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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복효근] 새에 대한 반성문

by 발비(發飛) 2006. 4. 29.

새에 대한 반성문

 

복효근

 

춥고 쓸쓸함이 몽당빗자루 같은 날

운암대 소롯길에 서서

날개소리 가득히 내리는 청둥오리떼 본다

혼자 보기은 아슴찬히 미안하여

그리운 그리운 이 그리며 본다

우리가 춥다고 버리고 싶은 세상에

내가 침 뱉고 오줌 내갈긴

그것도 살얼음 깔려드는 수면 위에

머언 먼 순은의 눈나라에서나

배웠음직한 몸짓이랑

카랑카랑 별빛 속에서 익혔음직한

목소리들을 풀어놓는

별, 별, 새, 새, 들, 들, 본다

물 속에 살며 물에 젖지 않는

얼음과 더불어 살며 얼지 않는 저 어린

날개들이

건너왔을 바다와  눈보라를 생각하며

비상을 위해 뼈 속까지 비워둔 고행과

한 점 기름기마저 깃털로 바꾼 새들의

가난을 생각하는데

물가의 진창에도 푹푹 빠지는

아, 나는 얼마나 무거운 것이냐

내 관절통은 또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이냐

그리운 이여,

네 가슴에 목 박혀 삭고 싶은 속된 내

그리움은 또 얼마나 얕은 것이냐

한 무리의 새떼는 또

초승달에 결승문자 몇 개 그리며

가뭇없는

더 먼 길 떠난다 이 밤사

나는 옷을 더 벗어야겠구나

저 운암의 겨울새들의 행로를 보아버린

죄로

이 밤으로 돌아가

더 추워야겠다 나는

한껏 가난해져야겠다

 

 

'저 운암의 겨울새들의 행로를 보아버린 죄로 이 밤으로 돌아가 더 추워야겠다 나는 한껏 가난해져야겠다.'

 

알아버린 것이 죄라면,

더 추워야 하고 더 가난해져야 한다.

 

알아버린 죄!

알아버린 죄!

 

시인은 알아버렸기에 그 아픔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단다.

아프고 가난한 것이 혼자가 아니다.

기름기 한 방울 조처 깃털로 만들어 날아 날아 가고 있는 철새들을 보면

내 몸에 목아 지방이 되고 있는 기름기를 민망해가며

좀 걸었다고 시끈거리는 관절을 민망해가며

맘껏 투털거릴 수 없음은 알아버린 죄이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세상 것을 몰랐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알아버린 것이 죄라면,

그것이 죄라면 더 춥고 가난해질 수 밖에.

그렇게 형량을 채울 수 밖에.

 

김영갑작가의 사진집을 보다가,

바람이 부는 마라도를 보다가

무꽃 만발한 어느 들판의 바람을 보다가

 

복효근 시인의 시집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이 시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박태기나무에서 꽃이 피려한다.

알아버렸다.

그것이 죄가 되었다.

좀 더 추워야한다. 좀 더 가난해져야한다.

박태기나무에서 꽃이 피려하는 것을 보았고,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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