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할 수 있는 거리-
윤희상
나와 너의 사이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린다
나와 너의 사이는
멀고도 가깝다
그럴 때, 나는 멀미하고
너는 풍경이고
여자이고
나무이고, 사랑이다
내가 너의 밖으로 몰래 걸어 나와서
너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나는 꿈꾼다
나와 너의 사이가
농담할 수 있는 거리가 되는 것을
나와 너의 사이에서
또 바람이 불고, 덥거나, 춥다
어느 날에
그 날은 너와 이야기를 한 날이었겠지.
그리고 그날은 너와 이야기 한 것을 후회한 날이겠지.
아무말도 하지 말 걸
아니 내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게 숨어있을 걸
다른 어느 날,
그가 내 옆을 지나며 눈이 마주쳤을 때 눈인사 곱게 나눌 수 있도록
눈웃음 가슴에 담을 수 있도록
그럴 걸 그랬다.
무슨 말을 한거지?
내가 그에게 무슨말을 한거지?
너와 내가 이야기를 한 날
다시는 그가 나를 향해 웃지 않을까봐.
만나지 못할까봐.
내내 잠을 잘 수 없었다.
"날씨가 죽이죠?"
"뭘 먹었어요? 족발이죠? 냄새나요. 매너꽝이군!"
"달콤 쌉싸름한 여인 보러가요. "
"오늘 아침에 전철 안에서요.......(어쩌고 저쩌고)"
그 사이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고 드디어는 눈이 내리면 되는데
그것만으로
......
행
복
할
수
있
다
.
.
.
눈이 빨갛게 되도록 말한 것을 후회한 어느날 밤에
-모네의 버드나무그림자와 수련-
농담할 수 있는 거리 그리고 모네의 거리
지금 당장 모니터 앞에서 일어나라
그리고 천천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라
그리고 다시 앞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오라
아주 작게 디디길 충고한다
눈을 모네의 그림에서 떼면 안된다.
자!
당신의 눈에 버드나무 그림자가 얇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이는가?
수련의 잎사귀에 햇살이 쬐이는 것이 보이는가?
바로 그때 발을 멈추어야 한다.
모네의 거리이다
더는 다가서지도 멀어지지도 말아야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순간이다.
내가 정한 모네의 거리이다.
윤희상 시인의 '농담할 수 있는 거리'
가장 아름다운 채로
하지만
뜨거우면 안된단다.
이 시를 이음아트 북마크에서 만나 소리내어 읽고 난 뒤, 잠시 목이 뻣뻣해진 이유?
지금 그의 사랑은 냉동인간의 동면이며 반중력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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