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裸燈들
(대학로에 살고 있는 옷 벗은 등 이야기)
서울대학병원 앞 가판점 알전구
철망 안에 알전구가 그대로 몸을 드러내고 있다.
딱 하나만 걸친 것이 바로 옆 낮은 오르막길을 걸어올라가면
가장 높은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 철제 침대에 한 겹 환자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창백함과 닮았다.
가판대 음료수병들이 알전구와 건물안의 사람을 이어주는 전령사인듯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철망 한 겹 두르고 창백히 불 밝힌 알전구를 쳐다보다 음료수병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 곳에 가면 '알전구같기만 하라'고 전해주라고 말해주고 싶다.
'곧 환히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해주라고 말해주고 싶다.
창백하던 알전구가 점점 얼굴을 붉힌다.
방향을 돌렸을 뿐인데. 그리고 몇 걸음 더 걸었을 뿐인데
알전구는 낭만적인 폼이 되었다.
건너편 샘터건물의 붉은 벽돌을 더욱 붉게 만들어주었다.
신호등과 자동차의 미등을 더욱 더 밝게 만들어 주었다.
빛은 빛을 먹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적당한 어둠 아래서 빛은 더욱 빛을 진하게 만들어준다.
빛을 색으로 만들어준다.
몇 걸음 다가간 알전구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하나로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고 몇 발자국 옆으로 비켜나야 겠다.
그럼 둘이 된다.
또 움직이면 셋이 된다.
세상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움직여서 세상의 갯수를 늘여 나가보는거다.
몇 개의 세상과 난 만날 수 있을까
좌로 우로 전으로 후로..... 무조건 움직여 볼 일이다.
그런데 내가 움직이면, 세상아! 넌 가만히 있어라. 같이 돌지는 말아라.
마로니에 공원 안에 좌판이 들어왔다.
마로니에 공원 옆에는 좌판이 있었고, 点천막이 있었지만, 안에 들어온 것은 이 좌판이 첨이다
좌판에 차례로 꽂혀있는 저 스탠드
전구라기 보다 나에겐 스탠드( 왜냐면, 내 방의 스탠드가 바로 저거랑 똑같으니까..)
난 책을 볼 때 켜는 스탠드가 저 곳에서는 돈이 되는데 쓰이고 있다.
돈 만드는 스탠드와 몽상을 만드는 스탠드
한 가지에 태어나 참 하는 일도 다르구나.
미안타... 저 곳의 스탠드들은 나란히 외롭지 않아보이는구나.
휙 돌아서 내 스탠드를 보았더니, 혼자서 덩그러니, 어울리지도 않는 침대맡에 꽂혀있다.
사람에게도 운명이 있듯
저 스탠드에게도 운명은 있는 것이구나.
근데 추운데 있는 저 스탠드가 왜 더 잘 나보이는거지?
기분이 좀 나쁘려고 한다.
내 옆에 있는 스탠드가 왜 더 불쌍해 보이는 거지?
저렇게 빛이 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스탠드는 저렇게 화려하게 빛을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
대학로 아주 구석진 자리에 있는 작은 카페
바깥 벽면에 장식된 전등이다.
불빛이 앙다문 저 얼굴을 더욱 앙다물게 비추고 있다.
낮에는 저 불빛도 저 하얀 남자도 참 초라해 보이는데, 해만 지면 멋있어진다.
해가 지면 멋져지는 남자.
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낮이든 밤이든 한 번 정도는
멋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멋질 수 있는 순간을 가진다는 것도 행운이지.
한 순간 멋질 수 있는 시간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조명이 쏘아지는 시간이 분명 있을 건데, 그 시간을 알아차리는 것.
빛을 발하리라
비록 반사광이더라도 빛을 발할 것이다.
이 등도 거리 가판대 조명이다.
위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난 실외에서 찍었다.
알루미늄 샷시로 만든 가판대 안,
그 안의 조명이 참 멋져서 한 방 찍었다.
가판대에도 저런 조명이 어울리는구나.
절대 어울릴 수없는 것이 어울릴 때, 그 그림은 몇 배나 더 멋있어진다.
보색대비처럼 제대로 짝을 만나면 제대로 멋있어지는 것처럼.
난 샷시가판대 안에 있는 저 조명. 그 곳이어서 더욱 아름다웠던 불빛.
생뚱함이 멋지다.
알루미늄 샷시와 같이 찍고 싶었지만, 주인이 안된단다.
애교를 좀 부렸는데도 좀 무서웠다. 딱 한 장을 찍는 것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딱 한 장 사진이 이쁘다...
상상해보라. 저 바깥이 알루미늄샷시라면....
모 아니면 도
그런데 내겐 '모' 였다.
대학로 길을 지나가는데 해가 지고 있어서, 막 전등불들을 댕기고 있어서
더욱 아름답게 보이던 불빛들
그것들은 하나같이 알전구들이었다.
전등갓없이 그저 온 몸을 밖으로 드러내 알전구들이었다.
길가의 것들은 몸 하나가 그저 다 인가보다.
길에 사는 것들, 그리고 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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