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뤼미에르.
동숭아트센터를 나온 11시에 가까운 시간, 그 때 난 아주 많이 차분하다.
카페 뤼미에르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맘의 안정을 찾은 듯이 감정의 곡선이 안정되어 있었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영화다.
하지메와 요코
하지메는 가업인 고서점을 운영하며, 취미로 전철의 소음을 녹음하고, 전철을 모티브로 한 일러스트를 취미로 하고 있다. 그의 친구 요코 프리랜서 작가, 대만여행에서 임신을 해서 돌아온다.
결혼할 생각은 없다.
친구인 그들,
요코가 작품자료를 구할 때 하지메는 조용하지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
하지만, 요코의 임신 소식을 들은 하지메는 조용히 흔들린다. 좋아하니까...
이내 차분히 요코를 도와준다.
요코의 부모님.
말없이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 그 저변에 딸에 대한 안타까운 불안함과 믿음이 깔려있다.
새엄마 또한 그저 엄마다.
딸의 임신을 알고, 애써 태연한 딸을 애써 태연히 견딘다.
난, 이 딸과 부모님의 장면에서 어찌 저리도 나와 닮았을까?
우리 아버지와 저 아버지는 어찌 저리 닮았을까?
요코의 무대책은 나와 어찌 저리 닮았을까?
영화 전체 중의 한 부분인 가족 장면에서
마치 영화의 전체가 부모와 딸 이야기인듯 확대되어 보이는 느낌도 받았다.
잠시 반성.... 요코처럼 담담히 그저 그렇게 대하는 거 괜찮아보였다.
-잠시 딴 소리-
일본이라는 나라. 카메라는 가깝지 않은데 그 나라는 가까이 들여다 본 느낌이다.
이 가족부분에서 더욱 더 그랬다.
영화보기는 나에게 세상보기다.
남들이 사는 모양보기, 그래서 내가 사는 방법도 같이 보기
외국여행하기, 외국이라고는 한군데도 가보지 못한 내가 세상구경을 하는 유일한 통로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은 그 나라도 카메라에 잘 담는다.
이 영화도 일본을 담아놓았다. 동경이라는 곳을 잘 챙겨 담아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도 잘 챙겨 담아놓았다.
그런 사람들이었구나... 하며 봤다
-바로 위의 사진은 필름 삭제분이다, 느낌 좋은데..-
다시 그들
사랑을 하는 방법은
감독이 카메라 앵글을 대는 법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메는 결코 요코를 향해 달리지 않는다.
그저 요코가 도움을 구하면 최선을 다해 구한다. 하지만 열과 성을 다한 티는 내지 않는다.
요코 또한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지만,
하지메에게 담담히 친구니까 담담히 이야기한다. 달라질 건 없다.
그저 옆에 있는, 어느 때고 전화할 수 있는,
감기가 걸려 아프면 제 옆에 두고도 잠을 더 잘 수 있는 그런 친구다.
둘은 덤비지 않는다.
뛰지 않는다.
그냥 그들의 자리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서로의 자리를 마련해간다.
사랑이란, 뜨거울 수도 있지만, 그리고 온세상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저 빈자리일수도 있는 것이다.
꽉 찬 세상에 비어진 자리가 사랑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끝이 날 때까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따라갈 뿐이다.
감독의 카메라 (대만감독의 일본보기)
이들의 사랑을 만드는 법이 그대로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법이 된다.
사실주의, 완전한 리얼리티다.
지금 현재의 동경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줌 없다.
딱, 감독의 몸을 움직여 찍을 수 있는 반경 그대로의 거리이다.
카메라의 일정한 거리는 영화 전체를 지배해 아무도 흥분시키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다가가는 앵글도 마찬가지이다.
클로즈업은 없다. 화면 교차도 없다.
그저 딱 관찰하기 좋은 거리에 카메라를 둔다.
카메라의 높이
보는 이의 키높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높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지도 않고, 위에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우리가 그저 나 아닌 세상을 볼 때의 그 높이이다.
거슬림이 없다. 그냥 가만히 그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높이인 것이다.
그들이 영화에서 하는 일. 그저 생활이다.
밥을 먹는다. 몇 번을 먹는다. 식당에서 먹는 밥은 딱 한번 국수집이 전부다.
전철, 기차.. 일본의 지금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멋진 장면을 꼽으라면, 한 폭의 그림같은 장면을 꼽으라면,
철로들이 교차하는 모습,
그 위를 달리는 기차들이 교차하는 모습,
그리고 그 소리.
영화가 예술인 이유는, 그 한 장면을 잘라 두어도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속도가 일정하고 높이가 일정하고, 주인공의 목소리 톤이 일정하고...
모든 것이 수평인 영화.
영화음악 없다.
마지막 자막이 흐를때 나오는 여주인공의 一心案(히토시안)이 전부이다.
높낮이가 있다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전철들이다. 그리고 그 전철들이 내는 소리다.
그저 그것이 이 영화의 액센트이다.
이 남자배우.
이름이 아사노 타다노부, 어찌 그리 멋진지...
모자를 벗은 댕기머리로 고서점에 앉아 있을 때의 모습과
비니를 쓰고 녹음기를 들고 전철 소리를 녹음할때의 모습과
저렇게 무대인사를 할 때의 모습이 어찌 그리 다른지...
못생긴 그에게 반했다.
그를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더니, 작년에 상영한 [밝은 미래]의 선배역으로 나왔었다.
그때는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모습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모습이다. 그 안에 언뜻 보이는 카리스마..ㅎㅎ
일본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구나.
이 영화에 나오는 전철 일러스트 작업을 그가 실제 한 것 이란다.
(내가 멋지다를 몇 번 한거지?)
이 여자배우.
히토토 요, 가수란다. 그래서 주제곡도 부른게지. 담담하고 무심한 듯 한 연기를 잘도 한다.
(사실은 우리나라의 배두나가 했으면 더 잘 어울렸을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흐트러진 듯, 정리된 그의 연기나 스타일.
무엇보다 난 이 배우의 캐릭터가 멋졌다.
내가 닮고 싶은 캐릭터다.
담담히 그저 나가는 그런 여자의 모습이다.
왜? 어떻게? 이런 것은 이 여자에겐 없다.
그저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것만 생각한다.
담담히 나가는...
'왜 그가 내옆에 있지?' 아님 '그가 옆에 없으면?'
이런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가 내 옆에 있군! 그가 있으니 좋군! 그에게 할 말이 있어. 찾아야 겠군!'
그게 모두다.
매일 내가 왜 여기 서 있지? 하고 묻는 나,
난 그녀가 닮고 싶다.
-프랑스판, 그리고 일본판 영화 포스터-
개인적으로 프랑스판 창밖으로 보이는 철로그림이 참 좋았다.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저 철로를 찍기 위해서다.
저 철로그림파일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극장안에서 사진 촬영 금지지만, 난 저 철로를 찍으러 갈 것이다.)
오늘도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 후레쉬 죽이고 한 컷 찍었다.
"어른스런 표정으로 돌아와" (잘 안 보이나?)
이 영화에서 내게 한 마지막 대사라고 생각했다.
또 보고 싶은 영화 [카페 뤼미에르] 간만에 아주 좋았다.
이 뿌듯함! 그리고 텅빈 것 같은 개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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