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했다. 7
"밝음은 어둠을 더욱 어둡게 함으로 진정 밝음이 되는거야."
밝음과 어둠
세상을 실눈뜨고 보면 딱 그렇게 두가지의 종류인지도 모른다
원래 그 가운데란 없는 것이어서
긍적적 의미에서의 중용이라는 말이 나오고
부정적 의미에서의 회색인이 나오는가보다
그렇다면 밝고 어둠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밝음이 원래부터 존재하였던 것일까?
어둠이 원래부터 존재하였던 것일까?
그것은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의 논쟁과 일맥상통하지 싶다
그가 말했다.
"밝음은 어둠을 더욱 어둡게 함으로 진정 밝음이 되는거야"
그렇다면, 그의 말대로라면
밝음이 원래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하얗고 환한 곳에 우리의 손길이 닿고 닿고 하면서 어둠이 되는 그런 거...
이건 좀 부정적인 의미인 듯 싶다
바로 어둠은 손때와 같다는 말이 아닌가.
내가 사람이 만져서 자꾸 만져서 어둡게 되는 것
그 어둠때문에 원래 가졌던 바탕이 되는 밝음이 점점 자리를 잃게 되는 것
그런 것인가? 그가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인가?
그가 말했다.
"밝음은 어둠을 더욱 어둡게 함으로 진정 밝음이 되는거야."
그렇다면 그의 말대로라면
난 또 이렇게 생각해본다.
어둠의 존재는 밝음을 더욱 밝게 하는 희생자로서의 어둠이다.
하얀 도화지에 스케치를 하면서, 그림자를 그리고 빛의 뒷면을 검은 연필로 메꾼다.
밝음이라하기엔 아직은 아닌 도화지가 검은 연필로 면을 메꾸자 빛이 들어앉는다
어둠은 밝음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에 주로 나오는 이야기
무지 무지 가난한 집
아버지는 술주정뱅이, 어머니는 남의집 품앗이, 줄줄이 달린 동생들...
그 사이에 입신양명한 큰 아들
소위 개천에서 용이 난 케이스
그런 사람은 빛을 받는다.
사회로부터 이슈가 된다. 그의 성공에 사람들은 포커스를 맞춘다.
맞추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가 어떻게 노력했나보다는 그의 어둔 환경을 좀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만 하면.
그는 빛이 난다.
그의 부모와 형제들이 좀 더 어둠이 되어주면 그는 더욱 더 빛이 난다.
그가 말했다,.
"밝음은 어둠을 더욱 어둡게 함으로 진정 밝음이 되는거야."
그가 나에게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나에게 원하는 것은 어둠일까 밝음일까?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난 무엇을 택할 것인가...
밝음도 어둠도 서로에게 빛을 지지 않고서는 온전할 수 없다.
서로에게 철저히 등을 기대지 않고는 회색분자로 그냥 삶을 연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다.
내가 삶을 살아서, 나의 하얀 밝음 위에 때를 묻히고 있어 잔혹 드러나 보이는 밝음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밝음을 위해 내가 어두워지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어둠을 딛고 내가 더욱 밝아지는 것..
그것들, 나의 능력의 문제, 선택의 문제이다.
다른이야기다.
그럼 지금까지의 삶을 계산 두드려보면 난 이 많은 경우의 수중에 어느 것에 가까운 것일까...
우리의 삶은 둥글다.
구를 데생하는 것과 같다.
둥글 둥글한 구는 사방이 같다.
다만 빛과 어둠이 있어, 동그란 것이 된다.
난, 내 삶은 세상이라는 큰 구의 어디에 있지?
빛이 꽂히는 곳
아니면 빛의 반대편
아니면, 빛과 어둠의 경계
아님 그냥 세상이라는 구의 그림자...
그가 말했다.
"밝음은 어둠을 더욱 어둡게 함으로 진정 밝음이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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