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見聞錄

대학로 고양이

by 발비(發飛) 2006. 1. 12.

 

 

출근길에 만난 그다.

그는 자신의 일에 빠져서 내가 온 줄도 모른다.

난 그를 보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런 시선도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어쩌면, 나도 그가 나를 느끼지 못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다.

이럴 때 내 마음은 뭘까?

아직도 그는 나는 모른다 한다.

 

 

내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그는 날 의식하지 못했다.

저 안의 무엇이 그를 잡는가?

누군가가 무엇을 그에게 남겼는지,

무엇이 그가 살게 하는 힘이 되는건지.

때로는 누군가의 쓸데없음이 나의 그를 빼앗기도 한다.

누군가가 버린 것이 혹 누군가에게는 살아가는 최고의 것이 되기도 한다.

그는 아마 최고의 것을 찾았나보다.

아직도 나를 모른다 한다.

 

 

그의 발을 보면, 언젠가 그가 헤매고 다녔을 험한 들판이 떠오른다.

발이 유난히 크고 두툼한 그다.

그는 아무리 험한 곳이라도 그의 발톱으로 매달리고,

그의 두터운 발로 딛고 섰었다.

그가 지금 선 곳, 그 험한 들판 못지 않은 험한 곳이다.

그가 그 곳에 두 발을 딛고 서있다.

난 그가 들판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저 곳이 자신이 살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도 나도 알고 있을 지 모른다.

어쩌면 디딜 곳이 없다는 것을 . 그 곳이나 그 곳이나 모두 같다는 것을

그는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한다.

 

 

그가 몰두하던 곳에서 한 발 물러섰다,

물러섰다고해서 나를 보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나를 보지 않을 때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왠지 그가 나를 보는 것이 그와 나를 더욱 빨리 헤어지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나와는 함께 할 수 없다.

두려우면서도 항상 곁에 있는 그

그를 어떻게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가 몰두하는 것에 나도 같이 몰두 할 수 있다면, 그럼 그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당당할텐데

가끔은 그런 그가 대단해 보인다.

난 그런 그를 마냥 쳐다보고, 그는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한다.

 

 

드디어....

그가 나를 보았다.

이제 그는 내가 그의 곁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의 눈이 정면으로 나를 보지 않는다.

동그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낮춘다. 내가 서 있었음에도 그는 자꾸 아래로 몸을 낮춘다.

그와 함께 몸을 낮출 수는 없다.

그가 원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니까...

그는 어쩌면 긴 시간동안 나를 알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빛이 그렇게 보였다.

그가 나를 본 것이 반갑지 않다.

난 아침내내 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잠시 나를 그냥 보고 있지 못한다.

그가 나를 보았다는 것은 곧 떠난다는 것이다.

한번도 눈을 맞추어 본 적이 없다.

 

 

그가 거기 있었고

난 그의 마음을 알고,

난 그를 위해, 그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친다.

그는 내가 그를  보고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그와 나는 상대가 된다.

그와 내가 함께 있으면서 우리가 되었던 적이 없다.

그저 그와 나...

항상 딱 그만한 거리를 두고

그와 나 둘 중 하나가 서로를 알아차리지 못할때만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다.

그런 인연도 있는 것이다.

끝없이 피해가야할 인연도 세상엔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그와 내가 그랬다.

 

 

결코 원하지 않았다.

내가 뒷걸음질을 치는 순간, 그리고 난 돌아서지 못했다.

그에게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가 무엇을 할 건지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난 그의 모든 것이 궁금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 그가 나를 외면했다.

나에게 떠나달라는 듯 고개를 숨기고 눈을 숨기고 몸을 말았다.

누군가를 거부할 때 저런 몸짓을 한다.

이제 그가 나를 알아보았고, 알아보아서 나를 피했다.

나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이기만을 원했다.

아직도 그에게 앵글을 맞추고 있는 나.

 

내가 떠나면 그는 다시 자신의 일에 몰두할까?

살아가는 것, 목숨을 부지 하는 것만을 생각하면서 어떤 것도 견디어낼까?

내가 있으면 그는 내가 있으면

그가 하고 있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것이겠지.

 

난 그가 나때문에 그가 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하는 일이 사는 일임을

사는 일이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 가장 중요한 일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난 이제 그를 보아도 시선을 머물지 않기로 한다.

그가 사는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나 같은 것을 의식하지 않도록 그를 보더라도 모른 척 할 것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만난 고양이다.

'見聞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학로 裸燈들  (0) 2006.01.13
대학로 나무하늘 끝  (0) 2006.01.12
와이퍼와 워셔액, 그리고 可視 D-2  (0) 2005.12.30
신미식 사진전. Not for sale D-4  (0) 2005.12.27
긴 합정페루 여행기 D-6  (0) 2005.12.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