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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지금은 마라도

by 발비(發飛) 2006. 4. 23.

 

 

어젯밤을 새다시피하고 모슬포에 왔습니다.

그리고 아침 8시 30분 배로 가파도에 들어갔습니다.

 

한때는 주민이 천명이 넘었다는, 가파도분교의 아이들이 백명이 넘었다는데

섬의 반을 돌 동안 저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가파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해 마치 이어도가 여기가 아닌 듯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어도란 어떤 곳일까요?

사람이 살기는 했던 곳이 아닐까.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공동묘지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

그 묘지의 앞뒤 그리고 봉분 위로 무꽃이 만발하고 백년초가 가득하고,

민들레가 곳곳에 피어있다는 것입니다.

꽃으로 장식된 수많은 무덤들만이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입니다.

그리고 묘비들이 다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숙부인'이라고 적힌 것도,

그리고 처사. 유인...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지식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봉분들.

이어도에 사람이 살았다면 아마 그런 계급의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무술이가 혹은 마당쇠가 이어도에 살지는 않았을테니까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섬을 돌았습니다.

 

가파도의 가장 환상적인 것은 섬의 가운데 끝도 없이 펼쳐진 보리밭입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큰 보리밭을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구름밭.... 역시 이어도필이야.

 

그리고 섬의 반 바퀴를 돌아온 곳에 배들이 있었습니다.

집들이 있었습니다. 집의 반은 비어있었고, 반은 사람의 흔적은 있으나 사람은 없습니다.

항구로 갔습니다.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배안에 있었습니다.

 

 

 

그물을 만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부부들이 한 조가 되어서 새벽 고기잡이를 하고 난 뒷정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 부부는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부부의 금슬이 좋지 않으면 고기잡이도 하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얽히고 설킨 그물을 균형을 잡아 풀어서 정리한다는 것은

두 사람의 손발이 잘 맞아야 하는 것니깐요.

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합니다.

 

그 아주머니는 서울을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십니다.

아이들이 제주대학을 다니는데,

서울에 보내고 싶지만 고기를 잡아서는 보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전 제주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었고, 가파도를 와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

그래서 이번에 오게 되었다고..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웃으십니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그물에 걸린 소라 두개를 주십니다.

칼을 주시면 소라를 깨어서 먹으라시는데... 소라가 꿈틀거립니다.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소라껍질이 생명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꿈들거리는 소라의 속살을 보자 그 껍질 또한 통점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좀 별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제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은 얌체처럼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역 몇 잎을 뜯어먹고는 소라는 그냥 두겠다고 했습니다.

아주머니 못내 아쉬워하시며 안 먹어본 것이라 그런가보다며 아저씨에게 속삭입니다.

 

좀 미안하고..

 

인사를 하고 나머지 반바퀴를 돌았습니다.

보리밭길 사이를 걸으며 제대로 바람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좀 더 올라가니, 가파분교가 나타났습니다.

아마 사이판에 초등학교가 있다면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운동장에는 잔디가 깔려있었고, 열대나무들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근데 학생수가 12명이랍니다.

 

아까운 일이군

정말 아까운 일이군

혼자서 그네를 한참 타다가, 미끄럼을 한참 탔습니다.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 롤러브레이드, 스카이 콩콩을 타고 있었습니다.

몇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참 이상하게도 까맣지도 않았고, 도시의 아이들처럼 뽀야니 귀티가 나더군요.

그때 부두에서 만났던 이장할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저더러 이름이 뭐냐고 물으시길래. ...라고 했더니, 같은 성이라시며.

이섬에 사는 이가들은 모두 고비 이씨라는 것입니다.

귀향오신 어떤 분이 시조라고 하십니다.

어느 한때 한 가닥하신 분을 조상으로 두신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귀티가 나는 것도 이어도 조상을 둔 덕이 아닌가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도

진짜 그런것 같다고 혼자서 믿기로 했습니다.

 

어느덧 다섯시간을 가파도에서 보냈습니다.

이제 마라도로 갑니다.

바람의 섬 마라도, 그 곳에서 밤을 보낼 것입니다.

일몰과 일출을 보면서 바람을 맞을 것입니다.

 

마라도, 첫인상!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이건 아니야 였습니다.

그 사이를 헤집고 민박집을 찾고, 자전거를 빌려타고 한 바퀴 하는데, 사람들이 쫙 사라졌습니다.

모두들 마지막 배를 타고 제주로 돌아갔습니다.

아마 이 섬에 외인이라고는 저만 있는 듯 합니다.

 

사람들이 사라지자,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머리를 들수도 숙일 수도 없습니다. 자동입니다.

자전거는 공짜로 빌려줍니다.

오늘 나가지 않는다고 하니까 내일 까지 타다가 갖다 두라고 합니다.

지금껏 자전거를 타다가 들어왔고, 잠시 몸을 녹였으니 다시 나갈 것입니다.

지금요.....

 

마라도에서 인터넷으로 실시간 방송을 한다는 것이 신기해 민박집 주인님의 컴을 차지하고

그동안 찍은 사진도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려고 합니다.

멋진 일입니다.

여기는 마라도입니다.

일출과 일몰이 아직 남았습니다.

밤바람도 맞아야 합니다. 제대로 마라도의 바람을 맞겠습니다.

 

 

 

내일 오전까지는 마라도에 있다가 한림까지 가서 비양도로 갈까 합니다.

비양도와 제주시와 한라산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지 아직도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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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입니다.

미니모님께서 용눈이 오름에서 찍으신 사진입니다.

 

너무 적나라해서 얼굴을 가렸습니다.

미니모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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