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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휴가]밤나무길신부님

by 발비(發飛) 2005. 7. 23.
 
밤나무길 신부님입니다.
 
 
 
안톤 가스탐비드
한상덕
 
하지만, 저에게는 밤나무길신부님이십니다.
그 분의 프랑스 이름의 뜻이 밤나무길이랍니다.
그래서 전 그 분을 밤나무길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디로 떠나야 할 지
떠날만한 곳도 겁쟁이에게는 없었습니다.
무조건 가장 시골에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공식적으로 머물 수 있는 곳
피정이라는 이름의 성지가 있었습니다.
사실 성당에 나가지 않은 지가 꽤 되었습니다. 지금두요...
하지만, 전 그 곳을 찾아갔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보름 동안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신정을 낀 날이었지요.
매일 4시 30분에 신부님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그 이외의 시간은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과 저 둘만의 미사시간.
어느 공소에서 지낸 크리스마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보름이라는 시간은 저에게 보약같았습니다.
멋진 시간이었지요.
그 곳에 밤나무길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이 곳이 신부님의 집입니다.
손수 지으신 집. 돌을 나르고 나무를 심고, 움직이지 않아야 할 것을 너무 잘 아시는 분

 
 
 
이번에 저는 우곡성지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신부님은 너무나 멋진 그 곳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아직 하시지 못하고
계시기에, 기록에 남겨두고 싶어서 ....
그리고 선물해 드리고 싶어서.
이 사진은 신부님컴의 바탕화면에 깔아드리고 왔습니다.
너무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가 머물렀던 성당건물입니다.

 
 
 
여름에는 수련원에 오는 학생들이 꽤 있지만,
겨울의 이곳은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곳입니다.
보름을 있는 동안 신부님의 프랑스 친구 3명 밖에는 다른 사람은 구경을 할 수 없는 곳이지요.
전 이번 휴가에, 이 계곡 바위에 쪼그리고 누워서 잠을 잤습니다.
동그란 바위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다가 굴러 떨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달게 잤습니다.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계곡의 물소리와 바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화의 기운.
그건 어느 곳에서도 누릴 수 없는 휴식이었습니다.
멋진 경치를 가진 곳은 무지 많습니다.
하지만, 마치 나무의 뿌리, 물의 뿌리 그리고 나의 뿌리가
모두 결이 고른 것처럼 나란히 누워있는 듯 한 느낌
내가 애쓰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는  그런 느낌.
평화였습니다.

 
 
성지에는 다리가 두 개 있습니다.
저 멀리 성당앞에 보이는 다리와 앞에 크게 보이는 다리.
하나는 밤의 다리이고 하나는 아침의 다리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부님이 키우는 "수라"라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이 곳 산에는 소나무만 있습니다.
소나무에 대해서 생각한 것도 이 곳에서 입니다.
소나무가 제 나이만큼의 껍질 두께를 가진다는 것도
휘어 휘어 올라간다는 것도
여리고 약한 가엾은 나무라는 것도
그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내색하지 않는다는 것도
매일 아침 이 다리를 건너 산에 올라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매일 소나무를 쓰다듬으면서 올라다녔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다리, 그 곳은 낮과 밤에 이용했습니다.
눈이 하얗게 내린 다리위에 걸터 앉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반찬은 김과 밥. 오직 그것 뿐
무지 추운 겨울 낮, 얼어붙은 계곡을 아래로 두고,
다리에 걸터앉아 내 다리를 흔들며 먹는 김말이 밥...
참 차가운데도 그 여운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오래도록 씹었던 밥의 단 맛,
밤이 되면,
별은 하늘 가득했습니다.
쏟아져내리는 별들을 올려다 보고 있으면, 내가 올라가고 있는 건지
별들이 내려오고 있는 것인지. 잘 알 수 는 없지만, 코앞에 있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노라면
세상은 없는 곳 같습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칠흙같이 어둡고
오직 하늘의 별만 보입니다.
검은 색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고
반짝인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금방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10년에 걸쳐서 만든 곳입니다.
계곡옆에 웅덩이를 깊이 파고 위에 구멍하나, 아래에 구멍하나를 뚫어두고
밤새 물을 받아 수영장에 물을 받고,
저녁이 되면 아래에 구멍을 열어 계곡으로 다시 물을 보내는 야외수영장까지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창고
산비둘기를 잡는 산비둘집.
참 다른 문화구나 하는 것도 많습니다.
다른 것들에게는 눈이 갑니다.
발냄새 지독한 치즈와 바케트로 아침을 드시고
점심은 김치에 고추장
저녁은 미역국.
거기다 소주 두 잔...
 
지난 두 번의 휴가에는 혼자서 지냈지만,
이번 휴가에는 사제관에서 지냈습니다.
일하시는 아주머니에게는 미안했지만, 숙식을 모두 해결하면서요.
좀 더 신부님의 일을 도와드릴 수 있어서 좋았구요.
신부님은 작게 도와드린 저에게 크게 고마워하시고
크게 고마워하시는 신부님에게 전 더욱 감사했습니다.
언제나 두 팔 벌리고 기다리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휴가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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