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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휴가]안동찜닭

by 발비(發飛) 2005. 7. 20.
부석사에서 안동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동창인 친구와 같이 안동 구시장 찜닭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둘은 계산을 합니다.
이 곳에서 찜닭을 먹었던 최후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참 오래되었습니다.
기분이 최고로 업이 됩니다.
각자 움직이기는 했지만, 둘이 같이 안동을 오기는 정말 오랜만이니까요.
나의 휴가에 기꺼이 동행해 준 친구.
그녀와 전 건배를 했습니다.
그것도
안동소주의 도수를 낮춰 새로 나왔다는 21도 안동소주로 건배를 했습니다.
너무 독해서 마실 엄두도 못내던 안동소주를
메인 메뉴인 찜닭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그 동안을 참지 못하고.
"캬악"거리고 마십니다.
"캬악"은 둘의 싸인입니다.
잔이 빌 때만 외치는 소리로 약속한 감탄사입니다.
"캬악"을 몇 번 했을까요?
비밀입니다.
 
 
 
드디어 찜닭이 나왔습니다.
저희들의 주문내용입니다.
"둘이서 먹을 거니깐 당면은 조금만 넣어주세요"
그냥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 양이 정말 장난이 아니거든요.
적은 양을 주문한 결과가 아래 사진입니다.
감자, 양파, 당근, 건고추... 그리고 닭고기. 당면
그것들이 어우러진 맛.
서울에서 안동찜닭을 먹었습니다.
그것은 안동찜닭이 아니었기때문에 딱 한 번만 먹고 끝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과 달라지지도 않은 그 집에서 흥분된 마음으로 야식을 먹습니다.

 
 
안동찜닭 집에 가면 다락방이 있습니다.
절대 허리를 펴지 못하는 낮은 천정의 다락방,
그 곳 천정에는 온통 낙서가 가득합니다.
볼펜을 꺼내서 낙서 한 판을 보태고  먹고 마십니다.

 
 
지금처럼 하얀 쟁반이 아닙니다.
양은으로 만든 음식을 나르는 큰 쟁반(그 때는 오봉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너른 양은 쟁반에 지금의 양보다 두배쯤은 되는 찜닭을 시키면,
식사를 하지 않은 네명쯤이 배를 두드리면서 먹었습니다.
어느 테이블이든 두마리를 주문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당면 많이 넣어주세요."
사람이 적으면 "당면 조금만 넣어주세요."
그것이면 양의 조절이 끝납니다.
그래서 모두들 한 마리만 시킵니다.
 
그 곳에서는 기분 좋은 웃음보다는 화난 음성들이 더 많이 들렸습니다.
허름한 시장 뒷골목에서 먹는 소주와 양 많은 안주를 두고 하는 이야기는
삶의 찬양일 리가 없습니다.
쓰린 이야기 천지입니다.
실연한 친구의 욕하는 소리가 들렸고,
삶이 오직 장미빛 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순간, 불안한 떨림의 소리가 들렸고
세상으로 똑바로 들어가기가 두려워 내쉬던 거친 숨소리들이 들렸고,
돌아서 가기는 비겁하게 느껴져 숨죽이느라 때로 몰아쉬던 숨소리가 들렸고,
그래서 그 곳은 우리들의 온갖 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곳입니다.
사람들이 그 곳을 추억한다면,
그것은 찜닭을 먹으면서
그 사이사이에 들이쉬고 내쉬었던 갖가지의 숨소리를 기억하는 것일 겁니다.
그 곳입니다.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있을 일입니다.
 
휴가 2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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