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면 되는데, 끈기를 가지고 기다린다는 것은 뭔가?
끈기라고 하면 뭔가를 노력하면서 기다린다는 것이다. 뭔가를 하면서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힘드는 일이다. 인내는 성공의 어머니 라는 머리에 띠를 둘러서 해결될 문제라면 머리에 띠를 두르겠지만, 릴케가 말했듯이 고독과 끈기 대단한 것들이구나...
그래서 난 모든 예술가들을 존경한다. 이름이 난 사람들이건 나지 않는 사람들이건 그들의 작품을 보면 목이 뻣뻣해 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보냈을 시간때문에....
그런데 이게 정답인가보다.
정신병자라는 말이 있다 모든 예술가들은 정신병자일 수 밖에 없다.
독자적이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일테고 사회라는 데는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감각해져야 한다. 자신에 대해서도 사회적이라는 것에도 아무것도 느낄 수없는 상태로 그냥 움직이는 대로 움직어야 한다.
자신의 길로만 갔던 사람... 릴케와는 너무 다른 어조를 가졌지만, 내가 얼마전에 읽었던 보들레르 같은 경우 너무나 독자적이어서 삶이 괴로웠던... 그렇지만 작품을 남긴 사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죽어갔지만, 우리는 그를 위대한 예술가로 꼽는다. 왜냐면 개성이 있으니까 ...개성이라고 말하기도 부족한 특별한 정신세계를 가졌으니까 그건 그가 의식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피사 근교
비아렛지요에서(2)
1903년 4월 23일
부활절에 보내주신 편지로 인해 저는 여러모로 즐거웠습니다. 그 편지를 통해서 당신의 여러 가지 훌륭한 예술에 대해 말씀하신 태도로 미루어보아 제가 당신의 삶과 그 삶이 지닌 많은 문제들을 충만한 곳으로 이끌어갔을 때 제가 과히 잘못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넬스 리네>. 그 호화롭고 찬란하며 깊이 있는 책의 세계가 당신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인생의 은밀한 향기로부터 삶의 묵직한 열매의 풍요롭고도 위대한 맛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것이 그 속에 깃들여 있는 듯합니다. 거기에는 이해되지 않았거나 파악되지 않은 것, 경험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늘거리는 추억의 여운 속에서 인식되지 않은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보잘것 없는 체험이라도 중요하게 취급되었으며, 아무리 사소한 사건이라도 운명처럼 전개되었습니다. 그 운명은 신비에 차 있고 기나긴 피륙같아서 한 올 한 올리 섬세한 손에 의해서 짜여졋으며, 한 오리 곁에 다른 실오리가 포개어지고 수백의 다른 실오리에 의해서 다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이 책을 처음으로 읽는 다는 크나큰 행복감을 맛보게 될 것이고, 낯선 꿈속에서처럼 그 책이 주는 무한한 경이 속을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께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훗날 당신은 변함없이 놀라운 마음으로 다시 이 책들을 탐독하게 될 것이며 그 마술적인 힘을 절대로 잃지 않고 처음 읽었을 때에 압도시키던 동화적인 요소가 끊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걸 읽는 이는 언제나 맛을 즐기게 되고 여전히 감사할 것이며, 사물을 정관하는 데 보다 훌륭하고 단순하게 될 뿐더러 삶에 대한 신념에 있어서는 보다 심화될 것이며, 인생에 있어서는 보다 복되고 위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마리 구릅페의 운명과 동경을 그린 그 놀랄 만한 책을 읽어야 하면, 야콥센의 서간문과 일기나 단편들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비록 번역은 시원치 않지만 무한한 격조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시도 읽으셔야 됩니다. 그럴 경우 저는 전부가 수록된 야콥센의 멋진 전집을 사도록 권합니다. 이 전집은 3권으로 되어 있는데 번역도 훌륭하며 라이프치히의 오이겐 디트리히 서점에서 출간 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권당 5마르크 내지 6마르크 정도면 살 것입니다.
<여기에 장미꽃이 피어야> 라는 시(이 작품은 섬세한 점과 형식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작품입니다)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서문을 쓴 사람과 비교해 볼때 오히려 나무랄 데 없이 옳습니다.
여기서 한마디 드려도 좋다면 될 수 있는데로 미학적이고 비평적인 글은 읽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편파적인 견해로 굳어지고 생명력이 없는 고회한 언어의 유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글들은 오늘은 이 견해가 이기는가 하면 내일은 다시 뒤집혀지기 일쑤입니다. 예술 작품이야 말로 끝없는 고독에서 나오는 것이며, 비평으로는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그것을 파악할 수도, 지닐 수도 있으며 그것의 부당함에 대해 불평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되든 당신은 자신과 자신의 감정이 옳은 것으로 알고 거기에 따르십시오. 그리고 모든 시비나 비평이나 해설서들은 무시하십시오. 설사 당신이 틀렸다라도 당신은 당신의 내적인 삶이 지닌 자연스런 성장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다른 인식으로 이끌어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판단으로 하여금 독자적이고도 은밀하며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발전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런 발전은 모든 진보와 마찬가지로 깊은 내심에서 우러나와야 하며 강요되거나 채찍질이 가해져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은 만삭이 될 때까지 잉태 되었다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상과 감정의 싹으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 속이나 어둠 속, 무의식 속 그리고 이성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불가사의 속에서 완성되도록 하시고, 겸허한 마음과 끈기로 명료함이 새로이 태어날 시기를 기다리도록 하십시오 그게 바로 예술적으로 살아가는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술을 이해하거나 직접 창작을 하거나 이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는 시간을 척도록 하여 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햇수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10년이란 세월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 그것은 계산하지도, 햇수를 세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수목처럼 무성하도록 하십시오.나무는 수액을 억지로 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봄의 폭풍 속에서도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혹시나 폭풍끝에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감을 갖는 일도 없습니다. 여름은 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영원이 그들의 눈앞에 있듯, 근심 걱정 없이 조용하고 침착하게 거기에 서 있는 참을성 있는 사람에게만 여름은 찾아옵니다. 저는 그것을 매일 익히고 있으며, 그것도 괴로움을 참아가며 배우고 있고 또 괴로움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끈기만이 전부입니다.
리하르트 데멜(1863-1920 독일의 시인)의 책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덧붙이지만 그 본인에 대해서는 저도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그의 책 속에서 아름다운 한 페이지를 발견했는가 싶으면 금방 다음 페이지를 펴기가 두렵습니다. 모든 게 다시 엉망으로 변해버리나 하고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열정적으로 살며 시작을 한다." 라는 말로 당신은 그 사람을 아주 훌륭하게 특징지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술적인 체험은 성적 체험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비슷하고 성적 체험이 가진 우수나 괴로움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 두 가지 현상은 외형은 다르나 원래는 같은 동경과 지복의 한 형태입니다. 열정이란 말 대신 성욕이란 말을 쓸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점에서는 그의 예술이 대단히 위대하며 무한히 중요합니다. 물론 교회적인 오류로 이상하게 되지 않는 위대하고도 포괄적이며 순순한 성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 사람의 창작력은 무한히 커서 원초적인 힘처럼 세차며, 독자적인 운율을 그 속에 지니고 있어서 산에서 흘러내리듯 그 사람으로부터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그의 이런 힘이 반드시 옳다거나 가장 하는게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런 점이 창작가에게 가해지는 가장 힘든 시련이기도 하지요. 창작가는 언제나 의식하지 않는 자, 즉 가지의 가장 훌륭한 덕성조차 느끼지 않는 자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가 가진 자연스러움과 독자적인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존재가 살랑이는 소리를 내며 성적인 것에 도달하게 되어도 그힘이 필요로 하는 지극히 순수한 인간을 거기서 찾지 못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완벽하게 성숙되고 순수성의 세계란 없습니다. 있다고 한다면 오직 비전적이며 남성적인 것 뿐이지요. 성욕이란 도취며 격정으로서 낡은 편견과 불손으로 짓눌린 것이고 그것으로 해서 사나이가 사랑을 일그러뜨리고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사나이로서만이 사랑하기 땜누에 그의 정감속에는 무엇인가 편협한 것, 야만적으로 보이는 것. 염오스러운 것, 일시적인 것 등이 있어서 그의 예술의 품위를 깎아내리며 그것을 애매모호하고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데멜의 예술은 결코 완전무결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정열이란 낙인이 찍혀 있어서, 그의 예술 중에서 영속될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하기야 모든 예술 작품이 모두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깃들인 위대한 것을 한없이 즐길 수는 있을 것입니다. 단지 거기에 빠지거나 데멜의 세계의 단순한 추종자가 되지만 않으면 좋습니다. 그 세계는 끝없이 불안스럽고, 간통과 혼란으로 가득 차서 진정한 운명과는 아주 먼거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운명이란 비록 일시적인 슬픔보다는 훨씬 괴로운 것이지만, 보다 위대한 것에 도달할 기회와 영원으로 가는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끝으로 저의 책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로서는 당신이 기뻐하시도록 전부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저는 가난한 사람이라 출판과 동시에 그 책들은 이미 제 것이 아닙니다. 저 자신조차 그 걸 살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은 간절하나 저의 책에 대해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분들에게 골고루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정이고 보니 당신에게도 저의 최신작의 제목과 출판사명을 적어드리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직접 구입하셔야겠습니다. 최신작들은 모두 포함해서 1.2.3권이 출판되었습니다.
제 책들을 읽어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4 (0) | 2005.06.17 |
---|---|
[박진호]단순화 작업 (0) | 2005.06.11 |
젊은 시인에게 쓰는 편지2 (0) | 2005.06.02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1-1 (0) | 2005.06.02 |
[요하네스 베르메르] 레이스를 짜는 여인 (0) | 2005.05.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