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4

by 발비(發飛) 2005. 6. 17.

카프스와 릴케가 4번의 편지를 교환하면서 이제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편지라는 것이 만나지도 않은 사람을 이렇게 가깝게도 하네요.

그리고 이들의 만남이 부럽네요.

릴케는 카프스와의 편지에서 하나도  정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말들을 남겼네요.

두드리며 참 좋았습니다.

이제부터 전 릴케가 카프스가 아니라 저한테 편지를 썼다고 생각하고,

한 마디 한 마디에 댓구해 나가겠습니다.

파란색은 릴케, 빨강색은 흐음.

 

 

 

브레멘 근교

보르프스베데에서

 

1903년 7월 16일

십여 일 전쯤에 저는 파리를 떠났습니다. 병들고 지쳐서 북쪽의 광활한 평야로 달려왔습니다. 평야의 광활함과 정적과 하늘이 다시금 저를 건강하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였습니다. 그러나 곧 오랜 장마가 계속되다가 오늘에갸 겨우 불안스럽게 바람이 불어대는 대지위로 하늘이 약간 개기 시작했습니다. 이 청명한 순간을 틈타서 당신께 안부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친애하는 카프스씨, 저는 당신의 편지에 오랫동안 답장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걸 잊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하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다른 편지 틈에서 눈에 띄면 다시금 읽게 되는 그런 편지였습니다. 저는 편지속에서 당신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가 있습니다. 그게 5월 2일자의 편지였는데 당신도 틀림없이 그걸 기억하고 계실겁니다. 지금처럼 멀리 덜어져 쓸쓸한 정적 속에서 그걸 읽으면, 삶에 대한 당시의 아름다운 배려가 파리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감동시킵니다. 파리라는 곳은 사물들을 뒤흔드는 요란스러운 소음때문에 모든 것의 음조와 울림이 달라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광대한 대지가 나를 둘러싸고 있으며, 바다로부터 실려온 바람이 그 위로 불어오고 있어서 느낌이 전연 다릅니다.

 

.그런 만남을 안다. 항상 누군가가  남아있는데, 그리고 그 사람으로부터 메일이나 소식을 받았는데, 그 사람과의 대화가 그냥 지나쳐버릴 것이 아니라면, 시간이 필요하다. 좀더 의미있는 만남을 위해서 가꾸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동안 그에게서 온 편지를 되뇌이고 되뇌이며, 자신의 말들을 정리한다. 나처럼 그도 그 편지가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나의 진심이 잘 전달되도록 열심히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시간은 지나게 된다. 내가 있는 곳이 그가 있는 곳과 다르다면, 멀리서라도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그가 누구든, 나와 만났건 아니건 간에 생각을 같이 한 사람이므로 지금 현재의 나를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릴케는 파리를 공유하고 싶었나보다. 난 가끔 이럴때 오해를 받기도 한다. 단지 공유하고 싶은 것인데, 때로는 딴 맘이나 있는 것처럼 덤비는 사람도 있다. 그럼 난 공유하기를 포기해야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은데... 그걸 못하기도 한다.

 

 마음 밑바닥에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고 있는 당신의 느낌이나 의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해답을 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아는데 왜 나의 느낌이나 의문을 상대에게서 찾으려고 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한번도 사람에게서 시원한 답을 얻은 적이 없는데, 그래도 나의 느낌이나 의문을 사람에게 묻게 된다. 내가 정상인가요? 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떠세요? 지금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 이런 의문들을 상대에게 묻는다. 나도 모르는 나를 상대가 알리가 없으면서, 정말 수도 없이 많이 그렇게 질문하는 나를 한심스러워하고 후회를 하면서도 난 묻는다. 자꾸 묻는다. 그들에세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는다.

"내가 누구죠? "하고 묻는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일지라도 잡힐 듯 말 듯 아련한 것이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할때는 언어의 오류에 빠지기 쉽기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현재 나의 눈이 안식을 취하고 있는 사물들과 비슷한 사물들에 의지하신다면 언제고 현실을 보실 것으로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만일 당신이 자연에 의지하여 그 자연의 소박함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것이긴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크고도 측량할 수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작은 사물들에 의지하시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도 사랑을 픔어 단순한 봉사자로서

비록 비약하게 보이는 것에라도 신뢰를 얻도록 애쓰신다면,

당신에게는 모든 것이 보다 쉽게 되고 통일을 간직하게 될 것이며 어떻게 되든  타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설명되지 않을 때 자신으로 설명하지 말고 보이는 것 중 안식을 취하고 있는 사물을 만나라. 와우~, 멋지다. 그렇다.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없을때 주위를 보면, 나를 당기는 무엇인가가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영락없이 그것이 내 마음이다. 난 그 사물을 자세히 들여다 보기만 하면 된다. 들어다볼때는 나를 알 필요도 없다. 나를 잊어버리고 그 사물만 본다. 사물이 샅샅이 보일 때 사물에게서 떨어져서 내가 무엇을 봤는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정리해본다. 무엇을 봤을까? 내가 왜 그것을 봤을까?

난 머리가 아프다. 왜 아픈지를 모르겠다. 한데 난 머리가 아프다. 그 때 주위를 살핀다. 사과가 있다. 사과의 무엇이 보이는지 본다. 사람의 주름들이 보인다. 주름이 아니라 주름처럼 보이는 여러색깔의 줄들이 보인다. 우리는 사과를 볼 때 빨간 사과라고 하지만, 빨간사과는 아니었다. 빨간 줄 사이에 연두색과 하얀 색과 그리고 갈색의 줄들이 가늘게 이어져 있다. 그렇구나 사과는 빨갛게 보이지만, 빨간색이 아니었구나 ... 그럼 난 ,... 난 사람들이 나를 보는 관점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누구는 나더러 결벽증이라고 하고, 누구는 나보고 헤픈 여자라고 하고, 누구는 나보고 순수하다고 하고 누구는 나더러 약았다고 한다. 사과에서 내가 본 것은 빨간색을 보고자 하는사람은 빨갛게만 보이지만 아닌 것이다. 사과가 다른 색을 갖고 있듯 나도 여러가지 색을 갖고 있는 것이다. 빨간 사과이면서 빨갛지 않은 사과를 보면서 난 흐음이면서 다른 흐음도 있는 것이다.

릴케가 그 이야기를 하는게 맞나? 아님 말고.... 맘대로 보는 릴케의 편지이다.

 

비록 깜짝 놀라 뒤로 주춤하는 오성으로는 불가능하더라도

당신의 깊숙한 의식과 각성 그리고 인식 속에서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으시며 무엇보다도 당신에게는 모든 것이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런 말을 듣고 싶다. 나에게도 누군가가 당신은 아직 젊으시며 무엇보다 당신에게는 모든 것이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난 그 소리가 듣고 싶다.

그렇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이건 아무리 길게 이야기해도 욕심일 뿐이다.

 

그러니 제가 감히 부탁드리는 것인데,

제발 당신의 마음 밑바닥에 도사린 미해결의 문제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그 문제 자체를 밀폐된 방이나 낯선 말로 써진 책처럼 하지 마십시요.

당신은 지금까지 그 해답을 갖고 살아보시지 않았으므로

아무리 해도 그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살면서 체험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겠다. 내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미해결책에 대한 문제를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라.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갈등과 응어리를 풀어야 한다. 체험이란 말은 왜 막 사는 것과 같이 들리는 것일까? 그 말이 왜 산전수전과 같은 말로 들리는 것일까? 분명 그런 뜻은 아닐건데, 왜 그렇게 들리는 걸까? 왜 망가지는 것으로 들리는 것일까?

뭔가 문제가 있다. 그렇게 듣고 있는 내가 문제가 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 난 체험의 길로 나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솔직하게 하는 말들도 체험이겠지. 뻔뻔해지는 체험연습

 

 

지금은 우선 그 문제 속에서 살아보십시요.

아마도 당신은 먼 장래일지라도 모르는 사이에 그 해답속에 들어가서 사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복되고 순수한 삶을 형태로서 조형하고 형상화할 가능성을 지니고 계실 겁니다. 그곳으로 자신을 이끌어 가십시오. 무엇이든 신뢰하여 그걸 받아들이십시오.

 

.무엇이든 신뢰하고 받아들이십시오, 난 이 말이 너무 좋다. 난 보이는대로 믿는 편이다.

그리고 느끼는대로 행동하려고 한다.

물론 성인은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아무리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머리를 써서 본 것대로 될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내가 이면을 보려하면 할수록 난 틀린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자체가 힘이 든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한다.

나에게 최면을 건다. 난 괜찮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판단은 적어도 누군에겐가 피해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 그리고 나의 주위의 환경들을 믿는다

사람이든 나무든 무엇이든,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본다. 바람이 불어 나무가 흔들리면 그냥 바람이 참 좋다. 너가 나에게 바람을 선물하는구나. 너도 모르게 나에게 선물을 주는구나 고맙다. 그리고 사람을 만난다. 이세상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 이유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누군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분명 이유가 있다. 싫어할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게 두면 되는 것이다. 맞지 않으면 그냥 두면 되고, 나와 이유가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그냥 받아들인다. 난 이해관계와 멀어진 사람이다. 나에게 누구도 이해관계를 계산할 리는 없다. 난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니깐 나에게 사람들은 계산을 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사람들이 .....나를 만나서 아무 생각도 안했으면 좋겠다, 그 현재만 서로에게 집중했으면 좋겠다. 그냥 그렇게 나를 이끌어 가고 싶다.

 

 

그게 당신의 의지나 당신의 내면의 어떤 필연에서 올때만 그걸 감수할 것이며,

결코 그것을 미워하지 마십시요

 

.그렇게 살고자해도 사실 그렇게 살 줄 밖에 모르는데, 감당해야 할 문제가 많이 생긴다.

내가 웃긴거니까... 어리석은 사람, 혹은 그 반대의 사람... 극과 극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치기도 한다. 그럴때면 난 상식적인 생각을 하고 싶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점 상식에서 멀어져가는 불안함이 가끔 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를 충분히 즐기는 시간이 많으므로 지금처럼 내가 나를 즐기련다. 

 

 

성이란 과제는 어려운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이미 과해진 괴로움입니다.

도대체가 진지한 것은 모두 어려우며 또 모든 것은 진지합니다.

당신이 만일 그 점을 인식하시고 당신의 본성과 태도로써,

당신의 경험과 소년 시절이나 그 시절의 힘으로써 인습에 물들지 않고

성과의 오나전하고 독자적인 관계를 자신 속에서 얻게 된다면 당신은 타락하지나 않을까,

가장 고귀한 소유물인 그 성에 대해 자격지심을 갖게 되지나 않을까 하고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육체적인 환락은 관능적인 체험이며,

그것은 순수한 직관이거나 아름다운 열매를 맛보게 되는 순순한 감정,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크나큰 체험이며 세계를 아는 인식이고 모든 지식의 충만이며 광휘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쁜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 체험을 오용하고 낭비하며 가장 지고한 곳으로 이르는 수단으로 쓰지 않고

그 체험을 단순한 방심상태나 자극으로서 그들의 삶의 지친 자리를 메구려는 게 나쁜 것입니다.

인간들은 먹는 일조차 이상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모자라는데 다른 편에는 남아돌아가, 먹는다는 욕구의 명료성마저 흐리게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삶을 새롭게 해주는 심오하고도 단순한 욕구들이 모두 흐려졌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것들은 깨끗하게 할 수도, 명료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람은 불가능하겠지만, 고독한 사람은 그럴 수가 있습니다. 고독한 자는 온갖 동물이나 식물 속에 깃들인 아름다움이란 사랑과 동격의 은밀하고도 지속적인 형태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 사람은 식물을 보듯 동물을 볼 수가 있습니다.

동물들은 참을 성 있게 기다리며 즐거이 두 몸이 하나가 되어 번식하고 성장하는데,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쾌락이나 고통에서가 아니라

쾌락이나 고통보다 크고 의지나 저항보다도 힘찬 필연성에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간이 가장 작은 사물에 이르기까지 대지에 넘쳐 흐르는 신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느낄 게 아니라 보다 진지하고 어렵게 느끼며,

보다 엄숙하게 참아나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신적으로 보이든 육체적으로 보이든 간에 인간이 하나뿐인 자기의 생식 능력에 대해 보다 경건한 자세를 가져다주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정신적인 창조란 육체에서 비롯되고 본질적으로 육체적인 창조와 같은 것이며

더욱 은밀하고 홍홀하며 영원한 육체적인 쾌락의 반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창조자가 되어 생산하고 형성한다는 생각은,

이 세계에서 얻어지는 영속적이고도 보다 큰 확증과 현실화가 없이는 무에 불과합니다.

사물이나 동물로부터의 수천가지 동의없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은 그것이 수백만의 생산과 잉태에 대해서 태어날 때부터 얻어진 추억으로 가득찼기 때문에 보다 아름답고 풍성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창조자의 사상 속에는 잊혀져 버린 수천날의 사랑의 밤이 살아있으며,

또한 고귀함과 존엄성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사랑의 밤에 서로 만나서 어울리는 사람들은 흔들리는 쾌락 속에 얽혀서 하나의 진지한 작업을 하는 것이며,

말할 수 없는 환희를 노래 부르기 위해서 언젠가 나타나게 될 미래의 시인을 위해 힘과 깊이와 달콤함을 축적합니다.

미래를 불러오는 겁니다.

그들이 설사 잘못을 저지르고 맹목적으로 포옹하더라도 미래는 오게 마련이며 새로운 인간은 태어납니다.

저절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우연의 밑바닥에도 법칙은 눈을 뜨고 있습니다.

그런 법칙에 따라서 저항력이 강하고 힘센 정자는

그걸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있는 난자속으로 밀치고 돌입합니다.

당신은 피상적인데 속지 마십시요. 아무리 피상적인 것 속에서라도 모든 법칙은 생겨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  그 신비를 잘못 체험하거나,

 나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그 신비를 잃어버리며 봉합편지처럼 내용도 모르는 채 남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그러니 명칭의 다양성과 사건의 복잡성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모르긴 해도 모든 것 위에는 공동의 동경으로 모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께서 적절하게 표현하신 대로 처녀의 아름다움은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존재의 아름다움으로,

동경하고 준비하고 불안을 느끼며 예감하는 모성이고, 

어머니의 아름다움은 봉사하는 모성이며, 노파의 마음속에는 그 모성에의 위대한 추억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남성속에도 역시 모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육체적 정신적인 두 가지 모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남성이 하는 생산은 일종의 잉태며, 그의 창작이 그의 내심의 충일에서 비롯된다면

그것 역시 출산인 것입니다.

양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서로 가까운 적이며,

세계의 위대한 갱신도 남녀가 대립적인 존재로 서로 상대방을 찾을 것이 아니라

그릇된 검장과 혐오감에서 해방되어 오누이와 이웃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결합되어

그들에게 과해진 그 어려운 성을 소박하고 진지하며 참을성 있게 함께 짊어지고 나갈때

비로소 성립 될 듯 싶습니다.

장차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가능하게 될 지 모를 모든 것을

고독한 사람은 일찍부터 미리 준비하며 실수가 없는 손으로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께서는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시고 당신께 부닥쳐오는 고통을 아름다운 음조로 참고 견디십시오,

당신의 말씀에 의하면 가깝던 사람들이 멀어져간다고 하셨는데,

그건 당신의 주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의 이웃이 멀어진다면 당신의 영역은 이미 성좌에까지 도달하도록 넓어지고 커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와도 함께 갈 수 없는 당신 자신의 성장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뒤에 쳐진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게 대하시고

그들 앞에서 확고하고 침착한 태도를 취할 것이며,

당신의 회의로 그들을 괴롭히지 않도록 하고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확신이나 즐거움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설사 완전하게 달리 된다고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꼭 변화해야 할 것까지는 없으며

그들과 더불어 단순하고 소박하게 서로의 공통점을 찾도록 하십시오,

그들에게서 벌어지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사랑하고,

홀로 있기를 두려워하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뢰감을 갖도록 하십시오, 

언제나 어린이들과 어른들 사이에서 팽팽히 맞서 있는,

연극의 소재를 제공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어린이들의 힘을 소비시키며, 설사 이해는 해주지 못하더라도 따뜻하기는 한 노인네들의 사랑을 좀먹습니다.

노인네에게서 충고를 바라거나 이해해주기를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나 유산처럼 당신을 위해 마련된 사랑을 믿고 그 사랑 속에는 힘과 축복이 있으므로

당신이 거기서 빠져나와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우선 당신이 어떤 작업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사실은 좋은 일입니다.

직업은 당신을 자립하도록 만들어 주며,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으로 하여금 굳건하게 서도록 해줍니다.

직업 때문에 당신의 내적인 생활이 제약을 받는다고 느낄 때까지는 우선 참고 기다리십시오.

저도 직업이란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직업은 인습에 짓눌려 있기에 거기에는 개인적인 견해가 발붙일 여지란 없기 대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고독은 그런 속에서도 당신의 의지처와 고향이 될 것이며,

그 고독으로 해서 당신은 자신의 길을 발견할 것입니다.

저의 모든 소망은 즐거아 당신과 함께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고

저의 모든 신뢰감은 항상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