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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전철에서 본 풍경

by 발비(發飛) 2006. 3. 23.

 

 

 

 

전철 1호선

땅 위를 달리는 것이라 지하철이라 부를 수 없다

하늘을 볼 수 있는 전철을 타는 기쁨을 누린다

강을 건너는 기쁨을 만난다

내가 가는 철로를 본다

전선줄에 감전되어 냅다 달리는

전철 1호선을 매일 타게 되었다

 

하늘이 파란 것을 전철을 타고서도 볼 수 있다.

 

 

 

변하는 것들이다

건물이 오르고 있다

턱하니 버티며 하늘로 오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멈춤

 

 젗에를 알 수 없이 동에서 서로 달리는 기차 

그저 달린다

멈추어 있는 것과 달리는 것이 한 자리에 있다.

 

모든 것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달리고 멈춘다

내일 이 시간 이 자리에 건물은 한 층 더 올라가 있고

기차는 달릴 것이고

난 마주한 전철에서 하루만큼 살았을 것이다

변하는것들 사이에서 변한다

변하고 싶다.

 

어느 날 저 건물에 상가간판이 붙을 날

나 그 곳을 지나가며 변한다 변한다 변한다... 할 것이다.

 

 

 

해는 지고,

 

옆 철로를 달리는 기차가 지나간다

사람들은 플랫홈에서 다음 기차를 기다린다

내 앞의 여자의 옆모습이 유리창에 비친다

 

난 그것들 모두를 나의 카메라에 담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어떤 것도 내 앞에 있는 것은 없다.

모두가 해가 진 다음에 나에게 남겨준 잔영이었다.

 

해가 지자 그림자만이 내 눈동자에 남았다.

 

 

여자 안에 가득찬 사람들

 

내 맘에 가득차 있는 사람들

내 가슴을 파고 드는 사람들

가슴 구석 구석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드는 사람들

어떤 이는 가슴팍을 할퀴고

어떤 이는 가슴팍을 쓸어주고

내 가슴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사람들

 

결국은 그들 모두는 그들 자신안에만 있는

내 안에 들어온 그들은 그들과는 상관없는

내가 만들어놓은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들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밀려들어오는

자꾸 부풀어 오르는

붕긋 솟은 나의 가슴.

 

헛 바 람.

 

 

 

카페 뤼미에르

 

일본의 철길 위의 이야기.

그 길이 구로에도 있었다.

눈에 익은 삶이 생각나는

내가 본 영화가 마치 내가 산 어느 생인 듯이

이 철길들이 날 카페 뤼미에르 시절로 되돌려 준다.

기억은 내 삶을 위장한다.

누군가의 삶이 시간이 지나 나의 삶으로 각색되어버리는

내가 그녀인듯

내가 그의 그녀인 듯

그의 음향녹음기를 들고 서 있는 내가 저기 있다.

 

 

몇 센티의 경계

 

몇 센티의 두께를 두고 실려가고 있다.

몇 센티를 후벼 파 뚫을 수만 있다면 난 철길을 따라 떠날 수 있다

움직이는 것이 나라고?

아니

내가 앞으로 가는 것이라고?

아니

철길은 그저 그 곳에 있는 것이라고?

아니

 

난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고

철길은 나를 비켜 열심히 제 길을 가고 있다

 

몇 센티만 후벼파면 난 철길 따라

이 멈춤을 벗어날 수 있다

 

창가 틈새로 손톱을 끼어 넣고 그 틈새를 판다.

철길에 발을 놓는다.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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