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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생산적인?

by 발비(發飛) 2006. 3. 11.

 

 

-제 1편-

 

회사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맨 먼저 들른 곳

 

전기재료 판매점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한지 2년이 좀 지났는데,,, 내내 맘에 들지 않는 것.

바로 형광등이었습니다.

 

사실 그 동안은 거의 여관이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형광등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냥 그냥

그렇지만, 이제 백수의 생활로 접어든 지라

매일 하루종일 형광등만 올려다 보고 있을 것이 뻔합니다.

 

그 형광등이 맘에 안 들어서야 보람찬 백수의 생활을 할 수 없겠지요.

(마침 형광등 하나가 나갔습니다. )

 

얼마전 노점에서 본 철사 안정망 같은 것, 딱 필이 오더군요.

바로 저거야!

 

전파상에 가서 철망 8개를 하나에 천원씩 8천원

그리고 소켓트 하나에 천원씩 8개 8천원

연결한 알루미늄관 천원

천정에 지지할 나무판 두개 천원

검정색 전기테이프 500원

 

그렇게 준비해서 동네 전파상으로 왔습니다.

전구는 사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덜렁거리는 성격상 오다가 깰 수도 있으니까 그건 동네에서 사야 합니다.

 

허걱!

근데, 전구값이 너무 비싸군!  삼파장 전구 8개 하나에 5000원 사만원

무지 오래 쓴다니까, 전기세 무지 싸게 먹힌다니까 눈 질끈!

 

"아저씨! 제가 이거 달려고 하는데요. 혹시 달다가 안 되면 출장오셔서 달아주시나요?"

"이걸 직접 단다구요? 참 나. 아무튼 안되거든 전화하세요."

"제가 해 보고 안되면 전화드릴께요."

그때까진 자신만만이었습니다.

 

 

남들은 회사를 그만두는 날은

뭐 쫑파티라도 하겠지만,

 

전 회사 그만 둔 날 밤새 저 전구들과 디자인(?) 씨름을 했습니다.

 

온갖 종류의 도구들을 앞에 두고 자르고 붙이고...

다섯개짜리 거실등을 미리 만들다 전선줄만 자꾸 짧아지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저씨, 전등 좀 달아주세요."

오셨습니다.

"하 참 "

그리고 씨름을 하시더니 "가만히나 두던지...."

아무튼 그 분은 이런 창의적(?)인 작품을 즐겨하시는 분이라 즐거이 달아주셨습니다.

"이쁘네요. 좋네요." 그러시면서

 

뿌듯 뿌듯..

아무튼 세상에서 하나밖에없는 등을 천정에 달고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백수의 생활이 즐거울 듯 합니다.

 

결산

전등재료 19000원, 삼파장등 40000원, 설치비 20000원 : 모두 79000원

생각보다 좀 더 들었지만,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제2편-

 

삼일절 기념품입니다.

삼일절은 순국선열을 위한 날입니다.

그래서 묵묵히 종일 집에서 지냈습니다. 아니 정리를 해야지.

곧 닥쳐올 백수 생활을 보다 쾌적하게 지내기 위해 정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겨울 머플러가 방에서 굴러다니더군요.

앗 이것부터 치워야지.

그런데 왜 그렇게 부피가 큰 것인지.

13평짜리 아파트에 그 큰 덩치의 머플러가 끼어들 곳이 없습니다.

이 머플러로 말하자면 지난 겨울의 시작, 저의 친구와 제가 수다를 떨면서 보다 생산적이기 위해

뜨게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바로 그 머플러입니다.

"흐음!"

너 오늘 다시 태어나는거야.

방을 정리하다 말고 머플러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주루룩!

그리고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가방을 생각했지요.

코바늘을 들고 무자비하게 손을 놀리기 시작, 하루 종일 밤새도록 ....

그리고 완성

안감이 없습니다.

서랍장위에 깔린 천을 쓱 끌어당겨 가위로 쑹떡쑹떡. 안감을 대었습니다.

끈이 없습니다.

못 쓰는 벨트를 ......

 

가방이 완성되었습니다.

멋지다. 도대체 나 왜 이렇게 잘 만드는거야

삼일절 기념품

 

어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야! 그게 어떻게 뜬 건데 그걸 푸냐? 매쳤다."

 

제작비 0원이었습니다.

 

 

 

 

-제3편-

 

머문자리를 다녀왔습니다.

원래 간 목적은 '전쟁과 평화' 7시간짜리 영화 파일을 입수해서 그걸 보기위해서였지요.

그런데

낮에는 영화를 볼 수 없기에...

전 이리 저리 방황을 했습니다.

 

 

 

마당에 장작으로 사용하기위한 수많은 나무 중

유난히 못이 많이 박힌 나무판 두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첨에는 메모판을 만들까 하고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자꾸 들여다보다가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나무판이 저에게 말을 하더군요

너의 악세사리 꽂이가 되고 싶다구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해주지

뭐 간단했습니다.

머문자리 주인님의 공구통에서 못을 몇 개 그리고 망치

망치질 몇 방에 모양이 완성되고 그 담에 할 일을 두리번 살피는 일

또 무엇인가가 눈에 띄면 그것이 이 액세서리꽂이와 함께 하고 싶어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이리라

그래서 얻은 것이 전선, 그리고 이상하게 생긴 못

 

대충 모양을 완성하고 사포질을 하는 데 시간이 무지 오래 걸렸습니다.

오래 내내 햇살 바른 곳에 앉아서 사포질을 했습니다.

 

 

 

머문자리를 지키는 개들이 등에 와서 아는 척을 하고

간간히 새소리가 들리고

양수리 물빛이 반짝거리고...

내가 꿈꾸는 순간이었는데....

그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니

내가 살았던 곳이 어디인지 까마득해졌습니다.

마치 언젠가부터 여기서 살았던 듯

남의 집이라는 것도 잊고 편안히...3월의 햇살 아래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이 악세서리꽂이를 볼 때마다 그 햇살이

개들의 냄새가 같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기념품입니다.

 

제작비 0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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