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만든 영화...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보고 난 뒤 시인 유하의 이름으로 발표했던 시가 생각났다.
그는 시로, 영화로 사랑이라는 짐스러운 것의 무게를 재고 있는 듯하다.
사랑의 지옥
유하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짖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명릐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기도 더는 들억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한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이번 가을 사랑이야기로 만든 영화를 보며,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맘을 열어놓고
남의 사랑을 인정하는 맘으로,
혹은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우는 맘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왜 그동안 이런류의 영화를 보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재미가 없었던지.
사춘기를 제대로 앓지 않아 정신이 성숙하지 못했듯,
때를 놓쳐버린 사랑이라는 감정도 다시 그 때로 돌아가 그 나이로 돌아가 보려한다.
무엇이 나를 피하게 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기엔, 참 적절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은 미친짓이라는 이 영화, 나에게 좀 짜증이 나는 영화였으므로,
이야기를 나누고 화해를 해보려한다.
이 세상에 이해받지 못할 사랑은 단 한개도 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다가가본다.
나를 위해, 영화와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맛없는 반찬부터 먹어치우고 싶기도 하잖아요. 중요한 거라면 결정적일 때 묻지 않겠어요?”
만남에 있어서 질문, 그것은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질문을 하지 않는다.
궁금한데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을 한다면, 나에 대한 질문만 한다.
내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질문을 한다.
친구는 때로 말한다.
"너가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건 뭐니?"
"몰라, 안 물어봤어."
남자든 여자든 새로운 만남이 생겨도 아는 것이 없다. 1년을 산을 같이 탔던 동료를 친구가 묻는다.
"그 사람은 뭐하니?"
"몰라."
"안 물어봤어."
"왜 물어봐야하는데, 나랑 상관이 없는데..."
난 모든 사람과 상관이 없다.
그런데 이 여자, 일단 물어본다. 꼬치 꼬치 물어본다.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보다는 상대을 물어본다. 한 수 배운다.
그것은 조건을 따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어봐야지. 어떤 사람인가 물어봐야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입으로 정의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자신을 설명할때의 그의 모습을 본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의 삶이 어땠는지 추측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품이 삐져 나올만큼 지루한 얘기들의 연속이었다. 연희는 출신학교, 직업, 형제 관계 등을 묻고 있었다.”
연희는 그런 여자구나.
그러보니, 학교 직업,형제관계를 물으며, 그 사람의 위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위치에 있는 그가 자신을 말할 때 어떤 모습으로 말하는지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길가에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더라도 자신있게 말하는 것과
높은 자리에 있으나 그 자리를 부족하다고 절망스럽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묻는다는 것은 답을 듣는 것이라기보다 답을 말하는 사람을 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클 때 착한 여자는 조건을 따지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택해야 한다고 그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선택하게 되었을때 모든 사람들은 뒤엎었었다.
가장 위험한 기준은 사랑이라고...기준이 없으므로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대사를 듣는 순간, 그리고 이 대사를 내 입으로 말하는 순간,
난 묻는다는 것에 대해 그 기준점을 대답하는 사람의 입모양으로 옮긴다.
수월하다.
그것은 어릴때의 기준에도 커서 제시해준 기준에도 어느정도 발을 걸고 있는 듯 싶다.
(이런 생각을 처음해보다니....)
“콩나물 비빔밥이요 -보기보다 소박하시네요.”
바보다.
연희가 콩나물비빔밥을 좋아하는 것, 그것은 연희가 그를 사랑하고 함께 해도 된다는 건데..
경제력이 없는 준영이 사랑하지만, 열등감으로 연희를 잡지 못한다.
화려한 연희는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는 것. 바보.
연희와 준영이 헤어질 때 연희는 준영을 위해 콩나물비빔밥을 만든다.
하지만, 준영은 그 밥을 먹지 않고 라면을 먹는다.
그때 연희가 말한다.
"이 콩나물밥 두 그릇을 내가 어떻게 먹으라고..."
바보, 좀 나누어주지.. 그럼 끝나지 않을 수 있는데...
보기보다 소박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건데....
그런 내가 그를 만나서 그 모습이 튀어나오는 건데...
“어차피 곯아 떨어질 게 뻔하니까 택시 타나 여관 가나 마찬가지일 것 같네요.”
.그들은 만난 날 같이 잔다.
그럴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만나서 서로에게 필이 꽂히는 시간을 객관적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어떤 때는 단 한 번 스쳐가는 사람에게서 온 몸에 소름이 돋게 하는 냄새를 맡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몇 년을 옆에 있어도,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각각의 톱니바퀴를 가지고 돌고 있다.
뽀족한 톱니바퀴를 가지고 세상을 돌다보면, 톱니는 닳아진다. 자꾸만 닳아진다.
내게 맡는 톱니가 세상 어딘가에 있다.
그도 나를 만나지 못했으므로 세상에 제 살 깎으며 돌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그들은 다른 모습으로 깍아지고 있으니,
그런데 마주 친 것이다. 나의 톱니에 딱 맞는 다른 톱니 하나를 만난 것이다.
두 바퀴가 서로 맞게 끼이면, 돌아도 돌아도 힘이 들지 않는다.
돌아가는데 가속이 붙는다. 그 가속으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시계를 돌리기도 하고, 교회의 종을 치기도 한다.
그런 그들이 만났다.
이제 인정하려한다.
"니가 결혼한다면 그건 일종의 범죄가 아닐까? 너 같은 스타일이 신랑 하나만 바라 보고 평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럴까?
그런 여자가 결혼을 하면 범죄일까?
범죄를 저지르게 한 이는 준영이라고 생각한다. 연희는 참 많은 기회를 준다.
그의 자기중심적 생각, 혹 머리에 든 먹물이 여자에게 범죄를 저지르게 했다.
연희가 말했다.
이제는 무감각하다고, 좀 바쁠 뿐이라고 그저 결혼을 하고도 준영과의 이중생활을 하는 연희의 감정이 둔해지고 있다. 범죄에 대해서 둔해지고 있다.
솔직해질 때 답이 나온다.
엉켜져있음을 인정할 때, 줄을 끊어버리든, 아니면 줄을 풀든.. 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자신있어!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자신!"
들키지 않는 사랑, 난 싫다.
들키지 않아야 하는 사랑 싫다.
박하사탕처럼 한 입 넣고 말을 하면, 박하향이 옆사람의 코끝으로 전해지듯.
내 달콤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는 것.
그럴 수 없다면, 들키지 않아야 할 사랑을 해야 한다면, 아직 난 no thanks다.
꿈꾸자,,, 박하향 나는 나를...
“너 그렇게 가고나면 내 기분은 어떤줄 알어? 엿같애!
니 슬리퍼, 배게에 묻은 니 머리카락.. 정말 기분 드럽다구! ”
흔적,
누군가의 흔적, 말하기 싫어진다.
흔적, 보이는 흔적, 보이지 않는 흔적....
시간이 지나니, 슬리퍼도 없어지고, 머리카락도 없어지더라.
하지만, 그릇에 담긴 하얀 밥은 여전히 하얀 밥이고,
면도를 해도 계속 나는 내 다리의 털도 그대로고,
긴장하면 만지는 머리칼도 그대로이고.
한숨도 그대로 쉬고 있고,,,
흔적,,, 그 흔적 때문에 살기도 하고 못 살기도 한다.
“이제 찾아오지마”
무엇때문에, 누구때문에, 왜
하고 묻는다면, 그리고 솔직하라고 말한다면, 또 그가 솔직히 이야기 한다면,
나 때문이고, 나의 욕망때문이고, 나의 자존심때문이고,
모두가 그렇게 말한 그 자신때문이다.
사랑이 찾아오면,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를 고스란히 저당잡혀버렸으면 좋겠다..
나를 잘 지켜줄 전당포에다 나를 보낼 것이다.
맡겨둘 것이다. 어느 날 전당포주인은 매일 닦아서 반짝거리는 나를 꺼내 줄 것이다.
꿈이 야무진가?
혹은 야무지기도, 혹은 당연하기도, 혹은 아무렇지도 않기도....
그런거..
톱니바퀴니까....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이렇게 멋대로 보았다.
내 맘대로 보았다.
며칠째 본 영화중에서 가장 맘에 안들었는데, 긴 이야기를 하고 나니,
가장 편안한 영화인 듯하기도 하다.
그런 만남.
'보는대로 映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내 마음속의 지우개 (0) | 2005.11.04 |
---|---|
[영화]연애의 목적 (0) | 2005.11.03 |
[영화]스캔들, 남여상열지사 (0) | 2005.11.02 |
[영화]다시 카페 뤼미에르 (0) | 2005.10.22 |
[영화] 카페 뤼미에르 (0) | 2005.10.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