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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백석] 멧새소리

by 발비(發飛) 2006. 4. 6.

멧새소리

 

백석

 

처마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별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마르고 찬

파스락거리며 거친

덕장이 아닌 처마에 걸린

초가지붕을 따라 떨어지던 물방울이 만든 고드름마저 무거운 명태 한마리

이웃한 것이라고는 파리한 별빛뿐이다.

툇마루도 토방도 없는 문턱에 서서

들지도 날지도 못하고 섰다.

바람이 차니, 몸은 얼고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명태도 사람도 가리지 않는다.

밤새 고드름은 더욱 두꺼워진다.

가슴이 무겁다

앞으로 온 몸이 쏠린다.

토방도 툇마루도 없는 한데로 몸이 기운다.

그럴봐엔

처마에 날 매달아두지.

멧새 한 마리 날아와 쪼아도 좋으니 날 묶어두지.

그저 붙어나 있을 수 있도록...

 

사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집이라고 있는 것이 처마 성근 초가집 뿐이다.

그것도 남의 집이란다.

넘어간 집에 오도가도 못하고 매달려 있단다.

백석 그가 주인인 따뜻한 한 칸 방에 몸을 뉜 적이 없구나 싶으니, 맘이 짠하다.

그 파리하고 잘 생긴 얼굴에 언 명태를 갖다대니

더 짠하다.

 

그러나 저러나 해도 세상은 참 많이 바꼈는데...

하늘에 사시는 백석시인이 지금 나의 아파트 베란다에 한 번 서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2006년에 그가 한 번 서 있기를 바란다.

그 때보다야 따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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