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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전철안에서

by 발비(發飛) 2005. 12. 5.

퇴근하는 전철 안입니다.

불편하고 심사가 틀려서 화가  났습니다.

(사실, 옆에 선 여자애 둘이서 너무 떠들어서... 빽빽한 전철에서 하이소프라노로...)

음악을 귀에 꽂고 있어도

극복할 수 없었으므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창가로 가 붙었습니다. 그리고 몰두하기로 했습니다.

창가의 풍경을 찍기로...

창에다 카메라렌즈를 바짝 갖다 붙이고 셧터를 마구 눌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주절거리기 시작합니다.

 

 

 

진행하고 있는 전철안에서 풍경을 찍는 것

그것도 재미있지만, 유리창에 어렴풋이 비치는 카메라가 더 신기합니다.

동그란 렌즈안에 세상이 들어앉는 것인데,

유리때문에 튕겨나가 마치 유리창에 묻은 풍경같습니다.

 

 

진행하고 있는 것

그 곳에서 바라본다는 것

제대로 볼 수 없는 것

그냥 흔적만 보는 것

그저 그런 게 있구나 하고 감으로 아는 것

전철은 앞으로 계속가고, 카메라 셔터도 누르는 동안은 움직이는 것이고

내 눈만 방금 전 본 그 풍경에 꽂혀있습니다.

당연히 어디에도

내가 봤던 풍경을 없습니다.

진행하고 있는 것

그 곳에서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지구는 돌고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모든 것이 진행하고 있는 것

내가 본 것은 이미 없습니다.

 

 

현란한 것들

수많은 불빛 사이에 내 빛도 있었으면,

저 어느 구석에 내가 있고, 세상에 내 자리가 있다는 표시로 작은 불똥하나라도 있었으면,

그런 거 싫은데,

아무것도 없는 듯 그냥 이렇게 있다가 스르륵 ... 그랬으면 좋겠는데,

저 불빛을 보면 또 맘이 달라진다.

한 점 불씨라고 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면,

정말 그때 그때 달라요.

그때 그때 다른 나!

 

 

너무 가까이

너무 환하게

그럼 뭉게지는 것!

 

난 너무 가까이 가지 말 것

너무 환히 빛나지 말 것

그럼 뭉게지고 말 것이다.

그럴 것이다.

 

뚝 떨어지기.

삶에서 뚝 떨어지기

그래도 살 수 있는 거라면......

 

 

 

멈추려할 때,

멈추려할 때 그 곳엔 항상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움직이고 있을 때는 기다리는 것들이 없습니다.

그냥 모두들 움직이는 나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어릴 적,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가 멈추려 할 때 쯤이면,

엄마든 아버지이든 오빠든 누구든 내가 설 자리앞에서 두 팔을 벌려 기다리듯

움직일 때는 그저 보고만 있다가

멈추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나쁜 점이 있다면, 그건 두 팔을 벌려 기다리는 것들이 모두 좋은 것들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팔을 벌리기만 하면, 난 내려야 할 것 같은데

이제는 팔을 벌리고 기다린다고 해서 그것에 몸을 맡기면 안된다네요.

어른이 되면, 그러면 안된다네요.

그래서 돌고 있는 회전목마에서 그리고 전철역에서 그리고...

멈추기가 무섭네요.

이젠 어른인데요.

 

 

 

이제 그 여자애들에게서 해방입니다.

전철이 멈췄거든요. 내려야 할 전철역입니다.

내렸습니다.

그것으로 그냥 끝입니다.

내리면 그 뿐인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애들은 여전히 등 뒤에서 떠들고 있었고,

 더 시끄러운 거리로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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