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추산 계곡을 내려오다가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
돌들이 저러고 있었다.
맨위의 돌은 거의 나만한 것인데. 저렇게 작은 돌이 받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작은 돌이 끼어있는 것인지..
각기 다른 힘을 가진 돌들이 힘의 균형을 이루며 저렇게 기대고
있었다
그 위에 내가 올라가도 작은 돌도 큰 돌도 꼼짝도 하지 않고 그냥 견디고
있다.
참 대견하기도 한 것들이다.
이름이라도 찾아주려고 돌의 분류법을 보았으나,
돌의 분류법이 그렇게 많다니, 종횡으로
구분되는 돌의 종류들.
아무튼 돌이 만들어진 사연도 다르고 생김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다.
어떤 돌은 퇴적물들이 쌓여서 만들어졌고
또 어떤 돌들은 마그마에 의해서 한 순간 만들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쌓이고 있는 중에 마그마를 만나기도
하고...
사연이 다른 돌이다.
작년에도 죽어있었던 나무들이다.
아마 재작년 태풍 매미때 이곳도 무사하지는 못했는지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있다던가 ...
이 곳은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복구같은 손길은 닿지 않았을테고
그것이 다행스럽게 이런 풍경을 만들어내었다.
몇 년째 생명이 없이 생명들 사이에서 제 몸을 말리고 있는 나무들
그 사이에서 자라는 새 생명들. 초록도 선명하고 하얀 나뭇가지도 선명하다.
산 것과 죽은 것이 함께 있는 곳
산 것은 살아서 어색하지 않고, 죽은 것은 죽은 것대로 어색하지 않다.
아마 내 옆에 죽은 나무를 저리 두었다면
뭐라 하였을까?
아마 두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뿌리도 없을 나무들이 초록 옆에서 자연스럽게
포즈를취하고 있다. 산 것과 죽은 것들이 어울려 있는 곳.
마치 저 곳에 깔려있는 모래인 듯 자갈인 듯
나무라는 이름이 무슨 소용이고 돌이라는 이름이 무슨 소용...
이 곳에서 어울림은 그냥 함께 하는 것이다.
앞에 걸어간 사람의 발자국이다.
용케도 짚신나물(노란 꽃의 이름이다)을 피해서 걸었다.
모래위 햇살아래 선명히 비켜나간 발자국이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계곡가 모래사장 한 가운데 턱하니 피어있는 짚신나물..
그것이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기까지 아무탈이 없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래사장 한 가운데 턱하니 자리잡고서도 아무일이 없다니...
이 곳이 얼마나 사람이 안 다니는 곳인지를 알 수 있다.
사람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는 그 곳에
사람의 발자국과 나란히 서있는 짚신나물 노란꽃.
어울리지 않을 꽃과 발자국이 햇살아래 나란히 반짝인다.
짚신나물 노란꽃이 발자국을 호기심으로 쳐다보려는 듯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모양이다.
노추산 계곡에서 본 다른 것들의 동거하는 모습이다.
참 다른 것들,
돌들은 돌들끼리 다르고,
나무는 나무끼리 다르고
생명은 생명끼리 다르고
그 다른 것끼리 어울리고 다시 또 어울리고
그렇게 저 너른 노추산 계곡이 어우러져 있었다.
참 아름다운 것들
내 속에 다른 나는 얼마나 많은가...
내 속에 다른 나때문에 매일 부대끼는 나로서는 저들의 동거가 놀랍고 부끄럽다.
다른 것들이 서로에게 끼어 힘이 되는 모습.
나에게 틈이 있으면 작은 돌하나 끼어두고
나에게 헛숨이 빠지고 있다면, 향내나는 꽃하나 심어두고...
나에게도 더 다른 나를 끼워끼워
다른 것들이 틈새를 메우는 노추산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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