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8.6
내일은 도명산을 갈 것입니다.
등반은 하지 않고, 아래 계곡 어디 즈음에 자리하고 앉아 책을 읽을 것입니다.
[나눔...]
모두들 정상을 오르겠지만, 난 그들과 함께 할 생각이 없습니다.
사람은 혼자 있고 싶을때도 있으니깐요.
그 곳까지 나를 데려다 줄 버스가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산악회의 좋은 점을 그런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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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7. 일
이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새벽에 일어났어야 하는데, 또 늦잠.
순간 갈등을 했다. 그냥 푹 잠이나 자버려? 아니면 가?
극기!!!!
그 이유가 힘들다는 것으로 포기하지는 말자. 격문처럼 가슴에 쾅 박힌다.
일어났다. 세수를 했다. 로션만 바른다. 변장용 안경과 두건을 쓴다. 그리고 배낭을 맨다.
아차!!!! 책을 가지고 가야 계곡에서 읽지... 절대 잊으면 안돼..
책 한 권을 챙깁니다. 그리고 택시..전철을 넘나들며
그랬던 나는, 추호도 등산의 계획이 없던 나는, 산을 오르게 되었다.
왜냐면, 유유자적 놀자고 생각했던 계곡이 생각과는 다르게 생겼다.
내가 원한 계곡은 대야산계곡처럼 산에 파묻혀있어서 사람들과는 떨어진 밀실 같은 곳을 원했는데, 이건 거의 바다수준이다. 뻥 뚫렸다.
안되겠다.에라 그냥 올라가자. 올라보지 뭐!
계획은 언제나 변하는거야. 꼭 내 마음처럼 언제나 변할 수 있는거야.
-내가 만난 복병-
이왕 오르기로 했다.
그 결심을 하는 순간, 도명산?
이 곳이 어떤 곳이지. 낮은 산이다. 그럼 등산코스는 짧다.
열나게 올라가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한 번 부스러지도록 올라가보는거야,
무지 더운 여름날에 움직여서 땀을 흘려보는거야. 해 보자!!!!
그 곳에서 내가 만난 복병이야기다.
1. 호흡
호흡이 왜 복병이 되냐고? 그렇게 묻는다면,
나와 함께 한 호흡은 언제나 내 속에 숨어있는 나의 적군이기도 아군이기도 한 그런 복병이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 호흡이다.
그런데 내쉬고 들이쉬는 일이 산을 오를때면 너무 힘이 든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도 모르다가
산에 오르면 그동안 내가 숨을 쉬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에겐 거추장스러운 호흡이다.
들숨과 날숨!
숨이 나를 힘들게 한다. 산을 오르는 다리가 아니라 숨이 나를 힘들게 한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난 호흡을 거칠게 해댄다.
숨은 가슴에 꽉 차 오릅니다.
거칠고 크게 들이마신 숨은 내 속에 들어가 가슴이 터질 듯 부풀게 만든다.
가슴 속에 들어찬 숨을 내쉬는 것이 뭐 어려우랴마는 그 순간은 요령이 필요하다.
내쉬는 것을 제대로 잘 해야 내 가슴이 안정이 됩니다.
후~ 하고 내뱉는다고 순간 뱉는만큼의 숨이 빠져나가지는 않는다.
가슴속에 갇혀있던 숨을 조금씩 조금씩 덜어내어, 천천히 소리없이 내보내야 합니다.
그때는 내쉬는 숨이 천천히 나누듯이 뱉는 것 만큼,
간간히 들이마시는 숨은 짧게 작게 입니다.
가슴이 부풀면 가슴이 무지 아프다. 터질 듯이 아프다. 따갑기도 하다.
나누어 나누어 내쉬는 숨, 숨쉬는 어려움을 가슴이 찢어지도록 느끼며 산을 오른다.
숨쉬는 것을 느끼고 또 조절에 들어가면.
이제 곧 나누어 내쉬는 요령을 마치 누군가에게 배운 듯이 익숙해져간다.
아마 도명산 어느 산자락에 내 스승이 있어 문득 가르쳐 준 듯
호흡이 고르게 정리되었다.
호흡이 정리가 되어, 난 여느때와 같이 전인권의 [새야]를 귀에 꽂는다.
그리고 산을 올라간다. 고른 숨을 쉬면서....
새
이제 날아가리 너의 하늘로
너만의 아프지 않을 세상으로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날아가라
가슴 아프지 않는 곳으로
날아가라 뒤돌아보지 말고
날아가라 내 생각하지말고
날아가라 날아가라
언젠가는 널 반겨줄 그 자릴 위해
-전인권 3집 '새야'
2. 땀 구름 그리고 비
호흡이 정리되는 동안 땀은 줄줄 흘러내린다.
무지 더운 날의 산행.
땀. 땅만 보고 올라간다.
이제 숨은 골라졌지만, 더위가 그리고 땀이 정신을 쏙 빼간다.
땀이 흐르면 흐를수록 산행은 또 다시 힘이 들어진다. 그리고 쉬고 싶다. 너무 쉬고 싶다
하지만 쉴 수가 없다.
쉬면 일어서지 못할까봐,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될까봐.
쉬지 않고 올라간다.
올라가기만 하다보니 도명산 정상에 우뚝 선 바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정상이 보이는 순간 난 공중부양을 하듯 정상으로 날아간다.
정상에는 큰 바위가 있고 바위의 꼭대기는 서너 사람이 설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곳에 올라섰습니다.
이제 이번 산행의 가장 큰 복병이 등장합니다.
어찌 그리 산들은 멋진 것인지, 그리고 그 보다 더 멋진 것은
푸른 산 위로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풍경이다. 달려오고 있었다.
먹구름이 달려오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곧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달려오는 먹구름을 보면서 얼마쯤 후에 비를 뿌릴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비를 뿌릴까? 눈으로 기다린다.
곧 비가 내릴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세상은 캄캄해지면서 후둑거리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정상에 서있던 사람들은 모두 우의를 꺼내 입고 비를 피하는라 나무 아래로 들어갑니다.
나 무엇을 했을까?
기회는 찬스다!!!하고 부르짖으면서 이 기회에 비를 맞는거야.
다행히 내게는 우산도 우의도 없단 말이야,
난 준비된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많은 비를 맞는거야... 멋진 알르바이다.
원없이 비를 맞았다. 땀이 온 몸을 덮던 그 시간은 어디로 갔는지.
비는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고 떨어지는 살이 아프도록 비는 내리꽂힌다.
동료들을 기다리지 않고 하산하기로 한다.
하산길에도 비는 계속 된다.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땀으로 범벅이 된 나, 그리고 8월의 더위. 그것은 드러나 있는 적군입니다.
그리고 내 몸은 방어무기입니다.
그런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비는 더위와 땀을 순식간에 물리치고 나를 완전 업시켜주었다.
산이 아니라 하늘에서 보내 준 비가 나를 순간 딴 세상으로 인도해준다.
시원하고 깨끗한 세상으로 ....
3. 도명산의 정상풍경
도명산을 다녀온 난 말할 수 있다.
멋진 풍경을 가진 산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 도명산이 멋진 산이었을까? 산행코스는 짧았고. 산행로는 마치 뒤산에서 많이 본 듯한 길인데...
무엇이 멋지다는 걸까?
순전히 내 생각에는 친구를 잘 둔 산이라는 생각을 했다.
도명산안에는 계곡은 없었으나, 그 아래로 너른 화양계곡이 휘감고 있었고
저 멀리 보이는 속리산의 줄기의 장엄한 모습이 마주하고 있었다.
도명산에 서서 도명산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발 아래에 있는 도명산은 그냥 땅이고 흙이고 돌이다.
하지만 도명산에 서서 보는 도명산의 이웃들은 멋지다.
누구를 주위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덩달아 멋있어질 수도 있는 것, 비단 산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난 정상에서 마주 보이는 멋진 산들과 계곡들과 바위들을 보면서
나에게도 그런 산같은 친구, 계곡같은 친구, 바위같은 친구가 있어서
나를 만나고 나를 디디고 선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멋진 세상을 만났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욕심이겠지만, 어쩌면 지금 내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세번째 복병은 도명산 정상이 내게 보여준 그의 친구들이었다.
4. 달리기
어느정도 가파른 내리막길이 지나고 난 뛰었다.
솔직히 힘이 남아돌아서 난 뛰었다. 완전 에너자이저였다.
도명산 정상에서 내가 맞은 비는 단순히 비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늘이 내게 준 에너지일지도 모른다.ㅎㅎ
에너지를 충분히 받은 난, 비 온 뒤의 산내음을 맡으며 뛰었다.
그 느낌...
뒤에서 배낭은 덜컥거리고, 아래로 비맞은 흙은 미끄러운데.
난 뛰면서 게임을 하듯 돌들을 골라 디딘다. 순간 순발력이다.
뛴다는 것은 오른 발과 왼발의 교차가 빠르다는 것일텐데. 그 짧은 순간 다음에 디딜 곳을 정해야 한다. 순간 잘 못 판단을 하면 넘어지는 것이다. 꺾이는 것이다.
난 그 스릴을 즐기며 산에서 뛰었다. 그 긴장감.... 멋진 복병이었다.
이 복병은 내가 나를 위해 만든 나에게 주는 지원군 복병이다.
달리기 뒤 계곡으로 내려가 온 다리에 묻은 흙들을 깨끗이 씻어냈다. 개운하게.....
이상으로 도명산 복병이야기 끝이다.
도명산을 오를 생각이 없었지만, 난 그 곳을 올랐다.
그리고 수십번의 산행 중에 멋진 산행으로 꼽을 만한 ,,, 아니 가장 멋진 풍경을 본 것으로 치면
최고였던 그 정상에서 내가 본 것!
생각지도 않았던 것
어느 순간 나의 의지가 아니라, 무엇에 끌린 듯이 만나게 된 것
그것은 나라는 것에 하찮음!!! (?)
내가 누군가에 노출되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번 산행은 그 누군가가 오랜만에 나에게 보너스를 지급한 듯한 그런 날이었다.
그 누군가가 나에게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보너스를 준 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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