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림읍 상명리에 사시는 할망들이시다.
전날밤, 찜질방을 찾아 한림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쯤 제주의 가운데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아주 작은 마을이 상명리이다.
깊은 밤 상명리는 가로등도 하나 없었다.
아주 캄캄해서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비양도를 가기 위해 이른 아침 다시 버스를 타러 나왔다.
어둠이 가신 아침
상명리의 얕은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낮은 돌담.
돌담 높이만큼의 집들.
그리고 집만큼 작은 제주의 할망들을 만났다.
할망들은 옆에 한꾸러미 물건들을 챙겨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다.
동네분들인갑다.
낯선 나.
그들에게 난 낯선 얼굴과 낯선 복장과 낯선 베낭을 지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30여분동안
처음 할망들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아마 할망들과 눈이 스무번은 맞았다.
눈인사만 무지하게 하며 쑥쓰러웠지.
나의 옆쪽으로 앉아계시던 고운 할망께서 내게 말을 붙이신다.
"어데 왔수까?"
"저기 찜질방에 왔었습니다."
"어데서 왔수까?"
"서울에서 왔는데요."
"혼자 왔수까?"
"네 혼자 왔습니다."
"혼자서 다녔수까?"
"네."
"안 무서웠수까?"
"네 별로 안 무서웠는데요."
"학생이우까?"
"네."(학생으로 보이는 내가 우스워 거짓말을 했지.)
그 옆에 계시던 할망 한 분께서 거드신다.
"학생은 아니지."
두 분은 어느새 나는 잊어버리고,
요즘 젊은이들은 나이를 모르겠다면서 뭐라고 뭐라고 열심히 토론하신다.
할머니께 처음으로 질문을 했다.
"저 사진 한 번만 찍을께요."
"뭐 한다고 찍수까? 기자이우까?"
"아니요. 그냥 기념으로 찍으려구요."
카메라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혼자 다니지 말라고 하신다.
알았다고 말씀드렸다.
버스가 왔고, 할머니들은 아침 등교시간이어서 학생들이 많이 탄 버스를 익숙하게 잘 타셨다.
길을 몰라 제주에서 나의 자리는 항상 운전기사님의 바로 뒤이다.
"한림항에서 내려주세요. 오는 한림 장날인가요? 할머니들께서 무지 많이 타셨네요."
"어제가 장이었고, 할머니들은 모두 병원에 가시는거예요."
그러고보니 버스에 앉은 분이 모두 할머니들이시다.
이른 아침 해 드시고, 병원으로 마실가신다.
나보다 먼저 내리시는 할머니들과 눈 좀 맞춰보려고 했었는데,
할머니들 병원길이 바쁘신지 내게 눈길도 안주시네... 섭섭!
길게 줄 지어 내리시고, 길게 줄 지어서 병원으로 가시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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