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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아버지의 뇌

by 발비(發飛) 2006. 3. 14.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밤 12시가 되자 침대에 누웠다.

한참을 말똥거리면서 왜 잠드는 시간이 이리 긴 것인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 들려고 누워있는 시간이 어쩌면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의 저편이겠다.

삶의 저편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묘한 기분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겠지.

몇 번을 깼다.

시간을 확인하면 1시간 혹은 2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진동으로 설정해 놓은 핸폰이 요란히 팔딱거린다.

엄마!

목소리가 이상하다.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단다.

지금 내려왔으면 하신다.

대한민국에는 나만이 아버지 엄마의 자식이다. 무지 겁이 나셨나보다.

캄캄한 새벽

집으로 내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디 플레이어를 챙겼다.

전인권 3집과 바흐 것으로 시디를 챙기고...

봉우리,,,, 그래 봉우리 그저 봉우리이다.

작은 봉우리도 어릴 적에는 세상에는 가장 커보인다.

자라서 보면 작은 등성이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작은 봉우리이길....

 

아버지는 심한 두통을 호소하셨다.

나에겐 언덕인데, 언제 어디서든 비빌 언덕인데, 언덕이었다.

아버지라서 걱정된다기 보다 언덕이라서 미칠 것 같았다.

 

병원에서 아버지의 뇌를 CT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오른쪽 뇌 가운데에 검은 멍자국, 왼쪽 뇌 옆에 하얀 엉킴,

검은 멍자국같은 것은 뇌경색의 흔적이라고 했다. 중풍이 살짝 왔다갔다는 것이다.

하얀 엉킴은 혈관이 엉킨 꽈리란다.

 

아버지는 당황하신다. 엄마도...

난 머리가 말개졌다.

검은 멍자리, 하얀 엉킴

그걸 어쩐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뇌 속에 내가 들어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아주 말간 얼굴을 하고서 아버지의 뇌 가운데에 들어앉아있다.

두통의 근원이 나였음을 .....

 

아버지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신다.

난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건 경고거든요. 아버지 담배와 술 좀 줄이시라는 계시인데요. 맞지요?"

"야 넌 지금 이 지경에 그런 잔소리가 하고 싶냐?"

"지금 아버지 편찮으실 때 큰 소리쳐야지 저 못 혼내실거 아니예요? 맞지요?"

"내가 정말 ..."

난 그렇게 아버지와 주거니 받거니 말을 했다.

머리가 아프시다면서 옆에 누워서 조잘거리는 나를 보고 슬핏 웃으신다.

 

어쩌라고,...어쩌라고 ... 편찮으신건가요..

정말 미치겠네.

 

자도 자도 자는 것이 쉽지 않던 지난 밤

오늘 아버지 옆에서 잠을 자야지.

내일 새벽이면 서울 큰 병원에 가서 뭐가 뭔지...

아니 의사선생님께 몰래 말해서 나를 걷어내달라고 해야겠다

내가 나를 보았는데.

나를 아버지의 뇌속에서 꺼내고 나면

아버지 뇌속에 든 검은 멍도 하얀 꽈리도 다 풀릴 것이다.

내일 서울 큰 병원에 가서 아버지가 MRI터널에 들어가셔서 관을 빠져 나오실 때

난 아버지의 뇌속에서 나올 것이다.

의사선생님도 나도 그걸 비밀로 하고 ......

 

오늘 밤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의 머리속에서 잘 있어야지

움직이지 말고, 머리를 아프게 하지 말고 잘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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