물과 밀림 속의 나무 위로만 옮겨 다니며 사는 ‘꼬리 감는 원숭이’ 등이 서식한다. 또 나비의 낙원이기도 하다.

이과수 보트 선착장까지는 사파리 투어를 할 수 있다.

지프차를 타고 이과수 주변의 정글을 탐험하며 동식물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사파리 투어의 종착점은 폭포 하류에 있는 선착장이다. 선착장을 출발한 보트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격류를 거슬러 올라간다. 시원한 강바람과 보트를 덮칠 듯이 쏟아져 내려오는 폭포의 장관이 말을 잊게 한다.

초여름에는 수천 마리의 나비 떼가 보트 주변으로 모여 들어 장관을 이룬다. 이 나비들은 염분을 섭취하기 위해 강으로 몰려든다고 한다.

브라질이 폭포의 파노라마를 즐기는 곳이라면 아르헨티나에서는 폭포 바로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꼬마 기차를 타고 가서 강 위로 난 약 1㎞의 다리를 건넌다.

다리는 악마의 목구멍 바로 앞까지 이어져 있다. 눈 앞에서 거대한 폭포수가 포말을 일으키며 추락한다.

아르헨티나의 선착장에서도 보트를 타고 이과수폭포를 돌아볼 수 있다.

탑승 시간은 브라질보다 짧지만 짜릿함은 이 곳이 한 수 위다. 특히 보제티폭포(Bozetti Fall)는 폭포 바로 밑까지 들어간다. 거대한 선풍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바람과 물보라가 몰아친다.

보트에서 내릴 때면 온몸이 물보라에 흠뻑 젖는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사파리 투어와 산책길을 따라 가벼운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이곳의 트레킹 코스는 브라질에 비해 다양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193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과수폭포는 1984년(아르헨티나)과 1986년(브라질)에 각각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이과수폭포를 보기 가장 좋은 계절은 8월부터 11월이다. 3월부터 7월까지는 우기와 겹쳐 산책로를 따라 폭포를 보러가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과수폭포를 보려면 최소 2일은 투자해야 한다. 관광객들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각각 하루씩 머문다.

 

[교통]

이과수는 25만6000여명이 사는 작은 도시다.

장거리를 운행하는 버스터미널은 시외곽에 위치해 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 숙소로 이동할 때는 버스보다 택시를 이용하는 게 현명하다. 이과수폭포와 이타이푸댐,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다운타운에 있는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이용한다.

브라질의 시내버스는 구조가 독특하다. 버스에 올라서면 지하철의 출입구처럼 회전식 문을 지나야 한다. 탑승객 수를 정확히 세기 위해 설치한 것이지만 승객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숙소]

이과수폭포 주변의 숙소는 아르헨티나보다 브라질이 싸고 호텔 수도 많다.

배낭여행자들이 묵는 숙소는 1인당 14달러 정도 한다. 시내버스터미널 근처의 숙소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과수폭포와 이타이푸댐, 아르헨티나로 가는 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이과수 중심가도 근처에 있다.  

 

 

아르헨티나  

 

브레노스 아리레스  

 

유럽풍의 도시로서 '좋은 공기'라는 스페인어의 뜻을 가지고 있다.

잠들지 않은 항구도시로 아르헨티나의 수도이다. 맑은 공기를 가지고 있으며 가을 하늘이 세계적으로 맑기로 유명한 곳이다.

행정구역은 46 지구로 나뉘어져 있으며 멋있는 항구사람이란 뜻의 '포르테뇨'라고 자신들을 부른다. 문화시설로는 약 100여 개의 미술관과 극장, 연주회장, 박물관이 밀집되어 있는 남미의 파리라고 불려지는 문화 중심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민속춤(단사 폴클로리까:Danza Folklorica-)은 지방과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

'까르나발리또(carnavalito)','삼바(zamba),'가또(gato)'등이 있는데 특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탱고(tango)'와 '밀롱가(milonga)'를 만나 볼 수 있다.

 

브에노스 아이레스는 쇼핑하기 좋은 도시인데, 아르헨티나의 특산품은 악어, 타조, 밍크, 뱀 등을 이용해 만든 가죽제품과 은세공품, 목각제품 등이다.

브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이러한 물품들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점들이 많고,

특히 센트로의 플로리다 거리, 산타페 대로, 알베아르 대로에 있는 상점들은 유럽풍의 세련된 디자인의 물건들을 쇼핑할 수 있다.

쇼핑거리 말고도 먹을것 또한 풍부한 브에노스 아이레스 시내의 레스토랑은 주로 센트로 일대에 많은데 최근에는 레콜레타의 후닌거리,팔레르모의 데마리아 거리에도 새로운 레스토랑들이 늘어나고 있다.

 

은의 나라 아르헨티나 신비와 매력에 이끌려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찾아왔던 유럽의 탐험가나 정복자들은 그 속에서 잠자고 있다고 하는 은의 재보를 찾아서 라플라타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남미 대륙에 있어서 토지가 넓다는 것은 이미 놀랄 일이 아니다.

국경으로 구분된 토지는 좁아도 눈앞에 펼쳐지는 지평선이 모두 평원이기도 하고,

건너다보이는 것이 모두 산맥이기도 하고 반대쪽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가 있기도 하는 등 이런 일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놀라게 되는 그런 모든 것이 있다는 점이다.

작열하는 정글에서 시작하여 365일 동안 결코 여름이 찾아오는 일이 없는 빙하의 대지까지 남북 3,700km는 여행자가 밟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색다른 풍경을 줄 것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에는 공립에서는 초등학교 605개,중학교 174개,전문대학 45개,국립대학 2개(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공업대학)가 있으며 사립에서는 초등학교 378개,중학교 359개,전문대학 70개,대학교 9개(살바도르 대학,베르그라노 대학 외)가 있다.

사립인 콜레히오의 경우에는 조부모 대부터 대대로 정해진 가정의 자녀가 다니는 명문교가 몇개 있다.

산업아르헨티나는 농업국임에도 불구하고 공업의 시장점유율이 높아 공업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있는 반면 공업의 생산경비가 높아 경쟁력은 낮은 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비스업도 시장점유율이 높으며 그밖에 운수 등을 포함하면 아르헨티나는 제 3차 산업이 발달돼 있다고 할 수 있다. 1

900년대에 들어 농산물가공에서 출발한 아르헨티나의 공업은 제 1차 페론 정권시기인 1940년대부터 막강한 정부의 보호 아래 급속히 발전을 이뤘으며 그 후의 각 정권도 같은 공업화정책을 계속 추진한 결과 현재는 대부분의 소비재, 내구소비재와 함께 중공업 부문에서는 철강, 선박, 항공기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제조하고 있다.

다만 이같은 공업화의 과정에서 거대한 재정투자, 국내공업보호와 노동자 우대책 만성적인 인플레와 공업제품의 제조원가를 높이고 질은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by 남미여행가 박재혁)

 

남미의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 끝없는 초원의 나라

아르헨티나의 모든 길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통한다.

아르헨티나 인구 3700만명 가운데 3분의 1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변에 산다.

라플라타 강 하류에 자리한 이 도시는 또 열정의 춤으로 알려진 탱고의 고향이기도 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은 ‘7월9일’ 거리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 5월 광장 등이 들어섰다.

 

동서남북을 바둑판 모양으로 가로지르는 도심도 ‘7월9일’ 거리를 중심으로 짜여졌다.

‘7월9일’ 거리의 길이는 4.3㎞, 폭은 144m에 이른다. 세계 최대 폭을 가진 거리다.

프랑스 상젤리제 거리와 비교되는 이 거리는 아르헨티나가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날(7월9일)을 기념해 만들었다. ‘7월9일’ 거리에는 거대한 오벨리스크(72m)가 ‘독립의 자랑’처럼 서 있다. ‘7월9일’ 거리의 동남쪽에는 플로리다 거리가 있다.

 산 마르틴 광장과 연결된 이 길은 차가 없는 쇼핑의 거리로 유명하다.

특히 가죽제품과 여성 의류를 파는 상점이 많다. 이 거리는 해가 진후에도 영업을 해 낮밤 구별없이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7월9일’ 거리의 오벨리스크에서 북쪽으로 가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명한 극장가들이 몰려 있다.

 

이 거리의 끝에 국회의사당도 있다. 국회의사당에서 계속 북진하면 레콜레타 공원묘지다.

아르헨티나의 국모 에바 페론(Eva Peron·1919∼1952)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에바 페론은 에비타란 애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가난한 농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삼류배우를 전전하던 그는 후안 페론 대령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마침내 영부인 자리까지 오른다.

에바 페론은 ‘페론주의’로 일컫는, 후안 페론이 펼친 주요 정책의 산파 구실을 했다. 특히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아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에게 부통령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부통령직을 고사한 1952년 말기암을 선고받고 33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에바 페론은 1978년 6월21일 런던의 프린스 에드워드극장에서 초연된 뮤지컬 ‘에비타’를 통해 다시 부활했다. 20여년간 공연된 이 연극은 1997년 마돈나와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7월9일’ 거리에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대통령궁이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계속가면 골동품점이 몰려 있는 산 텔모(San Telmo)다.

스페인 식민 시절에는 호화로운 주택이 몰려 있던 고급주택가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서민들이 사는 곳으로 변했다.

산 텔모에서 서남쪽으로 몇 블럭 더 가면 보카다. 탱고의 발생지이자 아르헨티나 축구의 대명사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이 있는 곳이다.

보카에서는 지금도 거리에서 탱고를 추는 예술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탱고 불후의 명작으로 불리는 ‘카미니토’의 배경이 되었던 거리는 맑은 모자이크처럼 밝고 화사한 색으로 칠해진 집들이 골목을 가득 매우고 있다. 이 거리는 일요일마다 그림과 모자이크 등이 전시되는 야외 갤러리가 된다.

 

[여행정보]

탱고는?

보커 빈민의 춤에서 유래, 남녀 몸 밀착 관능미 발산 브라질 삼바와 함께 남미를 대표하는 춤 탱고.

남녀가 한 조를 이뤄 밀고 당기며 몸을 감아돌리는 열정적인 춤이다.

이 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두 노동자들이 몰려 살던 보카에서 탄생했다.

 탱고는 19세기 후반 쿠바 선원들이 전수한 하바네란 무곡을 바탕으로 유럽 이주민들에 의해 완성됐다.

탱고에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고단한 삶과 신세계를 찾아 떠난 유럽인들의 보헤미안 정신이 함께 스며있다. 탱고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하층민들의 방탕한 춤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탱고가 프랑스 상류사회에 소개되면서 정식 춤으로 발전했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역수입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탱고는 강렬한 리듬과 절도 있는 동작, 남녀가 밀착해 춤을 추면서 발산하는 관능적인 분위기가 매력이다. 특히 흑인 영가풍의 어두운 음색도 특징이다.

탱고의 선구자는 엔리케 사보리도와 앙헬 비요르도 등의 작곡가와 반도에온의 명연주자 비센테 그레코 등이 있다.

‘카미니토’ 등 서정미가 넘치는 곡을 쓴 후안 데 디오스 필리베르토는 ‘탱고의 대부’로 추앙받는다.

 

[교통]

숙소는 1인당 10달러 내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택시를 이용해 돌아보는 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비용은 거리에 따라 미터기로 계산된다.

시내 중심가에서 주요 관광지까지의 택시요금은 12페소(약 4000원) 내외면 충분하다.

팁은 요금의 15%.

오래된 기차를 연상케 하는 지하철도 흥미롭다. 지하철은 차량의 외관을 목재로 만들었다.

차장은 종을 쳐서 출발과 도착을 알린다.

여름(12∼2월)에 방문을 했다면 걸어서 돌아다녀도 좋다. 시가지의 치안은 남미의 여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숙식]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는 ‘7월9일’ 거리와 플로리다 거리 중간에 몰려 있다.

1인 10달러 내외로 조금 비싼편. 동행이 2인 이상이라면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 사이에 있는 호텔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2인 1실 기준 60페소(약 20 달러), 3인실 70페소 내외다.

라 플라타 강변의 식당가 코스타네라(Costanera)에는 아르헨티나의 주식 스테이크를 파는 수십 개의 레스토랑이 몰려 있다.

언제나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곳의 레스토랑은 고기맛도 좋지만 양이 많아 배낭여행자들을 기쁘게 한다. 전채와 메인 요리를 합치면 대식가도 다 먹기가 힘들다

 

페루  

 

리마  

 

고대의 수준 높은 문명을 일으켰던 남미 최대의 잉카 제국의 숨결이 살아 있는 페루는 중부 태평양 연안의 고원에 있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1535년 에스파냐의 피사로가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 건설된 곳으로 남아메리카에 있어서 에스파냐의 식민지 경영의 중심도시로 성장하였다.

그 후 1821년 페루의 독립과 함께 수도가 되었다.

리마에는 식민지 시대의 문화와 근대 문화가 서로 섞이지 않은 채로 공존하고 있다. 전

통을 계속 지키려는 마음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활력 있는 시가지들이 남미 특유의 향기를 느끼게 해 준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는 삐사로에 의해 1535년 1월 18일에 건설된 도시이다.

페루 전체인구의 30%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급격한 이촌향도로 여러 도시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4월부터 12월까지는 한류의 영향으로 안개가 많이 끼며,1821년 4월부터 282년 동안 페루 부왕청이 존재했고 1821년 7월 28일 산마르띤에 의해 페루의 독립이 선언된 역사적인 곳이다.

리마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으로 일년에 수천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페루의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인 리마를 찾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스코(by 남미여행가 박재혁)  

 

페루의 문화유산은 독특한 게 많다. 태평양과 접한 페루의 남부 사막지대도 그 가운데 하나다.

흔히 ‘나스카의 지상화’로 불리는, 사막에 남겨진 거대한 그림은 아직까지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땅에서는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없고 비행기를 타야만이 그림의 전체를 볼 수 있는데,

추상적인 선과 동물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어 신비주의자들은 외계인이 남기고 간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나스카로 가는 길목에 피스코(Pisco)가 있다.

이곳 역시 나스카처럼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한 사막지대다.

그러나 페루에서 가장 큰 해상 국립공원이 있어 삭막함을 가셔준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엘리뇨의 따뜻한 바람과 안데스 산맥의 차가운 바람이 피스코에서 만나 천연의 어장을 형성한다. 이곳의 풍부한 어장 덕분에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한다  

 

피스코에서 자동차로 30분을 가면 파라카스 해상공원이 있다.

이곳에서 바예스타스 섬(Ballestas Islands)을 찾아간다.

피스코의 여행사 마다 각각 바예스타스 섬으로 가는 배를 마련해 놓고 있다. 배를 타고 출발하면 사막 한 가운데 자리한 지상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스카 지상화와 함께 이 지역의 상징인 칸데라브로(Candelabro)다.

중세 유럽의 대저택에서 쓰던 촛대 모양의 지상화가 사막 가운데 새겨져 있다.

나스카 지역의 지상화처럼 고대 이곳을 지배했던 나스카 문명이 남긴 흔적이라고 한다.

이 지상화는 약 30㎝ 깊이로 새겨져 있다.

 

항구를 출발해 2시간을 가면 ‘가난한 자를 위한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바예스타스 섬에 닿는다. 저렴한 돈으로 동식물의 보고라 불리는 갈라파고스 섬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어 붙여진 애칭이다.

섬에는 바다사자, 펭귄을 비롯해 페루에 서식하는 160여종의 조류가 살고 있다.

수영을 하거나 바위에 널브러져 낮잠을 자는 수천 마리의 바다사자와 펭귄 무리가 장관이다. 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큰 부리를 가진 펠리컨도 볼거리다.

파라카스 해상공원도 드센 파도가 만든 독특한 모양의 해안 절벽과 홍학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파라카스(Paracas)는 잉카어로 ‘모래폭풍’이란 뜻이다. 그 만큼 바람과 파도가 거센 곳이다.

그러나 칸데라브로 지상화는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등지고 있어 수백년이 지나서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홍학 서식지를 지나면 박물관이다. 이곳은 피스코 지역에 살았던 고대의 원주민에 관한 유물을 전시한 곳이다.

박물관 다음은 바닷가에 접한 마을 라구니야(Lagunilla)를 찾아갈 차례다.

이곳의 레스토랑에서는 해산물 요리를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값이 조금 비싼 게 흠이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해산물 볶음밥이나 해물 튀김 요리로 입맛을 살릴 수 있다.

파라카스 해상공원의 마무리는 라 카테드랄(La Catedral)이다.

해안절벽에 파도와 바람에 깎여 성당 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다.

드센 파도가 절벽에 구멍을 내어 만든 바위의 모습이 아름답다.

 

피스코에서 2시간 거리의 이카는 오아시스가 있는 도시로 잉카역사박물관이 유명하다.

이 박물관에는 사막에서 발굴한 다양한 고대 미이라를 볼 수 있다.

일년 내내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건조한 사막 덕에 옷을 입은 모습까지 고스란히 보존된 미이라의 모습은 소름을 돋게 한다.

특히 전시된 유골 가운데는 당시 고대인들이 뇌수술을 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해골도 있다.

 

[교통]

피스코까지는 리마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많다.

피스코로 향하는 버스는 리마 구시가지 몬테비데오(Jr, Montevideo) 거리의 산 마르틴(San Martin) 터미널에 몰려 있다.

이곳에서 몇 분 간격으로 피스코행 버스가 출발한다. 비용은 15∼20솔 내외, 시간은 5시간 정도 걸린다.

보통 피스코에서의 하차는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 변에 내려 주는데,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곳에는 여행자를 마을까지 실어다 주는 콜렉티보나 택시가 기다리고 있다. 값은 1솔 내외다.

이카로 가는 버스는 중앙광장과 가까운 마요(2 De Mayo) 거리의 사키(Saky) 버스터미널에 있다. 이곳에서 30분마다 버스가 이카로 출발한다. 이카로 이동하면 나스카나 아리키파, 리마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다.

바예스타스 섬과 파라카스 해상공원은 보통 투어를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오전은 바예스타스 섬, 오후는 파라카스의 해안절벽 지대를 돌아본다.

오전7시 출발해 오후 4시쯤 피스코로 돌아온다. 투어비용은 15달러 내외다.

피스코는 좀도둑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숙소]

숙소 선택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벨렌(Belen)광장 주변에 벨렌 호스텔을 비롯해 시설이 괜찮은 숙소가 몰려 있다.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산 이시드로 호스텔(Hostal San Isidro)은 수영장이 딸려 있고, 시설도 좋다.

산 프란시스코 거리의 호텔 웬디(Wendy)는 저렴한 비용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와라스(by 남미여행가 박재혁)  

 

페루의 북부 와라스(Huaraz) 일대는 안데스 산맥의 심장부다.

이곳은 해발 7000m에 육박하는 고산들이 솟아 있다. 페루 고산 트레킹의 메카로 페루 고대 문명의 발상지다.

이곳은 또 1970년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진 참사가 발생했던 곳이기도 하다.

와라스에는 페루의 최고봉 와스카란(Huaskaran·6768m)이 솟아 있다.

이 산은 고산지대의 아름다운 풍광의 정점에 서 있기도 하지만 페루 지진 참사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와라스를 찾은 여행자들은 크게 세갈래로 여행을 즐긴다.

고산지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려면 양가누코국립공원을 찾는다.

페루 고대 문명의 시원을 돌아보려면 차빈 유적을 간다.

안데스의 만년설 트레킹은 파스 투르스로 간다.

와라스에서 계곡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면 ‘안타’에 닿는다.

마리아 상이 서 있는 이곳은 안데스의 고봉을 둘러볼 수 있다. 와스카란, 코파, 우루스 그리고 유나라코 산의 만년설이 눈앞에 펼쳐진다.

양가누코는 두개의 산맥 사이로 나 있다. 오른쪽은 블랑카(하얀), 왼쪽은 네그라(검은) 산맥이라 불린다.

 

안타 다음의 마을은 카르와스다. 이 마을은 노랑꽃이 입구부터 수놓고 있다.

잉카 원주민어로 노란색은 ‘카르와’다. 이 마을의 이름은 노란꽃이 많아서 카르와스가 됐다.

카르와스에서 몇 개의 마을을 지나면 융가이(Yungay)다.

1970년 5월 31일 강도 7.8의 지진이 20여분간 계속됐다. 이 지진의 여파로 와스카란 북쪽 봉우리에 덮혀 있던 길이 2㎞, 높이 7m의 만년설이 시속 300㎞의 속도로 쏟아졌다.

이 눈사태는 불과 45초 만에 65㎞ 떨어져 있는 융가이 마을을 덮쳤다.

 ‘불의 전차’라 불리는 지진이 몰고온 눈사태로 융가이에 살던 1만8000명이 흙속에 묻혔다.

 또 와라스를 비롯해 주변 마을까지 합해 희생자는 6만7000명에 이르렀다.

당시의 참상은 종잇장처럼 우그러진 자동차와 잔해만 남은 건물에서 느낄 수 있다

 

융가이에서 계곡을 따라 40분쯤 가면 양가누코 국립공원이다. 만년설 사이에 3개의 호수가 있다. 앞쪽이 치나 코차(여자 호수)이고 뒤가 오르콘 코차(남자 호수)다.

치나 코차는 호수의 물색이 마치 파란 잉크를 풀어놓은 것처럼 빛난다.

여행자들은 보트를 타고 호수를 유람하거나 들꽃 만발한 초원을 산책한다.

차빈(Chavin)은 와라스에서 5000m의 고개를 넘어간다. 이곳 역시 고산의 풍경이 뛰어나다.

그러나 그보다는 페루의 고대 문명 발상지로 주목 받는다.

와라스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을 가면 칠흑같은 터널을 지난다. 이 터널을 빠져나오면 그림같은 고산의 풍경이 반긴다.

해발 4450m의 정상에는 하얀 동상 하나가 서 있다.

 

이곳에서 지그재그로 뻗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 차빈 마을이다. 차빈은 BC 3000년 경에 태동한 문명이다.

 BC 400년경부터 와라스 일대에서 페루의 북부와 남부의 해안지역으로 퍼져나간다.

북쪽은 치무, 모체, 찬찬문명, 남쪽은 피라카스와 나스카 문명이 된다.

익히 알려진 잉카문명은 AD 800년경에 발생했다.

차빈 유적지를 들어서면 ‘에스텔라 라이몬디’ 동상이 있다.

1873년 차빈 유적지를 처음 발견한 이탈리아의 탐험가 안토니오 레이몬디를 기리는 상이다.

그는 당신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신처럼 숭상을 받았다고 한다.

차빈 유적은 북쪽의 ‘올드 템플’과 남쪽의 ‘뉴 템플’ 등 두개의 신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뉴 템플에는 광장과 천체를 관측하는데 사용됐다는 바위, 남녀의 성기가 그려진 돌기둥이 있다. 북쪽의 올드 템플은 지름 21m의 원형 신전터가 있다.

신전 내부에는 사람이나 동물을 제물로 바치던 바위(란존)가 있다.

이 밖에도 신전의 내부에는 각기 용도가 다른 방들이 있다.

올드 템플에는 차빈을 대표하는 거대한 석인상 ‘헤드 스톤’이 있다.

템플을 수호하듯이 건물을 사각으로 두르고 있는 헤드 스톤은 모두 56개다.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이빨 등을 새겨넣어 무시무시한 모양을 하고 있다.

 

[여행정보]

해발 4890m까지 버스투어 가능 카라와스 마을에서 와라스칸 국립공원을 돌아보는 푼타 올림피카(Punta Olumpica) 투어가 9월부터 2월까지 진행된다. 해

발 4890m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이 투어는 만년설과 눈높이를 마주할 수 있다.

현지에 여행사가 많다. 우선 충분히 돌아다니며 여행사의 상품을 둘러봐야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와라스 지역은 여름에는 거의 매일 오후에 한차례씩 소나기가 온다. 4000m를 넘긴 곳은 우박이나 눈이 내리기도 한다.

방한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교통]

와라스까지는 리마나 페루 북부의 투루히요에서 쉽게 방문할 수 있다.

두 곳 모두 와라스까지는 장거리 버스로 8시간쯤 걸린다. 버스요금은 30∼40솔 내외다.

밤 버스를 이용하여 다음날 아침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어 야간에 이동하는 게 현명하다.

이곳 역시 터미널은 회사마다 따로 있어 자신이 내린 터미널을 기억해 두는 게 좋다.

 

[숙소]

숙소는 중앙광장 앞 거리와 산 마르틴(San Martin) 거리의 시장에 많다. 하룻밤에 3∼6달러쯤 한다.

 노비엠브레 거리(Jr 27 De Noviembre)의 엘 탐보(El Tambo) 숙소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고 주방도 이용할 수 있다.

하룻밤에 10달러 내외다.    

 

나스까  

 

나스카는 페루 남부의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맥 기슭사이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너무 건조해 매 2년마다 겨우 12.5mm 정도의 비가 내리며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사막지형이다. 이 나스카 평원에는 벌새, 고래, 원숭이, 거미, 개, 나무, 우주인, 펠리컨 등의 그림이 30개 이상 그리고 소용돌이, 직선, 삼각형, 사다리꼴과 같은 수많은 기묘한 곡선이나 기하학 무늬들이 200개 이상 그려져 있다.

나스카의 토양은 황색의 점토성으로 작은 돌과 화산자갈로 덮혀 있는데

공기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검은색이므로 문양은 돌을 살짝 걷어내고 깊지 않은 골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선명하게 구별된다.

 

꾸스코  

 

잉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꾸스코는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잉카를 건설한 사람들에게 꾸스코란 세계의, 그리고 그들의 우주관의 중심이기도 했으며,

꾸스코란 케추아어로 '배꼽'을 의미한다고 한다.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만큼 과거의 흔적을 더듬어 가면서 고대문명과 한때 1백만명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속의 도시를 방문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리마에서 남동쪽으로 약 1천㎞ 떨어져 있어 비행기로는 1시간, 자동차로는 2박 3일정도 소요된다.

꾸스코는 1500년대 초 스페인의 정복자들에 의해 단숨에 멸망해 이제 잉카제국의 화려함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황금에만 눈이 어두워 스페인 정복자들은 황금 유물 외에 모든 것을 없애버렸다.

화려했던 잉카의 석축문화는 식민지 건물의 축대나 주춧돌, 시 외곽의 성곽 정도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옛날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되는 잉카는 아직도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주요 종교는 로만 카톨릭으로 전체 인구의 90%이상이 믿고 있으며 소수의 인구가 프로테스탄트(개신교)를 믿는다.

스페인어(서반아어)가 주로 사용되며, 산간 지역의 원주민들은 대부분 서반아어와 께추아(Quechua)어 혹은 아이마라(Aymara:볼리비아 국경 부근)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오지에 사는 약 200만 명 정도는 스페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마추픽추]

 

깎아지른 산 봉우리에 공중도시를 건설한 데 대해 고고학계의 의견은 다양하다.

고대에 지은 신전이란 주장과 잉카인들이 스페인의 침략을 피해 지은 요새라는 주장이 그것.

마추픽추는 16세기 후반에 버려진 도시가 됐다.

잉카인들은 16세기 경 이 곳을 버리고 더 깊숙한 오지로 숨었다.

그들이 마추픽추를 버린 이유는 아직까지 물음표로 남아 있다.

마추픽추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후 400년 뒤다.

1911년 미국의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이 이 잉카의 위대한 유산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렸다.

 마추픽추의 면적은 5㎢. 절반에 해당하는 비탈면은 계단식 밭이다.

시가지가 있는 서쪽은 신전과 궁전, 주민 거주 구역이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1만명이 살 수 있는 규모다.

유적 꼭대기에 ‘인티파타나’라 불리는 제례용 석조물이 있다.

인티파타나는 ‘태양을 잇는 기둥’이라는 뜻. 이 석조물 위에 높이 1.8m, 너비 36㎝의 돌기둥이 솟아 있다. 이 돌기둥은 해 시계로 사용됐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한편으로 태양을 숭배했던 잉카인들이 의식을 치렀던 도구라는 주장도 있다.

 

잉카인들은 천체의 궤도가 바뀌면 재앙이 생긴다고 믿었고,

매년 동지 때 이 돌기둥 바로 위에 뜬 태양을 붙잡아 매려고 돌기둥에 끈을 매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마츄피추(by 남미여행가 박재혁)


 

잉카의 '잃어버린 공중 도시',

우루밤바 강 줄기가 S자 형으로 크게 구비치는 유역에서 400m 올라간 해발 2,280m에 위치하여 밀림으로 무성한 아래에서는 도저히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접근하기조차 불가능한 곳으로만 보인다.

공중에서 본 맞추피츠의 총 면적은 5㎢이며, 절반가량이 경사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적 주위는 높이 5m, 두께 1.8m의 성벽으로 견고하게 만든 요새 형식이다.

유적의 가장 오래된 부분은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설도 있으며,

적어도 잉카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다고 생각된다.

스페인 정복 후 꾸스꼬나 다른 도시는 모조리 파괴되어서 잉카의 건축양식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이 매우 곤란했다.

마추피추는 그런 잉카 시대의 잃어버린 과거가 손 닿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하이램 빙검이 '잃어 버린 도시'라고 불렀던 것에는 이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곳은 1911년 탐험가 하이램 빙엄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 졌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의 파괴에 손길이 닿지 않았던 유일한 곳으로 잉카 시대의 잃어버린 과거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잉카 최고의 유적지이다.

이 도시의 건기인 6월부터 9월까지는 세계 각국에서 하루에 천여명이 몰려들 정도로 관광하기에 적합한 시기이다. 그러나 표고가 높은 만큼 온도 차이가 극단적이다.

특히 6-8월에는 한낮의 태양은 무척 강렬하며,밤에는 갑자기 추워지는 일이 많다.

 

여행하기 적합한 시기라도 일교차가 크므로 날씨에 맞는 옷을 준비하도록 한다

 

꾸스코(by 남미여행가 박재혁)

 

페루를 말하면 ‘마추픽추’를 떠올린다.

아니 남미로 향하는 이들의 목적지는 언제나 마추픽추로 정조준되어 있다.

마추픽추는 이집트 피라미드와 함께 세계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평가받는다.

해발 2280m의 쇠뿔같은 산 위에 건설된 이 공중도시는 전설 속 잉카문명의 결정판이다.

마추픽추로 가는 길목은 쿠스코(Cuzco)다. 해발 3400m에 자리한 이 도시는 500여년간 잉카의 수도였다.

지구를 두바퀴 반이나 두를 수 있다는 잉카 트레일은 모두 쿠스코로 연결되어 있다.

잉카는 16세기 초 스페인 군대에 의해 허망하게 몰락하기 전까지 안데스 산맥의 고원지대를 지배하는 남미 최대의 왕국이었다.

 태양의 도시’라 불리는 쿠스코는 언제나 마추픽추로 가려는 여행자들로 붐빈다.

그러나 그들은 마추픽추 하나만 보고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쿠스코 주변과 마추픽추로 가는 길에는 화려했던 잉카 시절을 말해주는 유적들이 즐비하다.

 

쿠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면 삭사이와망(Sacsayhuaman)이다.

이곳은 잉카 시절의 요새다.

잉카의 마지막 왕 망코 카막이 스페인 군대에 맞서 17일간 혈투를 벌인 끝에 패한 곳이다.

삭사이와망 정상에 서면 쿠스코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삭사이와망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쌓아 놓은 360m 규모의 성곽으로 유명하다.

 큰 것은 무게가 300톤이나 나갈 만큼 거대하다.

이 바위들은 모서리가 지그재그로 꺾이면서 아귀가 맞아들어간다.

석재의 각 면은 마치 칼로 잘라놓은 것처럼 매끄럽다. 삭사이와망은 잉카인들이 숭상하는 퓨마의 머리에 해당한다.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해마다 6월에 태양제(인티라이미)를 연다.

 

삭사이와망에서 우르밤바강을 향해 내려가면 켄코·푸카푸카라·탐보 마차이 유적이 차례로 나온다.

켄코는 석빙고와 비슷한 지하 창고와 병풍처럼 늘어선 거석이 인상적이다.

특히 거석 앞의 비석돌은 춘분과 추분에는 그림자가 거석에 비치는데, 마치 앉아있는 퓨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켄코에서 10분을 가면 넓은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푸카푸카라다.

이곳은 잉카의 군대가 적의 동태를 관찰하던 전망대다.

켄코 다음은 탐보 마차이. 잉카의 왕이 목욕과 휴식을 즐겼던 곳이다.

이곳은 큰 가뭄이 찾아와도 물이 줄지 않는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이곳의 물로 손과 얼굴을 세번 씻고 한 번 마시면 장수한다고 믿고 있다.

 

우름밤바강을 건너면 원주민 재래시장 피삭마을이다. 이곳에서 강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우르밤바 마을이다.

마추픽추로 가는 길에 있는 마을 가운데 가장 크다.

우루밤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살리나스(Salinas)와 모라이(Moray)다.

살리나스는 잉카시절부터 내려오는 염전이다.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헝겁을 기워 놓은 것처럼 조각조각난 염전이 자리한다.

바다까지 소금을 구하러 갈 수 없었던 잉카왕국 시절에는 이곳에서 소금을 구했다.

지금도 소금을 채취하고 있으며, 쿠스코나 인근의 마을에서 먹는 음식에는 이곳에서 나는 소금이 사용된다

 

모라이는 잉카시절 농작물을 연구하던 곳이라 전해진다.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을 보는 것처럼 계단식으로 꾸며 놓은 원형의 종묘지가 인상적이다.

모라이에서 우루밤바로 돌아와 강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오얀타이 탐보다.

 

이곳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두 가지. 기차를 타거나 아니면 잉카 트레일을 따라 걷는 것이다. 건각들은 잉카시절의 영화를 떠올리며 오얀타이 탐보에서 이틀을 걸어 마추픽추까지 간다.

 

스페인어로 ‘뜨거운 물’이란 뜻을 가진 마을 아구아 칼리엔테(Agua Caliente).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을 올라가면 공중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모든 여행자들은 단발마의 신음을 토한다.

잉카 전설의 도시 마추픽추의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이다.  

 

[여행쪽지]

꾸스코 마추픽추로 가는 출발점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위치했다.

쿠스코에 도착한 대부분의 여행자는 고소증을 겪는다.

현지인들이 즐겨 마시는 코카 차를 따라 마시는 것도 고소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가급적 천천히 움직이는 게 좋다.

 

[교통]

쿠스코에서 이동할 때는 택시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고 저렴하다.

시내 기본 거리는 2.5∼4솔이면 충분하다. 쿠스코 주변 마을을 갈 때도 택시가 유리하다.

삭사이와망·켄코·푸카푸카라·탐보 마차이는 30솔(약 10달러)이면 가능하다. 3∼4명이 짝을 이루면 몇 푼 되지 않는다.

마추픽추로 가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쿠스코에서 오얀타이 탐보까지 버스 또는 택시를 이용하고, 오얀타이 탐보에서 아구아 칼리엔테까지 기차로 가는 것이다.

오얀타이 탐보까지 가는 길에 많은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다.

성수기에는 기차표 예약을 빨리 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숙소] 

쿠스코는 중앙광장 주변에 숙소를 잡는 게 좋다.

대성당 오른쪽 산타 카타리나 박물관이 있는 골목에 저렴한 숙소가 많다.

산 아구스틴 골목에는 중급 이상의 고급 호텔이 많다.

고산병을 겪는다면 좀 더 편안한 숙소를 잡는 게 이롭다.  

 

 

푸노  

 

푸노는 쿠스코, 아레키파와 볼리비아의 라파스를 연결하는 통과점이기도 하고,

티티카카 호수에 떠 있는 '갈대 섬'으로 가는 베이스캠프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티티카카 호수는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으로 나누어져 반은 페루, 나머지 반은 볼리비아 영토에 속한다.

티티카카 호수 변의 도시로는 페루 쪽으로 Puno, 볼리비아 쪽으로는 Copacabana 가 있다.

푸노는 페루의 남부,안데스산맥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는 곳으로 평범한 도시이지만

고원의 호반에 인접해 있는 풍경 자체가 색다른 아름다움을 준다.

해발 3,850m에 위치하고 있는 호수이면서도 호수의 건너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어 바다 같이 보인다.

호수의 최대 길이와 최대 폭이 각각 190km,64km에 이른다.

특히 이른 아침의 햇살을 받으며 짙푸른 호반 위로 출어하는 돛단배들의 모습을 보면 조그만 어촌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잉카의 창시자인 망코 카파크가 강림한 곳이라는 전설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잉카 제국 시대의 푸노는 천신이 강림한 땅으로써 상당히 신성시되고, 중요시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쿠스코와 같이 스페인의 점령 이 후에 모든 것을 잃은 도시이다.

원주민족들은 도시에서 쫓겨나 어떤 사람은 산 속으로,

어떤 사람들은 호수 위의 갈대 섬으로 이주하여 자신들의 마을을 멀리에서 바라보면서 대를 거듭해 왔다.

물론 그들은 다시 마을로 되돌아왔으며 지금의 푸노는 인디오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

오직 이곳이 푸노임을 알게 해 주는 것은 이곳의 원주민족인 인디오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토속적인 색체가 짙게 남아 있고, 특히 축제 때는 옛날부터 전해내려 오는 푸노의 독특한 춤을 볼 수 있다.

 

티티카카 호수는 잉카의 창시자 망코 카파쿠 황제가 그의 여동생 마마 오크료와 함께 호수의 태양의 섬에 강림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잉카 족에게는 성스러운 호수이며 인근에는 잉카 이전 시대의 티와나코 고대 유적을 비롯 많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해발 3,890m에 위치하고 면적은 8,300km2,평균 수심은 280m이며 안데스 산맥의 눈 녹은 물이 20군데 이상에서 흘러들어 수량이 항상 풍부하다.

호수 물은 Desauadero강을 통해 볼리비아로 흐른다.

전체적으로 페루는 세계 굴지의 광업국으로 광물 수출이 전 수출액의 19%를 차지하여 외화고의 근원이다.

농림, 수산 등의 1차 산업 종사자가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34%를 차지해 후진성을 보이고 있지만 상업 및 서비스 부문이 53%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37%가 종사하고 있는 농업에서의 주요 작물은 밀,감자,콩,쌀,보리,커피,목화,사탕나무 등이 있고, 목화와 설탕은 대량 수출하고 있다.

어업 또한 페루 경제를 버티고 있는 중요한 산업으로 어획량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양으로 상당히 많다.

또, 국민의 21% 정도가 광공업에 종사하고 있고, 세계 굴지의 은과 동의 생산국이며, 그 밖에 중요한 광공업에 있어서는 철광석, 납, 석유, 직물, 의류, 식품 가공, 자동차 조립, 시멘트 등이 유명하다.  

이 도시는 10-4월 사이가 우기이고, 이 시기에는 길이 침수되는 날이 많아 여행하기 불편하며, 건기인 6월부터 9월까지가 여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이다.

비가 자주 내리지도 않을뿐더러 우리나라 가을처럼 쾌청한 날씨가 많아 역사의 유물·유적을 돌아보기에는 아주 적합하다    

 

티티가가호(by 남미여행가 박재혁)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이 만나는 안데스 산맥에 자리한 티티카카호.

해발 3810m의 고원에 자리한 이 호수는 고지대의 호수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크다.

잉카인들은 왕이 하늘에서 이 호수로 강림했다고 믿고 있다.

또 고고학자들은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발상지로 추정하고 있다.

티티카카호는 인디오들이 갈대로 만든 섬에서 생활하는 독특한 풍물로 인해 세계적인 배낭여행지가 됐다.

도시 푸노(Puno)는 수천년 전부터 인디오들이 장을 보던 마을이다.

지금도 재래시장이 마을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티티카카호에 흩어져 사는 인디오들은 이곳에서 생필품을 구해서 집으로 돌아간다.

푸노는 배낭족들에게도 훌륭한 쉼터다.

대부분의 배낭족은 해발 4000m에 육박하는 푸노에 처음 발을 디디면 고소증에 힘겨워한다.

이들은 이 마을에서 쉬면서 잉카 전설의 무대 티티카카호를 돌아볼 힘을 얻는다.

페루의 별미 세비체를 사먹고, 중앙거리에 밀집한 인터넷 카페에서 안부를 전한다.

‘골초 여행자’에게는 1솔(약 300원) 밖에 하지 않는, 상표도 없는 값싼 담배를 구하는 재미도 있다.

 

푸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우아사파타(Huajsapata)언덕이다.

고고학박물관에서 몇 걸음만 보태면 되는 이 언덕에 올라서면 푸노 전경이 한눈에 든다.

해질 무렵 이곳에서 티티카카호를 바라보는 일은 운치가 있다. 단, 혼자는 금물이다.

외진 곳을 갈 때는 언제나 주의를 해야 한다.  

 

타킬레섬

 

푸노에서 배로 2시간을 가면 커다란 섬이 나온다. 타킬레 섬(Isla deTaquile)이다.

관광객의 발길이 적은 이 평화로운 섬은 지금도 전기와 바퀴 등 현대식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타킬레 섬은 산 전체가 계단식 밭으로 덮였다.

이 섬에는 두 부족이 살고 있다. 농사도 공동으로 짓는데, 산 정상에 돌무더기로 벽을 쌓아 서로의 땅을 구별한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1년씩 농사를 짓고, 3년째에는 휴농을 한다.

타킬레 섬의 남자들은 한결같이 모자를 쓰고 있다. 빨간색 모자는 기혼,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가 함께 들어 있는 모자는 총각을 상징한다.

이 섬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뜨개질을 한다. 농사를 짓다가도 시간이 남으면 삼삼오오 둘러 앉아서 뜨개질을 한다.

잉카의 유적은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고대 잉카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바위를 자른다. 바위에 쐐기를 박은 후 물을 부어 바위를 절단한다.

계단식 논밭의 모양새도 쿠스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타킬레 섬의 산 정상에 서면 볼리비아의 설산이 펼쳐진다.

설산은 티티카카호의 검푸른 물빛에도 떠 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이 외진 인디오의 섬에서 하루를 쉬어가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교통]

쿠스코에서 푸노까지는 버스로 6시간 정도 걸린다.

대부분 원주민이 이용하는 버스라 가격은 저렴하지만 시설은 형편없다. 가격은 15솔 정도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푸노 전에 있는, 잉카의 고대 무덤이 있는 시유스타니를 먼저 방문하는 것도 좋다.

시유스타니에서 푸노까지는 콜렉티보 택시를 이용한다.

푸노의 선착장에서는 우로스로 가는 투어가 매일 있다. 한 배에 보통 25명 정도가 승선한다.

우로스에서 1박을 해도 된다.

푸노에서 볼리비아 국경까지는 버스로 2시간 거리다. 택시를 타고 국경을 넘을 경우 100솔쯤 한다.

버스를 이용하면 융구이 마을까지 가서 오토바이택시로 갈아 타고 국경까지 간다.

볼리비아 라파즈로 바로 들어가려면 푸노에서 판 아메리카노(Pan Americano)나 콜렉투르(Collectur) 회사의 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7시에 숙소 앞까지 데리러 온다. 가격은 30솔 내외.

 

[숙소]

푸노는 아침 저녁으로 매우 쌀쌀하다.

숙소를 잡을 때는 온수가 나오는지 꼭 체크한 후 결정하는 게 좋다.

숙소는 중앙광장과 피노광장 주변이 편리하다. 망코 카팍은 보일러식 샤워 시설을 갖추고 있어 겨울에도 뜨거운 물을 마음컷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은 1인 20솔 내외다.  

 

칠레  

 

산페드로  

 

페루 볼리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칠레의 북쪽 끝 아타카마는 지구상에 가장 건조한 사막 가운데 한 곳이다.

영국 BBC뉴스에 따르면 이 지역은 2000만년 동안 연간 강수량이 수십㎜도 되지 않는 초건조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심한 곳은 4000만년 동안 거의 비가 내리지 않은 곳도 있다.

이처럼 오랜 세월 가뭄에 시달리면서 아타카마사막은 독특한 풍광을 간직하게 됐다.

 

아타카마 사막 한 가운데에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이하 산 페드로)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이 건조한 사막에서 오아시스 구실을 하는 마을이다.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에 있는 이 마을은 여행자들이 우유니 사막투어를 마치고 칠레로 입국하는 경로이다.

한낮은 지글지글 끓고, 밤이면 점퍼를 껴입을 만큼 일교차가 심한 이 곳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있다.

타티오 간헐천과 ‘달의 계곡’이라 불리는 황량한 사막지대가 그것이다.

타티오 간헐천(Geiser del tatio)은 이곳이 지금도 활발하게 화산활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곳이다.

마을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2시간을 가야 하는 이곳은 수중기가 분출하는 간헐천을 볼 수 있다. 간헐천은 지하에서 활동하는 화산지대로 스며 든 물이 달구어져 지상으로 솟구치는 것을 말한다.

 

타티오 간헐천을 보러가는 투어는 대부분 이른 새벽, 오전 4시 전후에 시작된다.

그것은 기온에 따라 물줄기의 분출량이 달라지기 때문.

기온이 최저로 떨어진 이른 새벽에 온천수가 가장 높게 솟구친다.

또 살갖을 태울 듯이 강렬한 한낮의 더위도 고려해서 투어 일정을 새벽으로 잡았다.

타티오 간헐천 지대에 도착하면 연기가 자욱하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보랏빛 여명이 물든 하늘 위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간헐천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그저 연기만 내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석회석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곳도 있다.

또 뜨거운 물이 고여 있는 곳도 있다. 이런 곳에서는 우유팩을 데우거나 계란을 삶아 먹기도 한다.

또 야외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며 추위를 달래기도 한다.

타티오 간헐천 투어는 오전에 끝이 난다.

 

돌아오는 길에 마추카 마을과 작은 협곡, 야마 서식지를 돌아본다.

마추카 마을에 사는 사람은 모두 합해 10명도 되지 않는다.

이 마을은 흙벽돌로 지은 허름한 집과 교회가 인상적이다. 이곳에서는 ‘티토’라 불리는 야마 꼬치구이를 맛볼 수 있다.

오후로 들어서면 그늘이 있는 중앙광장을 제외하고 산 페드로의 거리는 인적이 끊긴다.

살인적인 더위 때문이다. 현지인도 여행자도 모두 실내에서 휴식을 취하며 더위를 피한다.

 

저녁이 가까워지면 여행자들은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을 찾아 나선다.

2000만년 동안 초건조 상태를 유지한 사막이 만든 황량한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다.

‘달의 계곡’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이곳의 풍경이 달의 표면과 흡사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이곳에는 능선과 계곡이 있지만 생명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계곡에 도착하면 우선 전망대에 서서 계곡을 내려다본다.

이어 전망대에서 협곡 속으로 걸어 내려간다.

특이한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들은 이 가파른 협곡에서 샌드보드를 즐긴다. 모래가 덮인 가파른 비탈에서 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짜리한 경험을 한다.

협곡 안에서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모양의 모래 덩어리가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만들어진 형상이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면 모래 덩어리들은 수 만년, 혹은 수 천만년을 그런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다.

 

협곡을 내려서서 모래언덕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렌지빛으로 물든 석양이 서편으로 기울 때는 이 황량한 사막도 함께 붉게 불탄다.

 

산 페드로는 밤이 되면 활기가 느껴진다.

한낮의 더위에 숨죽여 있던 현지인들과 투어를 마치고 온 여행자들이 몰려나오기 때문.

카페와 레스토랑마다 여행자들이 들어앉아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운다.

사막 한 가운데 철저하게 고립된 것 같던 마을이 오아시스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교통]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볼리비아를 오가는 관문이지만 교통편은 여의치가 않다.

그것은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지대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볼리비아에서 페루로 들어오는 여행자나, 혹은 그 반대 방면으로 가려는 여행자는 이곳에서 최소 2일은 머물러야 된다.

볼리비아에서 우유니 투어를 마치고 왔다면 하루는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며 교통편을 알아보고 투어를 예약한다.

다음날 타티오 간헐천 투어와 ‘달의 계곡’ 트레킹을 한 후

삼일째 되는 날 이곳을 등지면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교통편이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다.

산 페드로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2시간 거리의 칼라마다. 산티아고로 가려면 칼라마에서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성수기의 경우 볼리비아에서 넘어오는 관광객이 많아 칼리마로 가는 버스편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경우는 차표를 구하지 못해 산 페드로에 며칠씩 체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산 페드로에 도착하자마자 교통편부터 알아보는 게 좋다.

장거리를 운행하는 버스는 ‘Tru Bus’와 ‘Fullman Bus’가 가장 좋다.

 

[숙소]

산 페드로의 게스트하우스는 저렴하지 않다.

광장 주변에 그나마 저렴한 숙소가 있지만 시설이 형편없다.

대표적인 게스트 하우스인 플로리다 호스탈의 경우 1인 5000페소(약 1만원) 정도 한다.

중앙광장에서 두 블럭쯤 떨어진 곳은 드라이브 인(Drive Inn) 숙소들이 있다.

이곳은 1만페소 정도 하며 방갈로 형식의 숙소에 주차장이 딸려 있다.    

 

산티아고  

 

아름다운 안데스 산맥을 볼 수 있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북쪽은 아타카마 해안사막이 펼쳐져 있고, 육로로 나오면 산티아고까지는 사막을 넘지 않으면 안된다.

남쪽으로는 빙하가 대지를 덮고 있으며, 칠레 남부 파타고니아를 지나는 적당한 길이 없다.

동쪽으로는 남,북아메리카의 대륙에 최고봉인 아콩카과를 비롯하여 안데스 산맥의 고봉이 눈앞에 솟아 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태평양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어느 곳을 이용해 가더라도 산티아고에 도착하려면 가혹한 자연을 넘어야 한다.

표고 520m에 위치한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로 일년 내내 온난하며,

분지에 발달한 도시라서 안개가 많고 일교차가 크다.

 

산티아고는 황금을 찾아 남미로 온 스페인의 침략자 페드로 데 발디비아에 의해 1541년에 시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원주민인 아라우카노Araucano족은 스페인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다.

당시 스페인의 요새였던 곳은 현재 산타루시아의 언덕 Cerro Santa Lusia 공원이다.

스페인에서 파견된 발디비아 장군이 1541년에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식민 도시를 건설했다.

1810년에는 독립운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했고,1817년 아르헨티나의 산 마르틴의 원조를 얻어 1818년에 독립을 선언했다.

1879년-1884년에는 아타카마사막의 초석산지의 영유를 둘러싸고 페루,볼리비아와 싸움에서 이겨서 광물자원을 기반으로한 번영의 기초를 세웠다.

 

[여행정보]

일반 서민층의 자녀들은 5세에서 17세까지의 의무교육기간 동안 공립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교육여건은 매우 뒤 떨어져 있어서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은 높은 기부금을 내고 사립학교로 보낸다. 공립,사립학교 학생들은 모두 교복을 착용한다.

사립학교 학생들은 거의 대학에 진학하며,전공에 따라 학기의 차이가 있고,재학중 전공관련 업체에서 일정기간 실습을 받게 되어있다.

주요 산업은 제조업, 광업, 상업, 어업, 수산업이고, 동, 철광석, 초석, 산림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무역규모는 수출 89.29억 달러,수입 73.54억 달러정도이다칠레 농업부문 발전의 주요 정책은 개인 토지에 대한 소유권 인정, 낮은 관세, 직접세, 뚜렷한 외국인 투자 정책, 무차별 투자 및 대출 정책 등이다.

칠레가 산업 육성 정책을 수입 대체 정책에서 수출 지구 정책으로 전환함에 따라 칠레의 농업정책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칠레는 자국 농산물로 국내 수요를 충분히 충당한다. 그리고 수출 지향 정책으로 단지 국내 수요를 위한 생산에서 과일 ,채소, 땅콩 등을 중심으로 해외 수출을 목표로 한 농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농업 전략은 관개 기술의 확충, 종자 개량 및 농산물 제조 과정의 선진화 등을 통해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

칠레는 세계 최대 동 생산국이자 수출국 로서 1990년 서방세계 동 생산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 칠레는 몰리브덴, 레늄, 리튬 및 요딘 생산에서 세계 제 2위였으며 보론에서는 제 5위, 셀레늄의 경우 7위, 은은 제6위, 금은 제 10위권을 차지하였다. 게다가 칠레는 세계 동 매장량의 24.1%를 점유하고 있으며 셀레늄은 21%,몰리브덴의 경우는 0.5%,레늄은 40%,리튬은 10.9%,요딘의 경우는 23%,보론의 경우는 4%의 매장량을 보이고 있다. 칠레는 세계 최대 동 생산국으로 1982년 최초로 미국의 동생산량을 앞지른 이래 줄곧 세계 제 1위 동생산국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동 정제품 생산에서 칠레는 전세계 동정제품의 14.1%를 생산하여 미국에 이어 2위 생산국이다. 현재 칠레는 금 매장과 생산에서 세계 10위이나 향후 계속적으로 금생산량의 의 확대 계획을 갖고 있어 세계 제 9위의 금 생산국이 될 전망이다. 금 생산 현황을 보면 1993년 33,542㎏의 금을 생산하여 1987년의 금 생산은 17,034㎏보다 50%의 증가를 보이고 있다.

칠레는 세계 제 2위의 몰리브덴 및 레늄 생산국이며 CODELCO사 칠레 유일의 몰리브덴 정광 생산 회사이다.

 

산티아고(by 남미여행가 박재혁)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1541년 스페인 페드로 데 발디비아가 산타루시아산에 건설한 이 도시는 태평양과 접한 남미에서는 가장 큰 도시다.

지구상에서 남북으로 가장 긴 나라(4270㎞)의 복판에 자리한 이 도시는 칠레의 영광과 오욕이 함께한다.

산티아고는 1971년 노벨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에게 문학의 영감을 안겨준 도시이자 칠레 최초의 민선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피노체트의 쿠테타에 의해 쓰러진 도시다.

꽤 오래 전 개봉돼 영화팬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1973년 칠레의 쿠테타를 소재로 한, 칠레 현대사의 비극을 담고 있다.

칠레를 사랑했던 그들은 모두 떠났다.

파블로 네루다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천사를 따라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17년간 독재를 일삼던 피노체트는 감옥에 갇혀 심판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남아 있다.

오늘도 하루 해가 저물 때면 이 ‘지상의 낙원’이 황금빛 노을 속에 빛난다.

산티아고는 600만명이 사는 거대도시다.

 

겨울의 우기를 제외하면 기후는 고온 건조한 편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초기에는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들어섰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마포초강이 흘러간다.

시내 중심가는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건물로 가득하다.

그 중에는 산 프란시스코성당, 우체국, 중앙성당, 국립역사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산티아고를 대표하는 건물 가운데 중앙시장이 있다.

이 건물은 영국에서 설계해서 자재를 배로 옮겨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중앙시장은 지금 태평양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수산시장과 식당이 들어섰다.

이 밖에도 파리스(Paris)나 론드레스(Londres) 거리에도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을 볼 수 있다.

 

또 살바도로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가 지휘하는 쿠테타군에 홀로 맞서 싸웠던 대통령궁 모네다 궁전은 현재 시간제로 개방하고 있다.

산티아고 북쪽에는 산 크리스토발산이 있다. 이 산 정상에는 거대한 규모의 마리아상이 있다.

이곳은 밤에는 불을 환하게 켜놔 멀리서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마리아상은 산티아고의 상징이다.

 

산티아고에서 서쪽으로 120㎞ 가면 칠레 제1의 무역항 발파라이소(Valparaiso)다.

발파라이소에 대한 칠레인들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모든 칠레인들이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어 하는 곳’, ‘칠레의 몽마르뜨’라는 찬사가 있는 반면 ‘칠레에서 AIDS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 ‘밤에 혼자 다녀서는 절대 안 되는 강도가 득시글 대는 곳’이라고 혹평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1536년에 건설된 이 도시에는 스페인풍의 아름다운 건물과 공원이 가득하다.

 

발파라이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육상 케이블카다.

이곳의 집들은 하나같이 바닷가에서 산으로 이어진 가파른 비탈에 지어졌다.

경사가 45도에 이르는 곳도 있다.

해안가의 상가와 관공서에서 주거지를 오르내리기 위해 육상 케이블카를 놓은 것이다.

육상 케이블카는 지금도 일부가 이용되고 있는데, 200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발파라이소와 잇닿아 있는 비냐 델 마르(Vina del Mar)는 칠레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 가운데 하나다.

이곳은 아름다운 공원이 몰려 있어 ‘정원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발파라이소가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도시라면 비냐 델 마르는 칠레의 부호들을 위한 공간이다. 쇼핑몰과 호화로운 주택, 고급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다. 비냐 델 마르의 이름난 해변은 레나카, 코초아, 콘콘 등을 꼽을 수 있다.

콘콘은 노랑 및 검은 모래가 해변에 가득해 이색적인 볼거리를 선사한다.

산티아고는 여름철은 고온건조하고 겨울에는 저온다습한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여름철에는 섭씨 32도 이상 올라가며 비가 전혀 오지 않는다.

반면 겨울(4∼9월)은 기온이 0도까지 내려가며 비가 잦다. 특히 산티아고는 300일 이상 맑은 날이 계속되는 탓에 주변의 안데스산맥은 나무와 풀들이 드문드문 자란 황량한 모습을 하고 있다.

 

[교통]

산티아고 시내에는 세 가지의 대중교통편이 있다.

노랑색으로 칠해진 시내버스는 정기 노선을 순환한다.

 전철(Metro)은 세 가지의 노선이 있으며 비용도 저렴하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어 편리하다.

택시는 기동력이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다.

아침에 일찍 이동하거나 짐이 많을 경우 좋다.

미터기가 달려 있지만 항상 흥정을 하고 타는 게 바가지를 쓰지 않는 방법이다.

중앙광장에서 공항까지는 5000페소(약 7500원) 정도 한다.

칠레는 남북으로 긴 나라다.

장거리 여행을 할 경우에는 비행기와 버스,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아주 먼 곳이 아니라면 버스가 편리하고 안전하며 경제적이다.

기차도 편리하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편수가 자주 있지 않고 노선이 많지 않다.

풀만(pullman) 투르버스(Turbus)가 대표적인 장거리 버스다.

 

[숙식]

발파라이소와 비냐 데 마르는 해안가와 접한 도시다.

따라서 태평양에서 잡은 싱싱하고 다양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물론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산티아고의 중앙시장에서도 저렴하게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산티아고에는 다양한 종류의 유스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도미토리의 경우 10∼15달러, 개인 룸의 경우 20∼25달러 내외다. 페루의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다  

 

볼리비아  

 

라파스(by 남미여행가 박재혁)  

 

볼리비아의 공식적인 수도는 입법부가 있는 수크레다.

그러나 라파즈(La Paz)를 수도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다.

대통령궁을 비롯해 정부 청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라파즈는 스페인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라파즈는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 해발 3650m에 있다.

 

신대륙의 황금을 찾아나선 스페인 군대에 의해 1548년 건설됐다. 그러나 라파즈의 ‘황금광 시대’는 길지 않았다.

대신 포토시에서 세계 최대의 은광이 발견되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은의 집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라파즈의 모든 길은 산 프란시스코 광장으로 통한다.

라파즈의 중요한 거리는 이 광장을 중심으로 퍼져 있다. ‘라파즈에서 길을 모르면 무조건 산 프란스시코 광장으로 가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산 프란시스코 광장에는 16세기에 지어진 성당이 있다.

유럽풍의 조각과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당 내부가 볼만하다.

 

성당 왼쪽으로 돌아가면 ‘마녀시장’ 입구다. 이 길을 따라 가면 토산품 가게가 몰려 있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에 토산품을 살 수 있다.

‘마녀시장’은 또 박제로 만든 야마를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박제된 야마는 현지 원주민들이 제례를 지낼 때 사용된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신에게 제물을 바칠 때 야마를 사용했다.

 

성당에서 오른쪽 산타 크루스 거리는 먹자골목이다.

생과일 주스를 파는 노점상과 꽃을 파는 상점이 몰려 있다.

또 이곳에는 송어 닭 소 돼지 등을 이용해 만든 저렴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산 프란시스코 광장 주변에는 다양한 박물관도 포진해 있다.

심포냐를 비롯한 잉카의 전통 악기를 전시한 악기박물관, 황금박물관, 페루 독립투사 페드로 도밍고 뮤릴요 생가에 만든 뮤릴요박물관, 볼리비아의 역사를 알 수 있게 꾸민 리토랄박물관 등이 있다.

특히 대통령 궁이 있는 뮤릴요 광장은 근위병과 함께 사진을 찍는 즐거움이 있다.

저녁에는 볼리비아의 전통 음악 ‘피냐’를 감상할 수 있다.

차랑고와 심포냐, 칸투스, 완카라 등 잉카 전통 악기로 구성된 밴드가 들려주는 구슬픈 멜로디는 옛 거리 풍경과 어울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라파즈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티와나코(Tiahuanaco)는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문명지다.

알티 플라노 고원에 자리한 이 유적지는 잉카 이전에도 남미에 뛰어난 문명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누가, 언제 이 도시를 건설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티와나코 문명은 서기 2세기에 등장해 9세기에 멸망했다는 것이 고고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인류 문명이 태동하기 이전에 ‘초고대문명’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1904년부터 50년 간 티와나코에서 발굴작업을 벌였던 폴란드 태생의 고고학자 포즈난스키는 1만7000년 전에 이 문명이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신의 지문을 찾아서’의 저자 그레이엄 헨콕도 그의 책에서 기원 전 6000년 경 ‘바라코차’라 불리는 성인이 이곳을 찾아와 원주민들에게 문명을 전했다고 주장한다.

바라코차 전설은 이곳 티와나코 뿐만 아니라 페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티와나코에는 ‘반 지하의 신전’과 석인상, ‘태양의 문’, 피라미드 등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제주도의 돌하루방을 닮은 ‘폰세’란 이름의 석인상과 ‘태양의 문’이다.

거석을 다듬어 만든 태양의 문은 높이 3m, 폭 3.75m다. 상단에는 바라코차가 새겨져 있으며 좌우에는 48개의 동물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태양의 문과 중앙 신전의 석인상 사이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석벽이 있다.

이곳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하면 소리가 증폭되어 광장에 퍼진다. 반대로 광장에서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도 이 구멍에 귀를 기울이면 선명하게 들린다.

이 신기한 소리 체험은 티와나코가 고도로 발달한 문명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교통]

라파즈는 해발 3650m의 고원에 있다.

여행자들은 고지대에 위치한 우유니 소금사막이나 티티카카호를 거쳐 라파즈로 들어오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라파즈에 닿기 전에 대부분 고소적응이 된다.

그래도 고산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버스 터미널은 몬테스 거리(Av, Montes)에 있다.

이곳에서 수크레, 우유니 등 볼리비아 각 지역과 칠레 이키케 등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라파즈에서 티와나코까지는 74㎞ 거리. 버스터미널은 공동묘지(Cementerio General) 입구에 있다.

터미널은 산 정상부에 있어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 유리하다.

라파즈에는 라디오, 일반, 투루피 등 3종류의 택시가 있다.

라디오 택시는 기본요금 6볼리비아노부터 시작한다. 시내의 중요 관광지는 7볼리비아노면 충분하다.

 투루피는 버스처럼 정해진 구간을 운행하며 합승이 일반적이다.

기본요금이 표시된 지역까지는 3볼리비아노로 갈 수 있다. [숙식] 숙소는 산 프란시스코광장의 산타 크루스 거리에 몰려 있다.

 4∼5달러면 여행자들이 즐겨찾는 게스트하우스를 구할 수 있다.

카투스(Catus)나 라스 브루하스(Las Brujas)가 배낭족들에게 인기 있다.

편안한 휴식을 원한다면 마헤스틱(Majestic) 호텔을 권할만 하다. 1인 9달러.

산타크루즈와 만나는 얌푸(Calle Illampu) 거리에도 숙소가 많다.

이 중 1인 5달러면 묵을 수 있는 콘티넨탈이 저렴하고 깨끗하다.

 

포토시(Potosi)와 유나코차(Yanacocha) 거리 교차로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Unicentro)이 있다. 값이 비싸지만 한국음식이 생각날 때 라면이나 김, 참치 통조림 등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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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3632m) 곳에 위치한 수도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병풍속의 고층빌딩들이 들어차 있다.

뒤에는 늘 힌눈에 싸인 일리마니(lllimani)산(6480m)가 있다.

식민지때는 포토시에서 나오는 은을 페루로 옮겨가기위한 중계지로서 번창했고,

1900년 이후는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인구는 약 100만으로 그중에 50%가 인디헤나 이므로 시내 곳곳에서 중산모의 민속의상 차림새를 볼 수 있다.  

 

교통

마이크로 버스(MICRO )

마이크로는 본넷 타입의 버스를 말한다.

버스 정류장이 특별히 정해져 잇지 않고 정류장 표시도 없지만 사람이 기다리는 곳은 대개 버스정류장이고 버스 앞유리창에 목적지가 표시되어 있다. 

 

미니버스버스(MINU BUS)

마이크로 버스보다 빠르고 편리한데 소년이 어디어디를 경유하는지 외치거나 앞유리창에 목적지가 표시되어 있다. 

콜렉티보(CORECTIVO)마이크로보다 큰 보스를 발하는데 혼잡하고 늦다.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콜렉티브 보다는 마이크로를 이용하는 편이 좋을것이다.

 

택시

라파스에는 4종류의 택시가 있다. 일반택시, 자가용차를 택시로 이용하는 백택시, 볼리비아에서도 라파스에만 있으며 노선을 정해놓고 운행하는 트루피 택시(TRUFI)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디오택시가 있는데 전화로 예약할수 있고 차체에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것이 특징이다.

 

관광

 

성프란시스코 사원(BASILICA DE SAN FRANCISCO)

라파스 시내의 중심에 있다. 정면의 아름다운 조각과, 탑이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있다.

1549년 스페인 식민지가 시작되면서 세워졌다. 교회안의 금제단이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누구나 들어갈수 있고, 교회앞은 성 프란시스코 광장으로, 퍼포먼스나 각종 이벤트 등이 열려 사람들이 항상 많이 몰려든다.

 

뮤릴로 광장 (PLAZA MURILLIO)

뮤릴료 광장 중심에는 독립전쟁에소 활약한 뮤릴료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대통령 관저(PALACIO DE GOBIERNO)와 카테드랄(CATEDRAL). 국회의사당 (PALACIO DE GOBIERNO)가 들어 서 있다. 국립예술박물관(MUSEO DE NACIONAL DE ARTE)뮤릴료 광장에서 카테드랄을 향하여 오른쪽편에 있다. 1775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로크 양식이고 1964년에 박물관으로 되었다. 

 

달의 골짜기(Valle de la Luna)

라파스시에서 남동쪽 15km지점에 메마르고 불그스름한 토지에 불룩 불룩한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다.

식물도 없는 그 풍경은 달의 표면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달의 골짜기로 이름붙여졌다.

라파스에서 자동차로 20-3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호

텔  엘 프레도 거리 주변에 중고급 호텔이 있고, 사가르나거 거리에서 철도역으로, 뮤릴료광장 주변에 싼 여관이 많다.

가격이나 입지조건 등 선택기준은 다양하지만, 라파스에서는 지리도 생각해야만 한다.

고지이므로 밤은 상당히 차다. 난방은 있지만 창은 완전히 닫을수 있다든지, 모포 상태가 좋다든지 등이 호텔 선택의 중요한 선택이 포인트가 된다.

고층호텔은 라파스 시내를 내려다 볼수 있어서 좋다.

Tel.356950 주소 : HOTEL LA PAZ (EX SHERATON)볼리비아 국영(이전은 쉐라톤계)고급 호텔 Tel.378300-11 주소 : HOTEL PLAZA 프래드거리에 있는 고급호텔

Tel.366580주소 : HOTEL PRESIDENTE 성프란시스코 사원

 

가까운 곳 최신 호텔  음식  라파스에 격식있는 고급 레스토랑은 없지만 아르헨티나 구운고기요리,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중화, 한식, 일식 등 다양한 요리가 있다.

생선요리는 볼리비아가 내륙국인 관계로 민물고기이다.

매스, 패패레이 이외에 신선한 것은 그다지 기대할수 없다.

또 라파스에서는 3.700m 고지대이므로 비등점이 낮으므로, 면류(특히 이탈리아 요리인 스파게티) 는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Tel. 322708 EL ARRIERO / 아르헨티나 구운고기

Tel. 324546 HERADORA / 아르헨티나 구운고기

Tel. 324667 LACOSTE / 프랑스풍 요리

Tel. 326586 MOCAMBO / 스페인풍 요리  

 

쇼핑

라파스의 스웨터나 민예품점라파스의 성 프란시스코 사원의 건물안 사가르나거 거리는 따라서 스웨터나 민예품을 파는 상점이 묘여 있다.

그리고 이 거리 조금 위에 르카드 네그로라 불리우는 시장에 있는데,

이 시장안에도 민예품을 아주 싸게 곳이 있으므로 잘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역시 가격이 정찰제인지 아닌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라파스의 전기거리사가르나거 거리를 훨씬 지나서 엘로이 샬몬(ELOY SALMON)거리가 나온다. 이 거리 주변에는 카메라나 전화를 파는 상점이 모여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남미에서 가장 싸다고 한다.

상점에 따라서 가격에 차이가 있으므로 몇번 돌라보고 사야 할 것이다.

코차밤바의 민예품이나 민속악기거리민예품이나 민속악기를 사려면 코챠밤바의 대 메르카르에 있는 전문거리를 가 보는 것도 좋다.

알파카 스웨터도 싸게 살수 있고, 디자인이나 품질이 좋은 고급품은 두 곳을 통해 구입할수 있다.아사티(ASATI : MAYOR ROCHA 375 TEL 50455),

카사 피셔(CASA FISHER : CALLE RAMON RIVEIRI 204 TEL 45625)  

 

우유니(by 남미여행가 박재혁)  

 

위치·시간따라 다른 물빛 '콜로라도 호수' 신비경 탄성부글부글 끊는 간헐천…

오랜 사막여행 피로풀기 그만 볼리비아는 ‘아메리카의 티벳’으로 불린다.

안데스 산맥의 허리에 자리한 이 나라의 서쪽지방은 대부분 해발 3500m가 넘는 고원이다.

그 고원의 한 가운데 우유니 소금사막(Salar de Uyuni)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소금사막과 활화산, 시시각각 빛깔을 달리하는 호수 등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배낭여행자들은 4000m를 넘나드는 고원에 자리한 우유니 사막에서 며칠 간 머물며 남미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취한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 파즈(La Paz)에서 자동차로 14시간.

밤을 꼬박 세워 달린 차는 이른 아침 우유니 마을에 닿는다.

차창 밖으로 떠 있는 듯한 호수가 보이면 우유니에 도착한 것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눈부신 소금사막이 펼쳐진다.

해발 3653m에 자리한 우유니사막의 넓이는 1만2000㎢로 남한의 9분의 1 크기다.

이 사막 전체가 60㎝ 두께의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

지프가 멈추는 곳 어디서나 소금 위를 걸어볼 수 있다.

사막에서는 거북등처럼 육각형으로 결정된 소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프는 하늘과 땅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끝없는 소금밭 위를 달린다.

옆으로 스쳐 지나는 지프는 마치 구름 위 하늘을 나는 모양이다.

그 사막 한가운데 호텔이 있다. 그냥 호텔이 아니다. 건물 전체를 소금으로 지은 호텔이다. 모피가 깔린 침대도 소금으로 만든 것이다.

 

소금호텔을 지나면 아지랑이 속에 섬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섬의 이름은 페스카도(Pescado). 스페인어로 ‘물고기’라는 뜻이다.

페스카도에는 독특한 모습의 선인장이 자라 눈길을 끈다.

 

페스카도 섬을 지나면 작은 마을 산 후안(San Juan)이다.

해발 3800m의 산 후안은 밤이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두

툼한 점퍼가 없다면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낼 만큼 춥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모든 여행자들은 추위를 무릅 쓰고 집밖으로 나선다.

별을 보기 위해서다. 생보석처럼 빛나는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은 우유니 사막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아름다움이다.

 

이튿날 산 후안을 출발하면 치구아나(Chiguana) 소금지대다.

치구아나 산과 룩소(Luxso) 화산의 풍경이 이채롭다.

미네랄이 풍부한 이곳의 산들은 마치 오색단풍에 물든 것처럼 빛깔이 다양하다.

 

 치구아나를 지나면 모래사막으로 변한다. 고원은 점점 높아져 해발 4000m를 넘나든다.

황량한 사막 풍경은 지구 밖의 어느 행성에나 닿은 것처럼 낯설고도 아름답다.

뽀안 연기를 피워 올리는 오야케 화산(5830m)을 지나면 카라파(Carapa) 호수다.

호수에 빨간 망토를 두른 듯한 플라밍고(홍학) 무리가 보인다.

숨조차 쉬기 힘든 고원을 서식처로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프는 모양이 제각각인 호수를 스쳐 지난다.

호수와 호수의 중간에 거대한 바위들이 버섯처럼 솟아나 있는 지대로 접어든다.

 

이곳이 우유니 투어의 랜드마크가 된 아르볼 데 피에드라(Arbol de Piedra)다.

한아름쯤 되는 돌기둥이 거대한 바위를 받치고 있다.

이런 바위들은 수십만년 동안 바위가 바람과 폭풍에 풍화되어 만들어졌다.  

 

아르볼 데 피에드라를 지나면 콜로라드 호수(Laguna Colorad)다.

물감을 풀어 놓은 듯처럼 색감이 아름다운 이 호수는 보는 위치에 따라 물빛이 달라진다.

호수를 향해 걸어 들어가면 무지개 일곱색깔로 물빛이 변한다.

콜로라드 호수에도 꽃분홍색으로 치장한 플라밍고 무리가 있다.

 

마지막 날은 이른 새벽에 출발한다. 사막을 달리다보면 세상을 태울 듯이 강렬한 해가 솟는다.

붉게 타오르는 해를 등지고 사막으로 들어가면 간헐천 지대가 펼쳐진다.

짙은 유황냄새와 함께 물이 부글부글 끓는다.

지구가 살아 숨쉰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풍경이다.

새벽부터 추위에 떨었던 여행자들은 간헐천에 몸을 담그고 추위와 이틀간 사막을 달려온 피로를 푼다. 간헐천 지대에서 조금 더 가면 칠레와의 국경지대다. 투어는 여기서 끝이 난다.

 

라 파즈로 돌아가려면 여기서 다시 하루를 되돌아가야 한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가장 높은 안데스 산맥에 접해 있다.

서쪽은 고산지대, 동쪽은 아마존의 밀림지대로 개발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고 있다.

또한 남미에서 원주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데다 정치도 불안해 여행자들은 라 파즈나 포토시 등의 대도시와 우유니사막, 티티카카 호수 등 서쪽 고원지대를 방문한다

 

볼리비아로 들어갈 때는 고산병에 신경을 써야 한다.

라파즈나 우유니, 티티카카 호수 등 주요 여행지 대부분이 해발 3500m를 넘기 때문에 자칫 고산병으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움직일 때는 가급적 천천히 움직이고, 따뜻한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만약을 대비해 약도 준비하면 좋다. 우유니 사막의 밤은 살인적일 만큼 춥다.

여벌 옷은 필수, 침낭도 준비해 가면 도움이 된다.

또 한낮은 태양이 강렬하다. 자외선 차단제와 고글 등도 챙겨야 한다.

우유니 사막 투어는 2박3일이 보통이다. 라파즈에서 시작하면 투어를 마치고 곧바로 칠레로 넘어갈 수 있다.

만약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다면 3박4일은 잡아야 한다.

12∼3월은 우기로 비가 많이 오면 투어가 종종 취소되기도 한다.

일정을 넉넉하게 잡는 게 좋다.

우유니 사막 투어 비용은 1일 기준 20달러 내외다.

볼리비아는 ‘5달러 생활자’는 말이 나올 만큼 물가가 저렴하다.

수영장이 딸린 리조트의 숙박비는 5달러 내외다.

볼리비아는 파라과이와 함께 유일하게 비자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출발시 발급받을 수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다.

페루 칠레 브라질 등 주변 지역에서 볼리비아로 들어갈 때 받는 게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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