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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문 열린 1호선

by 발비(發飛) 2006. 3. 31.

 

 

내가 좋아하는 파랑이다.

가까이 서지 마시오

 

개봉에서 마지막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야만 했다.

성북까지 가는 마지막 전철은 11시27분인데... 안내방송이 나온다.

11시25분 현재 부천역에 있단다.

죄송하단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지. 기다릴밖에....아마 2.30분을 기다린 듯 싶다.

그 시간 동안

'이젠 환승할 버스도 끊겼겠다. 백수가 택시를 타야겠구만....'

난 돈 계산에 분주했었다.

삑삑 삐익....

멀리서 전철불빛이 반짝인다.

다행이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연말이라고 일 좀 도와달라던 **들이 얼마나 밉던지)

 

 

 

 

 

이제 아주 길게 집으로 가야하니까 무엇을 들을까... 가방안에서 cd를 고르고 있는데

사람들의 눈길이 한 곳으로 몰리는 거다.

난 장사하는 사람이 탄 줄로 알고 무심코 뒤를 돌아다 본 순간.

'아니 이건 뭐야?'

전철은 달리고 있는데, 문 대신 파란 천막이 쳐져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바람이 들어온다

두 사람이 저 천막옆으로 지키고 서서 사람들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문이 닫히지 않았나보다

이런 게 사고지.

'아찔... 헉... 뭔 일은 없었던게지.'

그 객실안에 있던 사람들은 하던 이야기를 하고 웃고 자고.. 그저 눈만 그 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요즘 난 전철을 무지 타고 있으므로 전철안의 이 풍경

대어를 낚은 것이다.

카메라 "찰칵"

좀 미안하더라.

저것을 붙들고 지키고 서 있던 그 사람들에게 뭐 구경거리라도 된 듯이 셔터를 누르자니.

그리고 혹

그들이 내가 무슨 이슈라도 삼을 수 있겠다는 공포도 느끼겠다 싶기도 하고.

 

뭐 그저

난 내가 새로운 풍경을 만난 것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사회문제... 뭐 이런 것이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본 것이 좋았다.(또 이상하다)

 

가까이 서지 마시오

출입문 고장

 

그렇다 출입문이 고장 났단다.

그럼 가까이 서면 안된다.

그 문밖에 무엇이 있을 지 장담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출입문이 고장이 났다는 것은 문만 고장이 났다는 것이 아니라 문 뒤의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말이다.

누구도 그 가까이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의 주인격인 직원만이 더 이상의 손해를 막기 위해 그 곳 가까이에 있었을 따름이다.

나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은 갔다.

출입문 고장이 난 뒷쪽의 세상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은 도대체 어찌 생긴 곳일까

봤다

휙휙 달린다.

그 곳은 전철이 달리는 곳이라기보다 사방이 달리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어둠과 함께 전선들과 함께 멀리 아파트들과 함께 세상이

소리를 내며, 바람까지 일으키며 돌아치고 있는 곳이었다.

가까이 가면 안되는 곳이 맞았다.

그 곳 가까이에 간다면 마치 블랙홀처럼 한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질게 분명하다.

모든 사람들은 위험한 곳에서 떨어져서 편안한 모습이다.

뭐 그리 공포스러울 일도 있다.

문지기가 있었으므로 그들이 지킬 것이므로

그런데 나!

반동분자이다.

왜 자꾸 그 쪽이 궁금한것이야.

가까이 서지 말라는 그 곳으로 뛰어 들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내 팔만 내밀고 소용돌이 치는 바람을 느끼고 싶고

바람을 내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이 불끈 솟는거다.

참아야 하느니라...

그래야 하느니라...

 

구로역에 도착했다.

 

"이 전철은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않습니다. 맞은 편의 전철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더는 갈 수 없을 것이다. 도심으로 가야 하는 전철이므로 안될 일이지.'

 

모두들 전철을 내렸습니다.

지키던 직원들도 자리를 떴습니다.

 

"가까이 서지 마시오. 출입문고장"

 

전철이 멈추고 모두들 사라진 다음 난 가까이에 서 보았다.

'나가는 곳'이라는 화살표가 보였다.

이제 더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난 문이 없는 문으로 나오지 않고, 옆의 열여진 문으로 나와 문이 잘 닫히는 전철로 옮겨탔다.

그 전철은 문이 꼭 닫힌 채

바깥세상과는 완전 차단된 안전한 곳이었다.

난 잠시 눈을 감고 바흐의 평화에 빠졌다.

완전 차단된 곳

안전한 곳

 

가까이서도 되는 곳에 이제 앉아있다.

문득

옆 사람이 보인다.

앞사람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내게 문이 열린 전철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의 옷들이 갑자기 파란 포장처럼 그들이 꽂고 있는 이어폰은

'가까이 서지 마시오'

'출입문 고장'

이라고 써진 문구인 듯 이 보였다.

 

나도 그들도 모두들 고장나지 않은 전철을 타고 

 고장난 문을 가진 전철안에서는 한 곳을 바라보기라도 했던 그런... 공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이번에는 각자의 문에 문구를 써붙이고서야 잠들기 시작했다.

 

나도 그렇게 이어폰으로 핸드폰으로 가까이 하지 말라고 써놓고 집으로 향했다.

우린 모두 고장난 출입문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난 고장난 출입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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