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했다
"세상은 다섯가지야! 어둠 보통 밝음 그림자 반사광 이렇게 ..."
-어둠-
많이 어둡다
그건 검다는 것 영어로는 dark 다
그런데 검은 것도 dark도 아니다.
그에게 물었다
"어둠 말고 다른 말은 없어?"
"어둠은 그냥 어둡다고 하는거야!"
"그런 말말고 좀 더 구체적인 말 없냐구?"
"......., 없어! 그냥 어둡다고 말해."
그가 그렇게 말한다.
어둠은 검은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검은 크레파스로 빈틈없이 칠하면 어둠이 되나? 아니다
어둠은.....
어둠은 자꾸 만져줘야만 한다
연필을 들고 어둠을 그린다
어둠은 한번 그려도 안된다.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자꾸 그려야 한다
아주 고르게 자꾸 그려야 한다.
정말 어둠은 빛을 가지고 있다.
검게 덫칠을 하다보면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주 환한 곳에는 손이 갈 필요가 없다. 내버려두면 내가 손이 가지 않더라도
빛이라는 것이 와서 저절로 보듬어준다
빛은 밝은 것을 만들기도 하지만, 빛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것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어둠은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어둔 사람도 어둔 그림자도 어둔 그림도 어둔 것들은 모두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어둔 것들을 어루만지면 제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스스로 發光을 하는 것이다.
어둠을 어루만져 주면 빛을 내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만져주어야 한다. 제 색으로 끊임없이 보듬어주면 제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의심스럽다면 연필을 가지고 어둠을 그려보라
의심스러우면 그림자 위에 그림자를 얹어보라
어둠이 스스로 發光하는 것이 보일 것이다
-보통-
너를 뭐라고 해야 하니?
보통? 너를 뭐라고 말해야 하니?
갑자기 짜장면이 생각난다면, 너무 생뚱 맞은거지.
그런데, 보통이라는 말을 하자말자 난 외치고 싶다.
"짜장 보통 하나요!"
보통인 짜장 한 그릇을 먹으면 딱 좋다.
더 배가 부르지도 않고, 배가 고프지도 않고 한 끼 딱 좋은 양이다.
물론 중국집에 따라 그 양이 많이 다르다.
난 중국집을 잘 선택해야 한다
나와 적당한 양의 궁합이 맍는 그런 집을 단골삼아 소리질러야 한다
아무데나 가서 "보통' 이라고 외친다고 보통 짜장면이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세상은 보통이 분명히 있다.
보통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난 저 집에 가면 보통이었다가, 이 집에 가면 보통보다 모자라다가,
또 다른 집에 가면 보통보다 많다.
난 항상 꿈꾼다
내가 보통으로 여겨지는 그런 곳에서 짜장을 시켜 먹기를 꿈꾼다.
짜장 보통 한 그릇 시키고 딱이네 하고 콧노래가 나올 그런 중국집 하나 단골로 삼고 싶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이니?
나 짜장 보통 한 그릇 먹고 싶어.
그런 집 아니?
-밝음-
세상엔 밝음이 분명히 있다.
내가 아는 밝음은 백화점이다.
난 백화점에 일년에 몇 번을 갈까?
생각해보면, 아마 지난 일년동안 한 두번 갔으려나... 그 곳은 밝다. 아주 밝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도 밝다.
그들은 썬그라스를 사고 양산을 사고, 옷을 사고, 음식코너에서 반찬을 사고
그 옆에 있는 식당가에서 밥을 먹는다.
그들은 밝음이다.
밝음이라고 말하는 순간 떠오르는 것이 백화점이다.
왜 백화점이 미리 떠오르지?
밝음 사이에 보이는 어둠
밝음에 대동하는 지지세력이 분명히 있다.
밝음은 절대 혼자 있지 않는다.
어둠은 홀로 어둠의 자리를 지키지만, 밝음은 절대 혼자 있지 않는다.
밝음은 그림자를 동반하고 티끌을 동반한다.
밝음을 받쳐 줄 것이 필요하다.
그들을 받쳐주어야 한다.
내가 그들을 지금 받치고 있는 것인가.
난 분명 밝음을 보았다.
그 환한 화운데이션을 바르고, 꽃프린트 요란한 옷을 입은 그런 여자들이 많이 있는 곳
그리고 불빛들.... 그 사이에서 걸어가고 있는 나.
난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그림자가 되는 듯 하다.
난 백화점일 가기 싫다.
누군가의 보조가 싫으니까....그렇다고 딴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밝음
그 존재만으로도 열등감이 느껴지는 그 명도.... 그 한계선은 어디지?
-그림자-
동해 울진에서 강릉방향으로 가다보면, 봉평이라는 곳이 나온다.
별 다를 것 없는 작은 해수욕장이다
그 곳에서 난 나의 그림자를 보았었다
겨울바다를 걷고 있었다
무지 무지 춥고 바람은 불고 도무지 어찌 할 바 없는 추운 날
그렇게 추운 날 태양은 떠 있었다
분명히 떠 있었다
추운 날은 몸을 움추리고 머리를 땅에 박는다
고개를 숙이고 그러고도 바다에 왔다고 냄새라도 하면서 코를 벌름거리고 있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내 발아래 그림자가 있었다
금빛 모래 위에 아주 검은 그림자가 내 발에 붙어있는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해가 떠 있더군
해가 나의 그림자를 만들어놓았던 거로군
그것도 무지 무지 선명한 나의 그림자를 만들어 놓았던거다
난 분명 슬펐었다
그런 날 나의 그림자를 본다는 것은 새삼스러우면서도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펄쩍펄쩍 뛰어도 따라붙는 그림자다
해가 떠 있는 한 그림자는 붙어있다
이순간 해는 뭘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언제나 관찰자의 모습으로 해는 있다
해는 나에게 고무줄하나를 연결시켜 놓고
마치 요요게임을 하듯 나를 튕겼다 당겼다 하는 그런 존재라면 착각일까..
아무튼 난 그런 해때문에 생긴 나의 그림자를 봤다
나와 해 사이에는 공간이 있었다
공간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난 공간 안에서 움직이며 그림자는 실제 그 공간에 존재한다
공간은 내가 건너온 시간이다
시간이 없다면 그림자가 있을리 만문하다
난 나의 그림자를 보면서 내가 지나 온 시간이 이 곳 공간과 동일시 되었다
시간은 공간속에서 흐르는 것
시간과 공간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나와 그림자
나의 그림자 짙게 드리워진 그 봉평 모랫벌
해가 서로 넘어가면서 그림자는 더욱 길어진다
살면 살수록 길어지는 그림자.
길어지고 길어지고 그러다가 더는 검은 빛이 닳아 없어지면 사라지고 마는 그런 그림자를 그 곳에서 보았다.
나의 그림자위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포개어진다
그림자 위의 그림자
그것은 완전한 만남처럼 보인다
평면 위에서 합일되는 것이니까
난 돌아섰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그림자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미끈하게 빠져나왔다
내 몸에는 빠져나온 흔적이 남아있지만, 나의 그림자는 언제나 온전히 나의 모습이다.
태양이 만들어놓은 나의 모습은 항상 변하지 않는다
그림자 그대로 그 모습으로 있다
그림자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그저 자라다 자라다,,, 그리고 닳아지다 닳아지다 사라지는 것이다
그림자 같은 삶을 시간과 공간안에 두고 싶다
무채색 그림자
그 바다에서 본 나의 그림자가 생각났다
어쩌면 가장 나다운 모습, 내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의 의도 그대로인 그림자
결국 난 내가 살아가야 할 모델을 항상 갖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나가야 할 샘플을 항상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반사광-
"어느 쪽이 밝을까요?"
"해가 비치는 쪽요."
"어느 쪽이 부드러울까요?"
"반대쪽요."
가장 어두워야 할 부분이 밝다
그 곳이 반사광지점이다
완전히 빛으로 부터 차단된 그곳이 환하다
그 곳에 땅에 붙어있기만 하다면 환하다
빛은 그 반대편을 허락하지 않는다
영락없이 그 기운을 거두어가버린다
땅은 그 빛을 머금었다가 어둔 나에게 그 빛을 나누어준다
난 해와 등지고 서있지만, 땅이 나누어주는 그 빛으로 삶을 유지한다
가라앉은 숨을 쉰다
내 속에는 땅으로부터 받은 따스한 반사광이 있다
산다
그가 말했다
"세상은 다섯가지야! 어둠 보통 밝음 그림자 반사광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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